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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마당**/은혜되는좋은글

내가 어려서...

by With Lord 2013. 6. 22.

 
내가 어려서 농촌에서 살때에 기억이 난다.
화로가 불씨 역할을 했다.

그때는 라이터는 구경도 못할 때이고

가을이 되면 갈대를 베어다 잘라 
투가리에 노오란 황 녹인 것을  끝에 찍어 두었다.
그 끝을 화로불에 대면 불이 타 올라 성냥역활을 하게된다.

그것도 떨어지면
화로에서 불덩이를 하나 들고나가 사랑잎에 대고 입으로 불어 불을 붙였다.

저녘이 되면 아궁이에서
불 검댕이나 불 솔방을 하나를 집개로 집어다 석유 등잔 심지 부근에 대고 입으로 불어댄다.
한참 그렇게 불어대면 등잔 고다리가 가열되어 뜨거워지고 

계속해서서 불어대면 드디어 불이 붙는다.
불이 확 붙는 순간이 있다.

한참 불어대는 것이 어지럽고 힘들다고 쉬엄쉬엄 불어대면
가열되지않고 등잔 심지에 불이 붙을 수도 없습니다.

나는 회개란 말을 볼때마다 이 일이 생각난다.

요한계시록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불이 붙는 그 순간까지...
비추임을 받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그 순간 까지...

필사적으로 부르짖어 구해야한다.
쉬엄쉬엄 한다면 결코 빛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마태20:29-33
저희가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좇더라  
소경 둘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희를 불러  
가라사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소리질러 구하지 아니함은 
자신이 소경이라는 것을 알지 못함이다.

요한9:3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마태15: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야고보4:2-3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예레미야 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2013. 6. 20  04:37

청천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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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다싱의 영성의 흐름  


선다 싱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엄두섭 지음 < 기독교 영성의 흐름 >이란 책에서 부분 발췌하여 올립니다.

인도의 선다 싱은 1889년 9월3일,
인도 북부의 파티알라 람푸르에서 부유한 시크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힌두교도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에 는 기독교 장로교 계통의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성경과목이 싫어졌다.
기독교 반대운동을 하면서 친구들이 보는 가운데 성경을 찢어 불태워 버렸다.
성경을 불태우고 나서 사흘 동안 선다 싱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불안으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식음을 전폐한 채 방안에 틀어박혀 번민하다가 견딜 수 없어서 밤중에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신들에게 기도했다.

" 참 신이 계시면 저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주십시오.
만일 그렇게 못한다면 내일 새벽 5시 첫 기차가 지나갈 때 철로에 누워 자살해 죽고 말겠습니다."

그는 밤을 새우면서 그렇게 기도했다.
새벽 다섯 시에 그의 집 앞으로 지나가는 라호르 행 특급열차가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밤을 새우면서 기도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4시 반에 그는 기도하고 있는 방 안에서 거대하고 놀라운 빛을 보았다.
너무도 큰 빛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화재가 난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그 큰 광채 속에 신의 형상이 나타났다.
영광과 자비가 충만한 모습이었다.

" 누구십니까 "
"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다."
처음엔 시크교의 신이거나 힌두교의 크리슈나가 아닌가 생각도 했지만,
뜻밖에도 그것은 그가 그렇게 미워하던 예수의 형상이었다.
예수님은 힌두어로 말씀하셨다.

" 언제까지 나를 핍박하겠느냐.
나는 너를 구원하러 왔다."
순간 선다 싱은 깨달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지않고 살아 계시며 이분이 바로 그분이라고.

그는 나타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었던 놀라운 평화를 느꼈다.
그가 머리를 들었을 때 환상은 사라졌다.

선다 싱은 아버지에게 달려가 자기는 기독교인이 되겠다고 고백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정신이상이 된 줄 알았다.
그후 선다 싱은 집에서 쫓겨났다.

가족들은 그를 추방하면서 어디 가서 죽으라고 도시락에 독이 섞인 빵을 넣어보냈다.
그날 밤 그는 나무 아래서 지새우면서 천국에서 첫날밤 자듯 하나님 현존 속에서 지냈다.
그날 새벽 예수님을 만나볼 때 그의 영혼 속으로 물밀듯 밀려든 평화는 그의 일생 한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특별히 그가 핍박이나 어려움을 겪을 때는 더욱 깊어졌다.

1905년 9월 3일, 선다 싱은 시물라에 있는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인도인들이 존경하는 성자 사두의 길을 걷기로 하고 의복도 사두 옷을 입고
삶의 방식을 그렇게 선택했다.

머리에 터번을 감고 사두 옷을 입고 성경책을 들고 땅끝까지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그의 이상이었다.
그것은 금욕적이고 고독 속에 명상하며 신비적 황홀에 잠기는 생활이다.

그는 신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종교는 머리가 아닌 가슴의 문제'라는 것을 느꼈다.

