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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 스펄전 묵상

With Lord 2015. 10. 6. 08:44

10월6일

아침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 요한복음 4:14


  예수님을 믿는 신자는 현재 자신을 만족시킬 것과 영원히 만족할 것을 그의 주님 안에서 충분히 발견합니다. 신자는 위로가 부족해서 피곤한 낮을 사는 사람도 아니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생각이 부족해서 밤이 지루한 사람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믿음 안에서 그를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기쁨과 위로의 원천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를 토굴 속에 집어넣어보십시오. 거기서도 그는 즐거운 교제를 발견할 것입니다. 그를 삭막한 광야에 두어보십시오. 거기서도 그는 천국의 떡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에게서 친구를 다 끊어보십시오. 그래도 그는 "형제보다 더 가까운 친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를 덮고 있는 박넝쿨을 다 제거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는 만세 반석이신 분 아래 그늘을 만들 것입니다. 그의 세상적 소망의 근거를 다 뿌리뽑아 보십시오. 그래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주님을 의지하는데 고정될 것입니다. 그 마음은 예수님이 그 안으로 들어오실 때까지는 무덤처럼 만족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이 들어오시면 흘러넘치는 잔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충만함이 있기 때문에 오직 그분만이 신자의 전부가 됩니다. 참 성도는 더 이상 갈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예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그 생명샘에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욕구 외에는 다른 소원이 없습니다.

  성도여, 그 과정에서 당신이 갈증을 느낀다면, 그것은 고통의 갈증이 아니요, 사랑의 갈증일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사랑을 보다 충분히 누리고 싶은 소원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게 될 것입니다. 옛날에 한 성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종종 물이 가득 찬 우물에서 양동이로 물을 길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을 향한 나의 갈증은 너무 갈급해서 아예 입술을 우물에 갖다 대고 당장 물을 마시고 싶다." 성도여, 이것이 지금 당신의 심정이 아닙니까? 당신은 예수님 안에서 모든 욕구를 만족시키고 있고, 그래서 지금 예수님을 더 깊이 아는 것과 그분과 더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 외에 다른 소원은 없다고 느낍니까? 그렇다면 계속 그 샘으로 나아오십시오. 와서 자유롭게 생명수를 마시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이 너무 많이 마신다고 절대로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을 환영하며 "오 그래, 사랑하는 자여, 실컷 마셔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저녁

모세가 구스 여자를 위하였더니 - 민수기 12:1


  모세의 이상한 선택을 보십시오. 그러나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서 그보다 휠씬 더 위대하신 주님의 선택은 얼마나 더 이상할까요! 백합화처럼 어여쁘신 우리 주님은햇볕에 쬐어서 스스로를 거무스름하다고 고백한(아 1:6) 여인과 결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가난하고, 비천하고, 죄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어진다는 것은 천사들도 놀랄 일입니다. 각 신자도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식으로 충만할 때, 이런 사랑이 그것을 받기에는 도저히 자격이 없는 대상에게 아낌없이 부어졌다는 것을 압도적인 놀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은밀한 죄책, 불신앙, 그리고 음흉함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값없이 주권적으로 주어진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감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의 사랑의 근거를 발견하셨지, 그것을 우리 안에서 발견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그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우리를 보기 흉하지 않도록 만들어놓았지만, 우리는 회심 후에도 음흉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경건한 러더퍼드가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그대로 우리 각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분과 나의 관계를 말한다면, 나는 병자요, 그분은 내가 필요로 하는 의사이시다. 그러나 슬프도다! 나는 얼마나 자주 그리스도를 농락하고 그분에게서 멀어졌던가! 그분은 매시고, 나는 푼다. 그분은 세우시고, 나는 허문다. 나는 그리스도와 다투고, 그분은 하루에도 스무 번씩 나를 용납하신다!"

  우리 영혼의 가장 자비롭고 신실하신 남편이시여, 가난한 구스인인 우리가 점이나 흠이나 어떤 다른 얼룩도 없이 당신의 형상을 닮을 때까지 은혜의 역사를 계속 베푸소서! 모세는 이방인 여자와의 결혼 때문에 공격을 받았습니다. 만일 이 무익한 세상이 예수님과 그의 신부를 공격하고, 특히 큰 죄인들이 회심할 때 그들을 신랄하게 비난한다면, 우리가 그것을 놀라워 할 이유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했다"는 비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반박의 근거입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과 결혼했기 때문에" 다툼을 불러일으킨 것도 똑같은 과거의 한 실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