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독)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갈 때 꼭 들고 있어야 하는 것(고난주간, 가상칠언)
요 19:30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이번 주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친히 고난을 당해주신 사실에
감사하며 기념하는 ‘고난주간’입니다.
우리를 죽기까지도 사랑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주신 자’(요 6:39)들의 죄를 홀로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는 구원의 기회를 은혜로 거저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그 예수님을 믿고, 우리 자신의 죄와 진리를 깨달아
모든 죄를 회개한 후 마음과 행위를 온전히 돌이킴으로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지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갚을 수가 없는 이 엄청난 은혜에
진심으로 예수님께 감사하고,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찬양하며,
예수님과 고난도 함께 받고, 영광도 함께 받게 될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들이 되어
이제 곧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 하십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말씀인
‘가상칠언’을 우리가 오늘 이 시간 다시 한 번 묵상하며,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사랑하는 예수님을 우리가 더욱 많이 닮기를 굳게 다짐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가상칠언 1)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눅 23:34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저들’이란 사형집행자인 로마 군인들뿐만이 아니라
산헤드린 공회에 속한 자들, 이 일에 가담한 모든 자들,
불과 얼마 전 ‘호산나!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했던 것을 일순간 철회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외쳤던
어리석은 군중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겨주셨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미움과 교만과 악독이 가득한 그들에게도
예수님께선 회개와 돌이킴이라는 구원의 길로 초대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의 ‘저들’ 중에는
저와 여러분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란 우리로서는 다 이해할 수가 없는 신비함,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의 부끄러운 죄들, 은밀한 죄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악한 마음까지도 다 알고 계시고,
심지어 앞으로 범하게 될 죄까지도 전부 알고 계시지만
내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품어주시며, 회개를 통한 구원의 길로 초대해주고 계십니다.
회개하고, 또 죄를 범하고, 또 회개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들을 비롯한 인류의 어리석고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참된 회개에 대해서는 또 용서해주시고, 또 안아주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의 그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는 성숙한 제자들이 정말로 되십시다.
개가 토한 것을 먹고, 또 토하고, 또 먹으며, 그 위에서 뒹구는 것 같은
어리석은 개 같은 모습에서 이젠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실만한,
하나님께서 마음 놓고 일을 맡기실만한 믿음직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십시다.
하나님을 매일 기쁘시게 해드리기만 하기에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정말로 짧을 것입니다.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면서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얼마 후에 인류는 아깝게 흘려보내버린 지난 시간들을 크게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 후회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가상칠언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39-43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완전히 변화되어서 그것을 꼭 행위로 증명할 시간이 있어야만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사망하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고 회개를 한 사람은
변화된 모습을 증명하지 못했고, 열매가 없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며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심히 잘못된 생각이며,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을 감히 인간이 결정하려는 교만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신앙을 고백하는 그 순간, 그 말과 마음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판단할 일도 아닙니다.
또한 방금 회개한 그 사람이 만약 죽지 않고 더 살 수 있게 되었다면
그 이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 것인지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미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회개 직후에 죽었어도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결정하십니다.
그렇기에 이 부분에 관해선 사람들끼리 서로 시시비비할 일도 없는 것입니다.
즉 언제나 옳으시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공정하시며, 불의가 없으시기에
우리가 이 부분에 관해서는 논쟁할 필요조차 없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기 전까지는,
즉 사망하기 직전까지는 어떤 경우에도 구원의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많은 분이십니다.
어떤 교만한 자들이 경솔하게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어쩌지 못하시는 구원 받을 수 없는 자”는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의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에 따라 우리를 쉽게 버리고, 외면하며, 포기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포기하는 그 순간이 바로 끝’ 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앞으로 우리 앞에 어떤 일들이 있을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절대로 자살하지도 말고,
끝까지 인내하며 승리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가족으로
함께 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가상칠언 3) 예수님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심
요 19:25-27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효심이 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행하셨는지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고,
또한 닮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이 바쁘다거나(돈 버느라 바쁘다),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을 하느라 바쁘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부모님을 전혀 찾아뵙지도 않고, 부모님의 마음을 계속해서 불편하게 해드리며,
효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이 말기암으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아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 형제들이 먼 길을 직접 찾아가서 말해도
사역하느라, 돈 버느라 바쁘다며(혹은 부모님이 싫다며) 나타나지 않아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 같은 병실 사람들 등
병원 관계자들이 혀를 차게 만들면서 여러 사람들을 실족시키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사망 직전 혹은 돌아가시고 난 후에 갑자기 나타나
슬퍼하는 연기를 하며 효자/효부/효녀/효서 행세를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효도는 살아계실 때 하는 것이지 돌아가시고 난 후에 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악한 모습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병원에서 쪽잠을 자며 간병을 하느라 수개월간 고생한 다른 가족들 앞에선
오히려 교만한 눈으로 당당하게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스스로에게 멋대로 적용하여
자신들의 교만, 무례함, 악함을 애써 외면하며 자위하고,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말은 꺼내지도 않은 채
스스로를 셀프로 용서하면서 합리화하는 모습입니다.
