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다단하다. 우리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스무 권 남짓의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 웬만한 지식은 습득한 것으로 인정된다. 공부를 선택된 사람들도 몇 년을 열심히 하면 지식인 측에 들 수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글자도 모른 채 평생을 살다 죽었다. 먹고 살기 위한 직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만 있으면 더 이상의 공부는 불필요했다. 더구나 TV나 스마트 폰, 컴퓨터도 없었으니, 해만 지면 잠자리에 드는 게 유일한 선택이었을 게다. 그래서 그 시대의 사람들은 무료한 시간을 때우는 것이 주요한 일거리였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태어나서 걸음마를 걷기 시작하면 배우는 일을 시작해서 서른 살이 되도록 까지 수많은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고 엄청난 분량의 책과 씨름해야한다.직장에 들어가서도 배우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세상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예전에는50년 동안 변화될 것이 이제는 1년이 지나면 바뀐다고 하니 그 고단함과 피곤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래서 정신질환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충분히 먹고 살만한 부를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복잡하고 바쁜 세상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평안이 들어찰 여유가 없다. 슬픈 일이다.
분주하게 살지 말라.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분주하게 사는 게 보통의 삶의 모습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바쁘게 뛰어다녀야하며 주말이나 주일에도 많은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소비하며 즐기고 노는 일로 분주하다. 그래서 정년퇴직하여 할 일이 없어지거나 몸이 아파 병원에 누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무료해서 견딜 수 없어한다. 그래서 TV나 컴퓨터 게임에 빠지거나 스마트 폰을 연신 열어보느라 정신이 없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돈을 벌어 쌓아두는 일과 쾌락을 추구하는 일에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써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영혼이 평안할 수 없다. 평안을 누리는 삶이 되려면 분주하게 사는 삶의 방식을 단순하게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평생 살아온 삶의 습관을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서 얻어온 즐거움을 포기해야할지도 모르며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야 할 것이다.
분주하게 사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버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이는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만 말하는 게 아니다. 직장인은 정해진 업무시간이 시간이 있지만, 그이외도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관계된 사람들과 교류를 나누고 동호회나 계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수시로 만나 술자리를 같이 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학원에 수강하며 외국어를 배우고 전문가에게서 고급경험의 노하우를 쌓는 시간까지 보탠다면 엄청난 시간이나 에너지,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물론 각박한 세상에서 무한한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이만한 투자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하기 이전에 무슨 목적으로 이 일을 하는지 곰씹어 볼일이다. 돈을 많이 버는 이유는 행복한 삶에 필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과도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은 도리어 행복한 삶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절제와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진정한 평안은 세상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에 있지 않다. 하나님이 주셔야 가능하다. 물론 하나님은 노동을 허락하시며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건강도 노동에서 얻을 것이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적당한 노동을 말하는 것이지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해치면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탐욕스럽게 돈을 버는 일에 너무 분주하다. 그래서 영혼이 늘 피곤하고 마음이 쉼이 없다. 과도한 욕심을 위한 분주한 일과를 내려놓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평안한 영혼은 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돈 욕심을 내려놓는 일은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일처럼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재물과 하나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으며,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희귀한 일일 것이라고 못 박으셨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는 그날의 양식만을 구하라고 하셨으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역시 세상 사람처럼 돈을 추구하고 재물을 숭상하는 황금만능의 물질주의 풍조에 빠져 살아가기에 언제나 마음이 바쁘고 영혼이 분주하다. 생계비를 위한 노동은 필요하지만 하나님이 매일의 생계비를 채워주신다는 믿음이 없이 오직 자신의 능력과 경험, 세상이 주는 지혜와 지식으로 생계를 채운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신앙의 소치이다. 그렇다면 돈이 주는 만족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재물이 주는 만족은 끝이 없다.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심하게 되듯이 생계비를 넘는 돈을 쌓아두면 둘수록 더 갖고 싶어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보다 돈 욕심이 없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저 하루에 필요한 양식만 있어도 만족하지만 부자들은 그렇지 않다. 쌓아두고 쌓아둘수록 만족함이 없다. 그 탐욕은 악한 영이 넣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탐욕은 우상숭배라고 말했던 것이다.
성경에서 말한 것처럼 일용할 양식인 생계비에만 만족하고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또한 생계비라는 것 역시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고 있게 된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의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이 생각하는 생계비와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생각하는 생계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기준이나 원칙은 동일하다. 자족과 절제의 성품이 밴 상태에서의 생계비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기준을 따라하고 있다. 30평 이상의 아파트에 중형차, 자녀들의 대학교육에 해외연수 등의 충족시키려면 최소 월 3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생계비로 생각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다. 10평짜리 임대아파트에 살며 월 100만원의 수입이라도 먹는 것과 입는 것 그리고 누울 곳에 부족하지 않다고 여긴다. 자족과 절제의 성품이 없다면 자신의 수입이 항상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하나님은 매일 매일에 필요한 생계비를 기도로서 요청하면 충족시켜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평생 필요한 재물이 당장 채워져야 한다고 여기기에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고 있다. 분주하게 살면 더 많은 수입을 얻을지는 몰라도 평안하고 만족스러운 영혼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일과 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영혼이 쉼을 얻을 수 있다.
