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교회는 벌거숭이 임금님이다 - 신상래목사님
엊그제는 귀신 쫓는 교회로 세간에 이름이 자자한 교회를 다니는 자매가 찾아왔다. 그녀는 귀신에게 오랫동안 눌려있는 상태였다. 늘 두려움에 시달리고 대인기피증과 사람들과의 갈등에 고통스러워했다. 밥을 먹어도 맛을 모른지 오래되었으며, 그녀의 부모는 이러한 자신을 미쳤다고 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쯤 되면 자타가 귀신들려 있다는 것을 이미 인지한 상태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그래서 귀신을 잘 쫓는 것으로 세간에 유명한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는 그 교회에서는 어떻게 귀신을 쫓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설교시간 말미에 담임목사가 마이크로 축사를 하며, 구역의 부교역자는 전심으로 외수피를 외치는 기도를 하면 귀신이 쫓겨나간다는 게 전부였다. 솔직히 필자는 다른 교회에 관심이 없지만, 가까운 친척이 그 교회에 오랫동안 다닌 두 분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중의 한 사람은 친척이 정신질환이 시달리고 있다면서, 가끔씩 예배시간에 담임목사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일도 있지만, 아직도 교회에서는 이 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입만 열면 귀신을 죄다 쫒는다면서 전국을 다니며 세미나를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손톱 밑의 가시를 뽑아내지 못하는 웃지 못하는 형국인 셈이다. 또 다른 분의 친척도 이 분과 사정이 다르지 않다. 부부간의 갈등과 싸움으로 인하여 삶과 가정이 초토화되었는데도, 오랜 세월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 부부는 평소에는 개 닭 보듯 지내지만, 교회에 갈 때면 손을 붙잡고 다정한 얼굴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 가정도 귀신이 지배하고 있지만, 이 교회의 목회자들은 그 사정을 꿈에도 알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필자가 굳이 이 교회를 들먹거리느냐면, 그 교회가 귀신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 담임목사는 귀신을 신속하게 쫓는다는 소문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교회는 쇼를 하는 데 선수일 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귀신을 쫓는 것은 귀신들에게 속는 것뿐이다. 진짜 센 놈은 미혹의 영이다. 미혹이란 말 그대로 속이는 귀신들이다. 이 귀신들이 고급영이고 센 놈이다. 예전에 성령께서 필자를 훈련시키실 때, 센 놈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나갔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들은 겉으로 소리 지르고 기이한 현상을 보이는 놈들이 드러나면 귀신들이 죄다 나갔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곳을 쫓아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약한 놈(기침, 침, 하품, 트림, 헛구역질, 구토, 방귀 등으로 도망가는 귀신)들이거나 중간급의 위력(몸을 가렵게 하거나 아프게 하고 소리 지르고 기이한 현상을 보이는 귀신)을 보이는 귀신들조차 쫓아내지 못하는 교회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귀신들을 향해 예수피를 전심으로 외치며 기도하면 된다는 처방을 잊지 않고 말해주고 있다. 예수피를 전심으로 외치는 기도가 축출기도인 것은 맞다. 그러나 누구나 이렇게 외친다고 귀신들이 죄다 도망가지 않는다. 성령의 능력이 가슴에 새겨진 사람들이 기도해야 도망친다. 성령의 능력이 가슴에 새겨져 있다는 의미는 성령이 내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이미 영접기도를 했으므로 자신 안에 성령이 계시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땅이 무너질 정도로 큰소리로 예수피를 외쳐도, 귀신이 꿈쩍도 하지 않는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구차한 변명만을 늘어놓고 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우리네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다시 한 번 짚어보자. 거의 모든 설교에서 하는 말이, 믿고 기도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거나, 전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주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이런 말씀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니까 이 말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네 주변에 믿고 기도한 것마다 응답을 받은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는가? 그들이 말하는 믿음은 자기 확신이나 자기 암시 혹은 심리적인 마음의 상태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세상에서 말하는 믿음의 정의이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이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크도다.’ 혹은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이적과 기적이 나타나고 소원이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해주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기 확신을 응답이 내려오는 믿음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우리네 주변에 널려있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S장로의 치유세미나에서는 선포기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치유해주실 것을 믿고 선포한다.’로 말하는 투의 기도가 선포기도라고 한다. 그래서 그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은 장내가 떠나갈 듯이 큰소리로 자신의 고질병이 나았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고질병이 나았는가? 그렇지만 낫지 않은 사람들은 믿음이 부족하거나, 때가 아직 덜 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지나가던 개가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15:29)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6)
성경에는 의인의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강하고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말하고 있다. 의인이 누구인가?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신 사람들이며 기뻐하시는 자녀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기도가 신속하게 응답이 올 것이다. 응답이 내려오는 믿음은, 자신의 굳센 의지로 얻어지는 심리적인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마음이지 받는 사람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교인들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믿음으로 결부시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이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다. 이들의 결과가 어떠했는가는 여기서 따로 밝히지 않겠다. 이미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이나 기도가 아무런 응답이나 효력이 없다면 쓰레기통에 쳐 넣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성경에 있는 구절이라고 앵무새처럼 외운다고 하나님이 인정하시겠는가?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속내와 동기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펴보시는 분이시다. 이미 당신의 속마음과 폐부(허파, 마음의 깊은 속)까지 알고 계신다. 그러나 벌거숭이 임금님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우리네 교회와 교인들이, 언제나 이 허접스러운 신앙행위들을 그만두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올꼬?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