더 나아가 성도들 앞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직통계시를 받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종인 척,
또한 신실한 교인인척 연기를 합니다.
그늘진 곳에 몰래 숨어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면서 말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을 닮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 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겠다고 정해두신 그 날,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밝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후 5:9-11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실제로 “바빠서 시간이 없다.” 고 말하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꼭 만나고 싶은 사람, 그리고 만나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을 만나야 할 때는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야간이라도, 쉬는 날이라도 반드시 만납니다.
즉 “시간이 없어서 당신을 만나지 못한다.” 는 말의 의미는
“당신은 나의 우선순위에서 순위권 밖이다. 최하위다.” 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정확합니다.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가족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 일보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이 되는 것이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서 그런 명령을 하시는 것을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은 당신께서 직접 세우신 계명과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려 무질서하게 만드는 분이 아닙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부모님을 최대한 공경하며,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효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신앙생활을 할수록 체득으로 알 수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고,
예수님의 효심을 보면서 자신도 닮기 위해 효도를 하는 것이
예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는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은 성경말씀을 처음부터 다시 바르게 묵상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마 15:3-6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아주 기본으로 갖춰야 할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모님을 공경하며, 또한 그렇게 가르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효심을 닮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공경하며, 사랑하며, 효도하십시다.
덧붙여, 자녀가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최고의 효도는
부모님이 걸어가실 구원의 길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중보기도하는 것과
더 나아가 자신도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마음을 잘 지키며 구원의 길을 걸어 부모님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가상칠언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 27:46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 말씀을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의미입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
말씀의 배경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이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버리셨나보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바로 시편 22편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모두가 시편 22편을 외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기에
누군가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까지만 말해도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주기도문인 것을 즉시 알아차리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만을 말씀하셔도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지금 예수님께서는 시편 22편을 말씀하고 계시구나...’라고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시편 22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만이
이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는 구약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신약만이 중요하다.
구약은 읽을 필요가 없고, 신약만 읽으면 된다.” 라는 희한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 한 구절만으로도 구/신약 모두가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시편 22편의 처음은 절망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마지막에는 승리와 찬송의 노래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 시는 모두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부분은 고통과 불안과 절망,
두 번째 부분은 시인의 원수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부분에서 이 시는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간구함으로
깊게 드리워졌던 어두움이 드디어 사라지고, 회복과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하나님의 영광과 환희가 가득한 찬양의 노래로 바뀝니다.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눈앞에서 영광스럽게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광경은 구원받은 온 세상의 민족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에 참석하고,
하나님의 위엄 앞에 모든 자들이 엎드려 절하게 되는 장엄한 모습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천국 잔치에서 배불리 먹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마저
영광스런 하나님 앞에 모두 엎드리게 되는 장면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어 가시면서 보고 계셨던 미래이며,
이제 곧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예수님의 소망입니다.
온 세상 곳곳의 여러 민족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모든 이가 하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게 되는 미래.
하늘과 이 땅의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모두 하나님께 온전히 속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온 세상과 모든 민족을 다스리시게 될 다가올 미래.
바로 그 미래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당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누리게 될 그 미래를 위해서 말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의 이 엄청난 은혜를 알게 되면
예수님을 가장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가장 큰 사랑을 품고
자신에게 남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반면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엄청난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지 않고, 그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고난 받지 않고, 잘 먹으며 잘 살다가 마지막엔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기에
예수님을 믿는(이용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둘 중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인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판단해봐야 합니다.