방탕한 삶을 버려라.
지하철을 타면 피곤에 절어 졸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죄다 스마트 폰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다. 무엇을 하는 지 슬며시 엿보면 인터넷게임을 하거나 카톡으로 채팅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학생들이 수업을 파하고 학교를 나오면 적지 않은 숫자가 PC방에 가서 게임을 한다. 학원에 간다며 PC방에 가는 이들도 많고 집에 있다면 아예 게임에 파묻혀 살다시피 한다. 게임을 하는 것은 인터넷 안에서 노는 일이다. 그 부모들도 틈만 나면 인터넷게임을 하거나 채팅에 몰두하고 있으니 자녀들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어른들도 회사를 마치면 친구들과 직장동료들과 술집으로 노래방으로 돌아다니다가 자정이 넘어 귀가하기 일쑤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노는 일에 빠져있다. 성경은 쾌락에 빠져 하루를 사는 이들을 방탕하다고 일컫는다. 방탕은 탐욕과 더불어 죄가 지배하는 사람들의 속성이다. 방탕한 삶으로 이끄는 주된 원인이 술이다. 술을 마시며 기분이 좋아지기에 남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선호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술은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무너뜨리는 주범이며 술에 취해 판단력을 잃게 되면 마음이 담대해져 음란을 추구하고 불륜을 저지르거나 범죄에 쉽게 빠진다. 뇌물이나 불법 향응, 범죄모의는 으레 술판이 거나하게 동반한다. 방탕한 삶에 빠진 사람은 정신이 피폐해진다. 술을 즐기다보면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도박판을 기웃거리다 도박중독이 되며 쇼핑하는 즐거움에 빠져 쇼핑중독에 걸려들게 된다. 중독이란 정신이 황폐된 상태를 말한다.
방탕한 삶이 평안한 영혼에 치명적인 해악이 되는 이유는 정신과 몸을 포로로 만들기 때문이다. 담배를 모르는 어린아이들은 니코틴이 결핍될 때 느끼는 불안이나 초조한 상태를 전혀 모른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느끼는 금단현상에 대해 무지하다. 담배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담배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일정기간 내에 담배를 피워 니코틴을 몸 안에 주입시켜야 한다. 알코올 중독은 그 폐해가 엄청나다. 재정적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고 건강을 잃고 가정을 파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의 공통점은 술의 포로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쾌락에 중추신경이 마비되면 삶은 물론 영혼까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갖다 바쳐야 한다. 그러 한 이들에게 평안한 영혼은 없다. 쾌락과 영혼을 맞바꿨기 때문이다. TV는 건전한 모습을 가진 또 다른 중독의 이름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드라마 시간이 되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으며 남편은 뉴스를 보지 못하면 안절부절 못한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다시 볼 수 있어 조금 나아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TV가 그들의 생각을 쥐고 있다. 퇴근해서 식사를 물리치면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부부가 TV앞에 같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 대화는 거의 없다. 가정에 TV가 끼어들어 부부와 부모와 자녀사이를 떼어놓은 것이다. 이들은 TV 드라마나 오락프로가 주는 즐거움에 빠져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 산다. 평생 TV앞에 앉아 있다가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가? TV가 주는 쾌락을 버리지 못하면 평안한 영혼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그렇잖아도 돈 버는 일에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나머지 시간도 TV보는 일에 바치는데 정말 소중한 일을 할 시간을 낼 수 있겠는가? 행복한 삶을 갉아먹는 해악한 일을 버리지 않고서는 기름진 영혼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빚을 지지 말라.
누군가에게 갚을 돈이 있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평생 갚을 돈이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겠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빚을 지고 사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이 주인이 되는 금융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금융기관들의 주 수입원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는 받는 것이다. 그래서 이 수익사업을 번창하게 하기위해 정치가들에게 선거자금을 대주고 관료들을 자기편으로 만든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금융기관에 부합되는 법을 만들고 관료들은 우호적으로 행정을 하고 있다. 또한 천문학적인 광고비를 퍼부어 언론매체에 광고함으로 돈을 빌리는 것을 지혜로운 행동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금융기관의 돈을 빌려 엄청나게 비싼 이자를 내고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모른다. 사실 사람들은 노동수입에 비해 터무니없게 금융이자가 높게 책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돈을 빌리는 행동을 중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생 금융기관에 과도하게 높은 이자를 내면서 늙어간다. 그런 대가로 소수의 부자들은 남태평양의 휴양지의 그늘에서 럭셔리한 인생을 즐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지갑은 더욱 두터워 간다. 자본이 주인이 되는 자본주의 국가의 시스템 덕분이다. 그 덕분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머슴처럼 평생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 피곤한 영혼을 벗지 못하고 살다가 죽어 이 땅을 떠난다.