선다 싱에 가장 큰 감화를 준 책은 토머스 아 켐피스의 < 그리스도를 본받아 >였다.
그 책은 그가 늘 지니고 다니며 규칙적으로 읽는 유일한 책이었다.
선다 싱에게 있어서 특기할 만한 것은 그의 티베트 전도였다.
그의 평생 그것이 소원이었다
1908년 부터 그는 일년의 반 이상을 티베트에서 전도하며 지내고
겨울에는 인도에 돌아와 일했다.

선다 싱의 이야기 가운데서도 우리가 가장 신기하게 느끼는 것은
1912년 여름 그가 히말라야 산맥 중 신들의 산, 
철인들과 예언자들의 고향이라 생각되는 카일라쉬를 향해 여행하다가 암굴을 발견한 이야기이다.

그는 비탈길에서 눈에 미끄러져 계곡으로 굴러 떨어져 정신을 잃었다.
얼마 후 정신이 들어 눈을 떠 보니 자기가 동굴 앞에 누워있는 바로 앞에 괴상한 짐승이 앉아 있었다.
곰 비슷한데 소름이 끼칠정도였다.
선다 싱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그것은 사실은 사람이었다.

옷은 입지도 않았는데 머리털은 길게 자라 온 몸을 덮고 있었다.
눈썹도 길게 자라 있었다.
더욱 놀란 것은 그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과 옛날 손으로 쓴 양피 성경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알 수 없었으나 마하리시라고 불렀다.
그것은 거룩한 스승이란 뜻이다.
노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선다 싱과 만났을 때의 노인은 무척 고령이었다.

그는 본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났다.
기독교로 개종하고 75년간 세상에서 전도여행을 하다가 105세에 은둔하여 살려고 
히말라야의 카일라쉬 산에 들어왔노라 했다.
21개 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고 산에 들어와 수천 가지 약초를 캐먹으며 
영안이 열려 영계를 볼 수 있고, 천사들과 그리스도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를 만난 것은 선다 싱에게 충격이었다.
그후 선다 싱은 인도의 모든 지방과 티베트 전도를 할 뿐아니라 전 세계 전도여행을 했다.

미국과 일본, 영국에 가서는 오래 머물러 설교도 했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마다 놀란 것은 예수님의 인상을 강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를 보고 엄마에게 "엄마, 저분이 예수님이에요?"라고 물을 정도였다.

선다 싱이 전도여행을 하던 도중에 행방불명이 되어 사라진 것이 1929년이다.
그가 어디서 죽었는지 수색대가 찾아 다녔으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신비의 인물의 실종은 신비에 빠지고 말았다.

티베트 인에게 살해되었을 거라고 짐작하는 이도 있고,
선다 싱이 그의 친구요 스승인 카일라쉬의 마하리시와 함께 지금도 살아 있으면서
세계를 위한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그가 한 말 중에 새겨들어야 할 말을 몇마디 적어본다.

 < 하나님 임재 >

" 이 세상에 나에 대하여 아는 자는 많으나 나를 아는 자는 적다.
저들이 나와 직접 관계가 없는 까닭이다."

" 성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히브리어나 헬라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쓴 예언자들 중에 강림하셨던 성령과 친히 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

 < 기도 >

 " 기도에 의해 하나님의 계획을 변경할 수 없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스스로 변한다.
우리들이 기도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영광된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 변하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알고 싶다면 성경을 읽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만약 예수를 직접 알아야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기도를 해야 한다.
읽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기도는 진리의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이며 참된 열쇠이다. "

" 만일 우리의 기도가 깊지 못하다면 
우리의 생애는 사탄의 습격을 당하여 정복될 것이다."

< 십자가 >

" 고통과 번뇌의 숨은 뜻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죄의 결과라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신다.
십자가는 우리의 영적 생활과 진보 사이의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 만일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고통하면
우리의 영혼 속에 숨겨진 부가 광명 속에 나타날 것이다. "

< 실재 >

"죽은 사람은 공기 속에 누워있어도 호흡을 하지 않고 또 감각도 없듯이,
죄로 죽은 사람은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실재를 감각하지 못하고 
기도의 호흡도 하지 않는다."

< 잠수부 >
"잠수부가 바다 밑에 진주를 캐려고 들어갈 때는 폐속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호흡을 멈추어야 하듯이, 신자도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 

세상의 공기를 호흡하는 일을 멈추고 이 세상에 대해서 죽지 않으면 안된다."

< 구원 >

"구원은 단순히 죄의 용서일 뿐아니라 죄로부터 해방되는 일이다.
많은 죄인들이 죄가 용서된 후에 그들의 죄 가운데서 죽어간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실 뿐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다."

 < 회개 >

"회개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필요하다.
하늘나라는 미래의 나라가 아니다.
지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가장 작은 죄라도, 또 나쁜 한가지 생각이라도 우리의 희망을 멸하며
하늘나라 밖으로 쫓겨나기에 충분하다.
작은 죄라고 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마치 병을 일으키는 세균처럼.. "

 


[출처] 선다싱의 영성의 흐름|작성자 꿈돌이

 

http://cafe.daum.net/cgsbong/20g7/36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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