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이냐, 능력이냐? - 신상래목사님
별 볼일 없는 갈릴리지방에서 자란 하찮은 신분인 목수출신의 젊은이가 이스라엘 전역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이유는 그가 보여준 놀라운 영적 능력이었다. 귀신을 쫓아내며 불구를 회복시키고 각종 고질병을 치유하며, 심지어는 죽은 지 사흘이나 되는 시체를 되살리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런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입소문을 터뜨렸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이 젊은이를 따라다니며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를 고대했다. 이 젊은이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은 여러분이 짐작한대로 이다.
어디 그뿐인가?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의 질투와 시기로 인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그의 제자들로 자처하는 이들도 예수님이 하신 놀라운 영적 능력을 판박이로 재현해내었다. 이를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루에 수천 명씩 떼를 지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결심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세상을 구원하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해줄 그리스도인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기적과 이적으로 도배한 사건을 기이하게 여기며, 목회자들은 설교단상에서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침을 튀겨가며 소개하곤 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
예수님은 12제자들과 다른 제자들을 자신과 똑같은 능력의 제자로 양육했으며, 초대교회를 세운 사도들도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 수많은 제자를 양육했다. 그 제자들의 공통점은 예수님과 똑같이 놀라운 영적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들이 이스라엘 변방의 유대교의 이단이라 불리던 기독교를, 겨우 300년 만에 로마 황제가 믿는 세계 최고최대의 종교로 급부상한 것은 그들이 보여주었던 놀라운 영적 능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기이한 영적 능력을 보여주는 교회는 우리네 주변에 없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그런 능력은 사도시대에 끝났다고 공언하고, 자신에게 없는 성령의 능력에 찝찝해하던 목회자들은 이런 신학자의 주장 뒤에 숨어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는 자라면 누구나 귀신을 쫒아내고 고질병을 치유하는 등의 놀라운 영적 능력을 얻게 될 것이며, 기도하는 것마다 신속하게 응답이 내려올 것이라는 말씀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있다.
기적과 이적을 드러내는 성령의 능력이 없는 작금의 우리네 교회는, 말씀공부와 예배의식 그리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성령의 능력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네 교회만큼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교회도 없다. 새 신자가 교회에 입문하면 교단교리를 각색한 성경공부를 시작하며, 날이면 날마다 수도 없이 시행되는 예배의식의 중심도 성경을 가르치는 설교이다. 어디 그뿐인가? 매년 수많은 성경공부프로그램, 전도프로그램, 제자양육프로그램을 들여야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쉬지 않는다. 이정도 공부를 했다면 누구나, 단 한권뿐인 성경박사가 되지 않은 교인들이 없어야 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교회는 왜 이렇게 성경공부에 매달리고 있는가? 그 이유는 성령의 능력이 없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고 자기만족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성경지식으로 무장한 목회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은 입만 열면 말씀의 중요성을 목이 터지라고 강조하고 있다. 뭐, 틀린 말도 아니다. 성경은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성경지식이 아니라 말씀의 실체를 나타내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의 지도자들은 말씀의 위력이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직 성경지식을 쌓아두는 학습만을 주구장창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덕분에 우리네 교인들은 성경에 나오는 어느 위인보다 탁월한 성경지식을 갖추고 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 그리고 이스라엘 12부족의 시조가 된 그의 아들들은 우리가 가진 성경을 알지도 못했으며, 구약시대의 인물들조차 아는 것이 모세오경이 전부였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초대교회를 세운 사도들과 제자들도 신약성경의 상당부분을 알지 못하고 이 땅을 떠나갔다. 이처럼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해박한 성경지식을 자랑하는 우리네 교회의 지도자들은, 왜 이리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19,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당신이 오랜 신앙의 연륜과 드높은 교회직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능력이 없이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당신에게 성령이 내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감추고자 수없는 예배의식을 반복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위안을 삼고 있다. 물론 우리 주변에 성경에서 약속한 성령의 능력을 드러내는 이들은 눈 씻고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경말씀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성령의 능력을 재는 잣대는 우리네 교회의 종교지도자들의 말이 아니라 성경에서 밝힌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가? 그러나 자신에게 이런 영적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답답해하거나 갈급해 하지 않는다. 귀신들이 우리네 종교지도자들의 머리를 타고 앉아 자신의 생각을 넣어주어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는 성경말씀이 아니라 인본적이고 이성적인 잣대로 종교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사도시대 이후 성령의 능력이 초대교회처럼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성령을 간절히 구하고 찾는 기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로마황제가 기독교인이 된 이후, 기득권층이 되어 배부르고 등이 따뜻해진 교회는 배에 기름이 끼고 비둔해져서 기도가 더 이상 필요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불교나 힌두교처럼, 눈에 보이는 웅장한 교회건물을 지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알맹이가 빠진 예배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건조하고 허전해진 마음을 채우고 있다. 당신 안에 성령이 함께 하시는 증거는, 귀신을 쫓아내며 질병을 낫게 하면서 사탄의 권세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들을 빛의 나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아니라면 당신 역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다가 지옥의 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성령의 능력이 없는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