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할 준비가 되셨나요?
눅 13;6-9. 결산할 준비가 되셨나요?
성경에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세 종류의 나무가 나오는데....감람나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입니다. 1) 포도나무(삿9 :12) 2) 감람나무 (삿9 :9) 3) 무화과나무(삿 9 :10)
포도나무=포도나무는 영적 이스라엘을 뜻합니다.
포도원은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사5:7) 예수님은 포도나무, 우리 성도들은 그 가지입니다. 요15:1,5,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하셨습니다.
감람나무=감람나무는 종교적 이스라엘을 뜻하고 있습니다.
왕이나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울 때, 감람나무에서 나는 기름으로 하며, 솔로몬 성전의 두 그룹과 외소 문의 문설주도 감람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왕상 6:23, 6:31-33) 감람나무는 접붙임으로 증식이 되는데, 로마서 11장 17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그 불순종으로 나뭇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이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신앙적 상태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이름 그대로 꽃이 없습니다. 실은,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열매 속으로 숨어들어가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꽃(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숨기시고 열매만 맺고 가셨죠/. 무화과나무는 심은 지 3년이면 열매가 열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에 오셔서 3년 동안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지만. 그러나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열매를 구했는데 얻지 못하므로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니라,
눅3: 9절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마21장 43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은 백성이 받으리라”
柱=일맥:“무화과는 열매와 잎이 동시에 맺어지는 식물이다. 잎이 무성하면 열매가 커가고 있다는 증거다. 예수님께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것은 열매를 처음부터 맺지않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무화과 열매는 처음 잎이 나올 때 이미 맺어 있어야 한다. 잎만 무성하다는 것은 자기의 사명을 잊은 것이다. 무화과는 열매가 맺을 시기가 되면 열매가 먼저요. 그 다음잎이 나오기 때문이다”.
무화과는 에덴동산에서도 기록되어 있는 나무로서 이름이 확실하고 우리가 지금도 볼 수 있는 유일한 나무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나무로서 아담과 하와는 이 나무의 잎을 따서 자기들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렸다고 기록했습니다. 매년 6월과 9월 두 번씩 수확하므로 거의 10달 동안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열매를 두 번 수확하는 이유는 작년 가을에 달린 비정상적인 열매가 겨울 내내 자라지 못하다가 6월에 익기 때문이며 이것을 처음 익은 무화과(비쿠라 בכורה)라고 하는데, 억지로 익었기 때문에 푸르고(아2:1 3) 수분이 적으며 푸석하지만. 그러나 양식이 부족하던 옛날에는 귀한 먹거리가 되었습니다(나3:12, 계6:13).
또한 8~9월에는 3월에 달린 정상적인 무화과를 거둘 수 있는데, 이것을 늦 무화과(테에나 תאנה)라고 합니다. 처음 익은 무화과보다 부드러우며, 수분이 풍부할 뿐 아니라 햇볕을 많이 받아 당도가 높고 맛이 좋습니다. 무화과는 저장성이 약하므로 건과(乾果)로 보존되며, 건조시킬 때 단맛이 더해집니다(삼상25:18, 대상12:40). 잼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으며, 단백질 분해 효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으므로 고기를 먹은 후 후식으로 먹으면 소화가 잘 됩니다. 상처에 고약으로 쓸 수 있으며(왕하20:7, 사38:21) 부스럼이나 옴, 사마귀에도 좋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에서, 한 사람은 하나님이요, 포도원은 이스라엘 나라요,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이요, 과원지기는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아들인 예수님께 맡기고 3년을 기다렸으나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과원지기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과실을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년 동안이나 복음을 전해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인 과원지기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과원지기인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두루 파고 거름을 주다”라는 의미는 십자가� �� 달려서 물과 피를 땅에 다 쏟았습니다.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예수님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믿고 회개를 하면.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은 천국 복음을 듣고도 알아듣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유대 사람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완악한 유대 사람들은 이 비유의 말씀의 뜻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경고를 하십니다. 마21장 18-20절에 나옵니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이 말씀을 묵상해 보면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 이 날은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감하는 마지막 한 주간의 첫날인 월요일이었습니다. 이 날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와 돈 바꾸는 자들과 비둘기파는 자들들 내쫓으시는 성전 숙정을 하셨습니다. 아침, 베다니를 떠나 성으로 들오시는 그 이른 아침.
“시장하신지라” 아침 일찍이 베다니를 나오시느라 아침 식사를 못하셨을까요. 어쩌면 전날 저녁 식사도 못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육신의 배고픔 보다는 여기서는 영적인 배고픔을 뜻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3년 동안 복음을 전파하시고 이제 승천하실 기한이 다 되었는데,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를 잡아 죽이기로 작정해 놓고 있었습 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한 영적 배고픔을 느끼셨던 것이죠.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구약시대의 길은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이십니다. 예수님 걸어가신 길이 바로 천국에 이르는 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그 길, 십자가를 향한 그 길을 향해 걸으시며 길가(율법)에 심어진 무화과나무(이스라엘 백성)를 보십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자체이신데 율법은 그 그림자일 뿐이죠. 참 길이신 예수님은 그림자만을 고집하고 그 길가에서 끄떡도 않고 서 있는 무화과나무(유대인들)를 보신 것입니다.
“그리로 가사”
유대 나라에 오셔서 그들을 가르치셨으나.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빛을 보지 못하고 그 그림자만을 고집하여 열매는 없고 형식만 무성한 유대인들을 보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행해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하나님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형벌.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 동시에 이스라엘처럼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자들의 영적 고갈 상태. 그리고 종말론적으로는 잎 밖에 없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님의 제자들도 무화과나무가 왜 말랐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눅13장 6-9절에서 열매 맺지 아니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열매 없는 이스라엘이 찍혀버리리란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때 누구도 그 말씀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말씀 아닌 눈에 보이는 이적, 곧 멀쩡한 나무가 눈앞에서 말라버리는 이적을 통해 재차 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경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뜨고 그것을 본 제자들조차도 그 뜻을 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여기서 자신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심은 목적은 ‘열매’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열매’를 얻기 위해 3년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즉 시간에 대한 책임을 묻고 계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매우 엄중한 경고입니다. 자신에게 준 시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생명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생명을 소중히 여기듯이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영적인 건강과, 영혼 구원을 위하여 믿음생활에 무어보다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예배, 기도, 찬양, 말씀, 성경을 읽고 묵상 등...이런 영성을 위해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말씀하시길 이제는 끝을 내야 될 때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다음으로는 자리에 대한 책임입니다.
포도나무 밭에 심겨진 무화과, 언덕이나 토양이 토박한 길가에 자라야 할 무화과나무가...운 좋게도 옥토 기름진 포도원에 심기게 된 것입니다. 바로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의 기대대로 달콤한 무화과열매를 많이 맺어...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무화과나무를 그러지 못했습니다. 3년을 기다려도 열매를 맺지 않았습� �다.
화가 난 주인은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사람은 누구나 ‘자리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거할 자리는 어디일까요? 요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성도가 거할 자리는...‘예수님 안’입니다.
남은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과원지기의 간청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기회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과거는 열매가 없었다고 할지라도...이제 남아 있는 생애에 열매를 맺으면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자기의 남은 시간을 어영부영하고 살 수가 없습니다. 그날에 주님 만나는 날에 결산하자 하실 때에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소담한 ‘믿음의 열매’를 드릴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레루야! 아멘,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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