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교회에서 십자가의 삶이 사라진 이유
이번 주 충주 영성학교의 기도훈련에는, 훈련이 시작되는 목요일이 신정 공휴일이기 때문이어서인지 평소보다 3배 많은 인원이 찾아왔다. 그래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삶의 여정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중에는 신학교를 나와 부교역자로 목회를 하시다가 내려놓고 평신도로 돌아간 이도 계셨다. 그분에게서 목회자로서의 고민이 섞인 질문이 자주 나왔으며, 평소에 자신이 고뇌하던 성경과 삶에 대한 딜레마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가 질문한 내용 중에서, 우리 학생에게 필요한 주제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그 내용은 십자가의 삶에 대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우리 크리스천은 예수님의 피 흘리신 십자가에 자신의 정욕을 못 박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것을 요청받게 된다. 자신의 정욕을 버린다는 의미는 자아를 버린다는 뜻이다. 자아를 버리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조건으로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덕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자아를 버리는 자기부인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자기부인의 어려움에 대해서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종교지도자들이 죄다 믿음이 탁월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이다.ㅎㅎ
지금껏 당신은 수많은 설교에서, 예수님이 요구하는 제자가 되려면 십자가에 정욕을 못 박으라는 투의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설교를 들은 교인들은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기를 굳게 결심한다. 아주 멋진 결심이다. 짝짝짝 그러나 정작 일상의 삶에 돌아가면 탐욕을 버리고 쾌락을 포기하는 이가 거의 없다.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자아를 버리는 삶은, 크리스천이면 누구나 바라는 희망사항이지만 삶의 현장에서 성공하는 이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교인들은 그런 설교를 들을 때만 아멘하고 큰소리로 외치며 대리만족을 하는 분위기이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자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교회에서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고? 그렇다면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게 무엇인가? 주일성수하고 새벽기도회에 나오며, 십일조를 성실하게 내고 교회봉사를 열심히 하며, 교회에서 시행하는 각종 종교행사에 성실하게 참석하며, 담임사사의 말을 열심히 들어야 한다는 게 아닌가? 그게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십자가의 삶인가? 물론 그러한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생활도 성실하게 하지 못하고 가정도 내팽개친 채, 교회에서 요구하는 예배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자신의 정욕을 못 박는 일인가? 교회에서 요구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려면 자신의 욕망을 포기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그게 자아를 버리고 정욕을 못 박는 행위는 아니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예수님 당신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하루에 3번의 기도, 철저한 안식일 준수와 십일조생활 이외에도 360가지 율법을 지키는데 아주 헌신적이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회칠한 무덤이여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시며, 그들의 의(희생적인 신앙행위, 필자 주))를 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일침을 놓으셨다. 예수님은 그들의 실체가 사탄의 무리였다고 밝히고 있다.(계2:9)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한 적이 없는데, 당신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하고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것이 자아를 버리는 십자가의 삶이라고? 지나가던 개가 배를 잡고 웃을 일이다.
십자가에 자신의 정욕을 못 박으며 자아를 버리는 힘의 원천은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하는 데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희생이 무의미하다. 당신의 의지와 능력, 노력과 애씀으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당신의 정욕을 못 박으며 자기부인을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에서 나온다. 성령이 당신 안에 거주하시면서 당신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당신이 정욕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버리는 삶을 선택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으라며 감성을 터치하고 세련된 설교를 하는 목회자는 적지 않지만, 정작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습관을 훈련시키는 교회는 드물다. 그래서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보이는 제자의 모습을 보이는 이들은 없고, 성경지식만 가득 차 있어 머리가 커진 교인들만 보이는 이유이다.
신앙의 연륜이 오래된 당신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차고 넘친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성령과 깊고 친밀한 기도습관이 되어있지 않다면 죽은 지식에 불과할 뿐이다.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오셔야 가슴이 절절해 지며 행동으로 나타난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소유를 버리며 목숨까지도 기꺼이 버리는 제자의 길을 따라가게 된다.
이러한 기도방식을 당신네 교회에서 관심조차 없으며 훈련시키지 않더라도, 당신만은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쉼 없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 십자가에 자신의 정욕을 못 박는 진정한 예수 그리스의 제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 시대의 교회는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나타내는 제자양육을 하지 않는다.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서, 기도는 하지 않고 먹고 마시며 낄낄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전철을 밝아가고 있는 중이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