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8일
아침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 시편 73:22
이 시편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인 다윗의 고백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자신의 속사람에 관해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매"라는 우리가 통상적 용어로 사용할 때 쓰는 의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시편 앞 부분에서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우매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라고 고백하는데, 오만한(우매한) 자라는 말 속에 죄가 내포되어 있음을 나타냅니다. 자신을 이같이 "우매한' 존재로 간주하고, "내가 이같이 우매함으로" 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우매한지 그것을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악인들에게 예비되어 있는 끔찍한 종말을 망각하고, 그들의 현세적 번영을 질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를 지혜롭다고 칭할 만큼 다윗보다 더 나을까요! 우리는 이미 완전함에 도달했다거나, 하나님의 채찍으로 징계를 받아 우리 안에서 완악함은 모두 사라졌다고 고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 이것은 얼마나 큰 교만일까요!
다윗이 그렇게 우매하다면, 자신을 평가할 때 우리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우리는 얼마나 더 우매할까요! 신자여, 뒤를 한 번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에게 그토록 신실하셨을 때, 당신이 그분을 얼마나 의심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에게 더 축복을 주시려고 잠시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도록 하셨을 때 "안 됩니다. 아버지" 하고 우매하게 부르짖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섭리들이 합력하여 당신의 선을 이루도록 임할 때, "이 모든 것들은 나를 반대하는구나"라고 탄식하면서, 그것들의 의미를 어둠 속에서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했던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죄를 즐거워하여 참으로 그 쾌락이 당신에게 쓰라린 후회의 뿌리가 되었던 적이 얼마나 자주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확실히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안다면, 우리의 우매함이 죄를 포함한 우매함이라는 고소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우매함"을 깨닫고 우리는 다윗이 내린 결론 곧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소서"(24절)라는 간구를 우리 자신의 결론으로 삼아야 합니다.
저녁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 사도행전 10:38
몇 마디 말씀에 불과하지만, 이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절묘한 축소판입니다. 몇 번의 묘사에 불과하지만, 그 그림은 주님의 필법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가장 충분하고, 가장 폭넓고,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 구주에 관해, 오직 구주에 관해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이 묘사를 통해 그분은 개인적으로 선하신 분임이 분명합니다. 복음서는 끊임없이 주님이 친히 문둥병자의 몸을 만지셨다고, 그분이 눈 먼 자의 눈에 진흙을 바르셨다고, 또 멀리서 말씀만 해달라고 요청받으신 경우에는 그분이 묵묵히 그 병자에게 직접 가셔서 친히 고쳐주셨다는 것을 전해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선하다면 몸소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당신 자신의 손으로 자비를 베푸십시오.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나 친절한 말 한 마디는 베풂의 가치를 높여줄 것입니다. 친구에게 그의 영혼의 상태에 관해 말해주십시오. 당신의 사랑이 담긴 호소는 도소관에 가득 차 있는 논문들보다 휠씬 더 큰 효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선을 행하시는 방식은 그분이 쉬지 않고 선을 행하신 분임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온 사람들에게만 선을 베푸신 것이 아니라 "두루 다니시며" 자비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온 유대 땅에서 그분이 나타나신 것을 기뻐하지 않은 마을이나 동네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많은 신앙인들이 단조롭고 게으르게 주님을 섬기는 것에 크게 경종을 울립니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선을 행하는데 부지런해야 합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을 행하시기 위해 자기의 길을 벗어나기도 하셨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주님은 위험이나 어려움 때문에 지체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은혜를 받을 대상들을 찾아다니셨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만일 이전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새로운 계획을 시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실험이 때때로 일반적인 방법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말씀 속에는 그리스도의 인내와 그분의 한결같은 목적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실천적 주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
'**바보공간** > 스펄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 스펄전 묵상 (0) | 2015.07.30 |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 스펄전 묵상 (0) | 2015.07.29 |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 스펄전 묵상 (0) | 2015.07.27 |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 스펄전 묵상 (0) | 2015.07.26 |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 스펄전 묵상 (0) | 2015.07.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