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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공간**/스펄전 묵상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 스펄전 묵상

by With Lord 2016. 2. 18.

2월18일

아침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 욥기 10:2


오  시련 중에 있는 영혼이여, 아마 주님은 당신의 은혜를 더 높이기 위해 시련을 허락하셨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에게 시련이 없었더라면 그중 어떤 은혜는 아예 주어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믿음이 여름날에는 겨울날보다 더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사랑은 어둠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만 약간의 빛을 보여 주는 개똥벌레와 같습니다. 소망 자체는 번영의 햇빛이 비취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다가 역경의 밤이 되어야 발견되는 별과 같습니다. 고통은 종종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의 은혜의 보석이 더 밝게 빛나도록 그 안에 두는 검은 금속상자와 같습니다. 당신은 무릎을 꿇고 "주여, 저는 믿음이 없는 것이 두렵습니다. 제가 믿음이 있음을 알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무의식적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사실상 시련 때문에 기도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은혜가 발견될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가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종종 시험을 보내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십시오.

  나아가 그것은 단순히 그것을 발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참된 성장은 거룩하게 하는 시련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만드시기 위해 우리의 위로와 특권을 빼앗아 가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군사들을 안일과 사치의 장막 속에서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끌어내 행군하게 하시며 강력한 연단을 받도록 하십니다. 그분은 그들이 등에 무거운 슬픔의 배낭을 짊어지고 개울을 건너가게 하고, 강을 헤엄쳐 건너게 하며, 산을 오르고, 먼 거리를 걷도록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여, 이것으로 당신이 통과하는 환난들의 이유가 다 설명되지 않습니까? 주님이 당신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것을 자라게 하려고 시련을 주신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그분이 당신과 변론하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시련은 약속을 더 은혜롭게 만들고

      시련은 기도에 새 생명을 불어넣네.

      시련은 나를 그분의 발 앞으로 이끌고

      나를 낮추어 그곳에 있게 하네."


저녁

아버지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 누가복음 15:18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주신 사람들은, 죄수나 범죄자처럼 심판주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할 필요가 없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 까닭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법적으로 그들의 모든 죄를 제거하셔서 그들은 더 이상 정죄 받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서 있고, 최종적으로 사랑하시는 분 안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녀가 되어 범죄하게 될 때에도 그들은 날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자기들의 범죄사실을 인정하지 않아도 될까요? 잘못을 저지른 자녀는 그들의 육체의 아버지에게 그 죄를 자백하는 것이 자녀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의무임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도 똑같은 의무가 있음을 하나님의 은혜는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매일 죄를 범할 때 그 죄를 날마다 사함 받지 않고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를 거역하는 죄들이 즉시 주 예수님께 전달되어 그분의 깨끗하게 하시는 능력으로 씻음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내가 용서를 구하지 않아 아버지를 반역하는 이 죄들로부터 씻음 받지 못한다면, 나는 그분을 더 멀게 느낄 것입니다 그분의 사잘을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에 대해 두려워 떨 것입니다. 그분께 기도하는 것을 주저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자녀이기는 해도 집을 나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나간 탕자와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롭고 사랑하는 아버지께 잘못을 저지른 것을 슬퍼하는 자녀로서 그분께 나아가 모든 것을 자백하고, 용서받았다고 느낀다면, 평안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거룩한 사랑을 느끼고, 구원받은 자로서, 그리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현재적 평화를 누리는 자로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죄인으로서 죄를 자백하는 것과 자녀로서 죄를 고백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은 회개의 고백을 드리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완전히 깨끗하게 되었지만, 우리의 발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서 저지르는 일상적 죄악으로부터 계속해서 깨끗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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