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최소한의 삶의 의무 생명의 은인으로 알고 이때부터 그를 주군으로 삼아 충성하기로 굳게 결심한다. 그는 즉시 무릎을 꿇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주군을 우러러 보며 이렇게 고백한다.
일체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주군과 가시밭길을 걸으며 동고동락, 운명을 함께 한다. 또한 주군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던진다. 주군이 죽으면 그도 죽을 것이요, 주군이 전쟁에 마침내 승리하여 나라를 얻으면 그 나라의 영주가 되어 그와 함께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잠을 자지못해도, 심지어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 해도 그는 오직 주군의 안위만을 염려한다. 그에게는 사생활이 없으며, 심지어 가족이나 부모조차 중요치 않다.게다가 그는 주군께 충성한 그 어떤 댓가조차 바라지 않는다. 은인에게마땅히 해야할 합당한 삶이기 때문이다. 구원자. 구주,혹은 구세주라고 부른다. 또한 구세주란 한 마디로 ‘생명의 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거나, 아니면 갈증으로 사막 한가운데 쓰러진 사람을 살려준 정도의 은인이 아니다. 다 ?으시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주신 분이다. 즉, 단순히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희생으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지불하시고(단지 말뿐이 아닌)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즉시 건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셨다.
수 있도록끝까지 붙드시고 기도하시며, 날이 맞도록 지키시고, 때를 따라 양식과 음료로 먹이시는 분이다. 보여야 마땅하다. 이것은 단지 구원의 조건이 ‘행위냐 은혜냐’의 소모적인 논쟁의 차원을 넘어 당연히 해야할 우리 모두의 신성한 의무다. ‘일치하느냐’가 문제다. 만일 이 양자가 다르다면 그 믿음이야 말로 아무런 생명력이 없는 죽은 믿음이다. 의심없이 그렇게 믿는다 해도 실체가 없는 그같은 믿음은 그 자체가 거짓된 것일 뿐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 예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믿음이란 개념은 오직생명을 빚진 자에 걸맞는 삶을 살아갈 때만이 살아있는 참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면 자신의 전 생애를 의탁하고, 오직 주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마땅하다. 그 자가 바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요, 그것이 바로 최소한의 신자로서의 의무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많은 신자들은 이 로드십(Lordship)에 대한 개념조차 내팽게친 채 예수님을 자기 뜻대로 조정하려들고, 심지어 이용하기까지 한다(스스로 인정하기 싫겠지만). . . ‘생명의 은인’으로 섬기고 있는지 매 순간 관찰하신다. 만일 우리가 그정도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분이 보실 때) 우리의 구원은 의심받아 마땅하다. 즉,.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다”라고 말한 사도들의 경고를 다시 한 번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깊이 새기고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자신을 속이지 말라!!! 오직 이런 상황에서의 확신만이 신뢰할 만하다. 또한 그런 자에게 주께서 친히 샘솟는 기쁨과 강같은 평화(성령충만)로 그 믿음을 확증해주시리라. 할 렐 루 야!! 사진설명:2013년 12월 25일 동나이성 원주민 복음전도현장(200여명 대부분 영접 및 재헌신) http://cafe.daum.net/waitingforjesus/O1TM/108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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