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그 뜨거운 감자 - 신상래목사님
우리네 교회에서 십일조만큼 뜨거운 감자도 없다. 십일조만큼 교인들의 마음에 부담을 주는 것도 없다. 십일조만큼 목사들이 열변을 토하는 대상도 없다. 왜 그런 줄 아는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재물이 있는 곳에 사람들의 마음이 죄다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일조를 하는 사람들도 마지못해서 의무적으로 하기에,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 한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죄책감을 가지고, 혹시 이 사실을 누가 알지 않을까 눈치를 살피거나, 성경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십일조는 신약시대에 끝났다는 사람들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열렬하게 환영한다. 이처럼 십일조를 하는 사람이나 안 하는 사람이나, 십일조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다. 그래서 오늘은 감자가 잘 익었는지 살펴보고 싶다.ㅎ
십일조의 의무가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한가, 하는 질문은 모든 크리스천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이다. 십일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구약의 율법이 폐지되었는데, 왜 여전히 십일조만을 들먹거리느냐고 항변이다. 원래 십일조의 시작은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의 조항이 아니었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고자 치른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서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드리는 사건이다. 그 당시에 십일조는 고대사회의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제정일치사회의 제사장이자 왕인 멜기세덱에세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그 다음에는 야곱에서 바톤이 넘어간다. 야곱이 에서의 축복권을 가로채고 도망치듯 쫓겨 가면서 노숙을 하게 되었는데, 꿈에서 천사들이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꿈을 깨서 하나님께 무사히 고향에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맹세를 하게 된다. 그 맹세가 이스라엘의12지파인 아들들에게 승계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모세가 받은 율법에서는 이 십일조를 드리는 세부조항만이 들어있을 뿐이다. 이렇듯 십일조의 시작은 율법이전에 이미 시작된 것을 간과하지 말라.
십일조의 쓰임을 알려주는 성경의 구절을 살펴보자. 십일조는 가장 우선적인 쓰임은 이방인과 과부와 고아와 같은 극빈자의 생계를 위한 구제이다. 그리고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레위인의 생계비이며, 성전에서 사역을 하던 제사장들과 성전관리, 혹은 절기제사나 명절의 비용으로 충당하였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네 교회의 목회자들은 십일조가 모든 교인의 의무사항이라는 것에는 입에 거품을 물면서, 이 십일조의 사용처인 구제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에는 침묵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제에 관심이 없는 목회자들이 십일조를 둘러싼 논쟁의 자격이 없는 이유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목회자들이 있는 교회에 하나님이 결코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교회에 십일조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에 사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마23:23)
그렇다면 십일조는 신약시대의 교인들에게도 하나님의 명령인가? 설교자들은 위의 말씀을 근거로 들면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필자가 이 말씀의 헬라어원문을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이 해석에서 여러 가지로 유추할만한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예수님은 십일조도 행하면서 의와 사랑과 믿음도 행하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이 말하는 것은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 십일조를 행하라고 하신 것은 맞지만, 의로움과 사랑과 믿음이 들어있는 십일조를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십일조의 행위만 강조한다면 단팥이 빠진 붕어빵에 불과하다. 아무런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십일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가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의무사항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십일조를 포함한 모든 수입은 하나님의 것이다. 세상 재물이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학2:8)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수입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 사용처는 먹을 양식(생계비)와 의로운 열매를 위한 씨앗(구제와 선교)이다.(고후9:10)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려야 하니 마니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당신의 수입은 생계비를 제외하고는 구제와 선교에 사용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수입이 교회에 드리는 소량의 헌금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십일조를 내든 내지 안 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악한 종일뿐이다.
이처럼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행해지는 십일조에 대한 논쟁은 둘 다 틀렸다. 십일조의 사용을 하나님의 뜻대로 시행하지 않는 목회자들은 십일조를 드리라는 자격이 없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와 변명을 하면서 십일조를 내지 않는 교인들도 악한 목회자들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재물을 가지고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악한 종이기 때문이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측정하시는 주요한 도구이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는 자녀들에게 돌아갈 축복은 없다. 천국도 언감생심이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을 때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떠나버렸다. 부자청년에게 말해진 예수님의 명령이, 당신에게 행해졌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곱씹어보라. 아마 예수님의 명령대로 선택을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십일조를 드리니 안 드리니 하는 것은 무의미한 논쟁에 불과하다. 십일조를 강요하는 목회자들도 사악한 종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는 교인들도 뻔뻔스러운 자녀이기 때문이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마24:45)
하나님은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하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에게, 더 많은 재물을 안겨주셔서 하늘나라의 확장과 가난한 자녀를 위한 생계에 사용하게 하신다. 당신이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아니라면 하늘 문을 열어 축복을 쏟아부어주실 턱이 없다. 어차피 주어진 재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면, 십일조를 내든지 내지 않든지 결과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또한 십일조를 강요하며 탐욕을 채우는 악한 종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은 불 보듯 환하다. 그러므로 작금의 우리네 교회의 대다수의 교인들과 교회지도자들에게 닥칠 운명은 동일하다. 그들이 어떻게 지옥의 불길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두렵고 안타까운 일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