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가려느냐 - 스펄전 묵상
10월23일
아침
너희도 가려느냐 - 요한복음 6:67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버리고 그분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무슨 이유로 믿음이 바뀌어야 합니까? 과거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당신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했습니까? 그분은 오늘 아침 당신에게 "내가 너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렘 2:31)고 하소연하십니다. 당신의 영혼은 오직 예수만 믿었는데, 그래서 낭패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까? 지금까지 주님의 당신에 대해 다정하고 관대한 친구였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분을 믿는 단순한 믿음이 당신의 영이 바라는 평강을 전혀 제공하지 못했습니까? 당신은 그분보다 더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고 꿈꾸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신용할 수 있는 주님을 새롭지만 허탄한 다른 대상으로 바꾸지는 마십시오. 그러면 현재는 어떻습니까? 지금 그리스도를 떠나도록 강요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당하거나 교회 안에서 혹독한 시험을 당할 때, 구주의 품에 머리를 기대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압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구원받은 오늘 우리가 갖고 있는 기쁨입니다. 만일 이 기쁨이 만족스럽다면, 우리가 왜 생각을 바꾸어야 하겠습니까? 누가 금을 찌꺼기와 바꾸겠습니까? 우리는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을 발견하기 전에는 그것을 바꾸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보다 더 큰 사랑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분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우리는 그분을 영원토록 붙잡고, 그분의 이름을 우리 팔에 인장처럼 새겨 넣어야 합니다. 또 미래는 어떻습니까? 당신은 다른 대장을 섬기기 위해 과거의 깃발을 버리거나 과거의 대장에게 반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인생이 길어도 그분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만일 우리가 가난하다면, 우리를 부요케 하실 그리스도를 갖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병에 걸리면, 침상을 깔아주실 예수님보다 우리가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주글 때에는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제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고 말합시다.
저녁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 누가복음 22:46
그리스도인이 쉽게 잠에 빠지는 때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그의 현세적 환경이 순조로울 때가 아닙니까? 당신은 그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까? 당신은 환난 속에 있을 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감으로써, 평상시보다 더 깨어있지 않았습니까? 길이 순탄하면 여행자는 졸기 마련입니다. 또 다른 위험한 시기는 영적 상태가 크게 고조되어 있을 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는 길에 사자가 있을 때, 강을 간신히 걸어서 건너갈 때, 또는 무저갱의 사자인 아볼루온과 싸울 때에는 잠을 자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산 중턱까지 올라와서 시원한 정자에 이르렀을 때, 그는 그 아래 앉아 금방 잠에 떨어지고, 그래서 결국 큰 슬픔과 손해에 빠지게 됩니다. 은은한 바람이 불고, 아름다운 향기와 온화한 느낌이 가득 찬 장소는 마법의 땅으로서, 손례자들을 잠에 빠지게 만들 정도로 부드러움이 넘치는 곳입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의 묘사를 상기해 보십시오: "그들은 피곤한 순례자들의 기운을 크게 복돋아주는 포근한 정자에 이르렀다. 그것은 머리 위로 정교하게 지어져 있었고, 주변은 아름다운 풀밭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벤치와 의자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또 그 안에는 지친 자들이 쉴 수 있는 부드러운 침상이 놓여 있었다." "그 정자는 게으름의 친구로 불리었고, 지친 순례자들을 그곳에서 쉬게끔 유혹할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었다."
틀림없습니다. 사람들은 편안한 곳에 있으면 으레 눈을 감고 망각의 꿈나라를 헤매는 법입니다. 말년에 어스킨(Erskine)은 "나는 잠자는 마귀보다 으르렁거리는 마귀가 더 낫다"고 지혜로운 말을 했습니다. 시험받지 않는 것만큼 위험함 시험은 없습니다. 고난 속에 있는 영혼은 결코 잠자지 않습니다. 우리가 잠을 자는 위험에 빠질 때는 평안해서 태평할 때와 자신감이 충만할 때입니다. 제자들은 변화산 꼭대기에서 변화된 예수님을 본 후에 잠이 들었습니다. 즐거워하는 그리스도인이여, 조심하십시오. 안락한 환경은 시험의 가까운 이웃입니다. 아무리 행복한 환경 속에 있다라도, 오직 깨어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