가상칠언 5) 내가 목마르다
요 19:28-29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고통을 덜어드리려는 심정으로 쓸개 탄 포도주를 드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마 27:34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께선 당신이 대신 속죄 제물이 되어주시는 그 중요한 시간에
마취성분으로 취해 있지 않으시고, 마지막까지 온전한 정신으로 깨어서 감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육신을 입고 계셨기에
그 과정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 극심한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저와 여러분들을 죽기까지도 사랑하셔서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해주시기 위하여
마취성분인 쓸개 탄 포도주를 피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토록 우리를 사랑해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셨습니다.
얼마나 목이 마르셨을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범한 죄들 때문입니다.
가상칠언 6) 다 이루었다
요 19:30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쓸개를 섞은 포도주는 드시지 않으셨지만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해면에 적신 신 포도주를 드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를 말씀하시기 위하여 혀를 약간 적시셨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셨습니다.
지금도 이루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의 차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각자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갈 차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그 길을 우리가 따라가는 것이니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혹시 저와 여러분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
생활의 염려를 비롯한 모든 근심과 걱정이 있다면 이젠 다 내려놓으십시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에 정말로 염려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염려하고 있는 그 부분이 지금은 해결이 어려울 것 같이 커 보이고,
날마다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시도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이었을 것이고,
결국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마귀 따위는 언제나 교활하게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지만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을 결코 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예수님과 함께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진심으로 의지하기 때문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꺾을 수 없고,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가장 강하고 담대한 사람들입니다.
가상칠언 7)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눅 23:46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끝까지 순종하시며, 온전히 의지하셨습니다.
우리도 이제 의심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100% 온전한 신뢰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십시다.
하나님은 유일하게 우리가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친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때때로 꾸중해주시고 훈계해주시면서 성장시켜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보살펴주시는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를 많이 사랑해주시는 아빠입니다.
아버지가 혼내셨다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리석고 철없는 자식인 것처럼
우리가 죄로 인하여, 혹은 나태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멀어졌을 때
혹은 어떤 날, 하나님께 꾸중과 책망을 들었을 때
죄를 범한 아담이 숨기에 급급했던 것처럼 우리도 숨기만 한다면
아버지의 마음은 아프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우 어리석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드리는
불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꾸중하셨어도 즉시 “아버지~” 하면서 나아가면
꼭 끌어안아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지금 하나님과 자신이 멀어져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도,
하나님 앞에 서기에 부끄러운 부분이 있는 분들도
구석 어두운 곳을 찾아 숨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나아가십시다.
그럴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반드시 꼭 끌어 안아주시며
따뜻하게 위로해주시는 것을 저는 체득으로 확신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었어도, 괴로워서 다 포기하고 싶었어도
그 품에 안겨 눈물 흘리고 나면 전부 깨끗하게 씻겨 집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새 힘을 얻습니다.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는 진정한 평안과 안식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남은 시간 동안 오직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저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 라고 말씀드리면서
눈을 감으십시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예수님의 이 엄청난 사랑은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 수도 없고,
형용할 수도 없는 신비,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내어주시면서 까지 우리에게 주신 이 소중한 구원의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십시다.
예수님의 이 엄청난 사랑과 은혜를 진심으로 깨닫고,
이제는 우리도 예수님을 죽기까지도 가장 사랑하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이 되십시다.
무려 온 세상을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와주셨다는 것 자체가
이미 승리가 확정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실 때 일부러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와주셨기에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을 전부 당해주셨습니다.
주리셨고, 아프셨고, 외로우셨고, 목마르셨고, 괴로우셨습니다.
말씀 한 마디면 간단히 피하실 수 있었던 그 모든 고난과 죽임을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묵묵히 다 받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엄청난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부디 깊이 새겨놓으십시다.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둔 예수님의 그 사랑이
우리가 앞으로 가게 될 더 좁은 문과 더 어둡고 협착한 길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밝은 등불이 될 것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예수님께서 온화한 미소를 보이시며,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기다려주고 계실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더 좁은 문과 더 협착한 길에서도
우리가 밝게 웃으면서 나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등불을 반드시 들고 앞으로 나아가십시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인내하며, 부디 끝까지 승리하십시다.
세상 끝까지 우리와 함께해주시겠다 언약하신 예수님을 의지하며,
끝까지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는 구원의 길을 걸음으로
예수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자로서
장차 예수님의 영원한 가족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곧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0.04.05.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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