여드름이 채 가시지 않은 청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신용카드를 만드는 일이다. 신용카드는 빚을 쉽게 지게 만든 자본주의 최고의 발명품이다. 이 신용카드는 평생 쓰다가 늙어서 노동력을 잃게 되어 카드청구서를 갚지 못해서야 비로소 신용카드를 쓰지 못하게 된다. 평생 얼마나 많은 이자를 지불했는지 알지 못한다. 이 돈을 노후대책으로 썼다면 안락한 노후를 맞이하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무런 노후대책 없이 빈곤한 노후를 맞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취직을 하면 최신형 SUV를 구입한다. 대부분의 구입대금은 대출을 얻어 할부로 산다. 그 때부터 할부인생을 시작한다. 5년이 지나 감가상각으로 찻값이 반 토막이 되면 중고차로 처분하고 또 다시 대출을 얻어 다른 차로 바꾼다. 신혼부부가 새집을 얻으려면 엄청난 비용의 구입자금을 금융기관으로 장기로 대출 받는다. 아마15년 이상 갚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직장을 잃거나 자영업이 잘 안되어 이자를 못 갚게 되면 집은 경매로 나와 다른 이에게 넘어간다. 그러면 5년 이상 갚아나간 이자는 간 곳이 없다.
빚을 얻어 사는 인생은 장래에 즐기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을 미리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무일푼일지라도 직장만 있다면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럭셔리한 맨션아파트에 살 수 있다. 밤마다 불야성의 황제가 되어 예쁜 아가씨들의 시중을 받으며 밤 문화를 누릴 수 있다. 그게 다 신용카드와 은행대출 덕분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엄청난 인생등록금을 지불해야 한다. 일생동안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누우며 돈의 노예로 중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도 빚을 갚지 못하고 이자를 내지 못한다면 심각한 스트레스로 술에 의지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빚이 있다면 마음이 편치 않고 영혼이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성경은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영혼이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빚을 지면 안 된다. 자신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악성부채를 진 사람은 매일 매일의 삶이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채권자에게 불법추심으로 시달리고 조폭같은 사채업자들의 혹독한 협박과 공갈에 죽음만이 유일한 해방구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신용카드가 없고 대출을 얻지 않는다면 생활이 조금 불편하긴 하겠지만 마음은 늘 평안하고 영혼은 언제나 자유로울 것이다.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라.
우리는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냥 관심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과 비교해서 우열을 따지는 버릇이 있다. 이는 어릴 적부터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급우나 친구가 공부를 잘하거나 음악이나 미술,혹은 운동을 자신보다 잘하면 부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기하거나 질투하곤 한다. 어린 학생들의 이러한 성향은 인터넷 붐을 타고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왕따를 시키고 악성댓글을 써서 피해학생이 자살을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자신보다 잘하면 질투하고, 못하면 왕따를 시키고 놀리는 습성을 지닌 청소년들이 자라 성인이 되면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타인의 삶을 불행케 하고 사회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타고난 인간의 죄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악한 영의 영향이나 공격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생기는 현상이다. 어쨌든 남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느끼는 버릇을 고치지 않는다면 영혼이 어두워지고 병들며 악한 영의 표적이 되어 불행한 삶에 빠지게 된다.
전세방을 전전하다가 이십여평의 자그마한 아파트라도 장만했다면 마음이 즐거워 한동안 잠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40평짜리 럭셔리한 맨션아파트를 구경했다면 그동안 누리던 즐거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동창생이나 친구의 연봉이 자신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의 심정도 그렇다. 입사동기이지만 자신을 제치고 승진을 빨리한 직장동료를 생각하면 질투와 시기가 일어나는 것을 감출 수 없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자신은 여전히 만년 과장으로 있는데, 그 친구가 임원이 되었다면 사표를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여자들의 시기와 질투는 남자들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명품가방이나 신발, 옷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신이 남과 비교해서 열등해지는 느낌으로 살아갈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신용카드를 긋고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해서라도 기어코 자신도 장만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 같은 경향은 우리나라가 성형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실정과도 직결된다. 자신보다 외모가 잘생긴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질투와 시기가 전 재산을 들여서라도 수십 번 수술을 해서 얼굴을 고치고 싶은 강박관념으로 번지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세상에는 자신보다 돈이 많은 부자가 무척 많다는 사실이다. 좋은 집과 자가용도 자신보다 더 비싸고 좋은 것을 소유한 이들이 널려 있을 터이고, 자신보다 돈을 잘 버는 직장인이나 사업가도 즐비할 테고, 자신이 가진 옷이나 가방, 신발보다 비싼 걸 가진 사람도 그렇고, 자신보다 월등한 외모를 가진 사람 역시 주변에 차고 넘칠 것이다. 이들을 볼 때마다 질투와 시기를 느끼고 무리를 해서라도 이들을 따라가고 싶어 한다면 자신의 인생은 불행의 계곡에 굴러 떨어질 것이 분명하며 그 영혼은 악취가 나는 쓰레기장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를 고치는 방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황금만능의 물질주의 사상을 추구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며 사람들은 부와 성공을 유일한 인생의 목표로 삼고 밤낮으로 이를 추구하며 살고 있다. 이 같은 물질적인 세상풍조를 따라 산다는 것은 평안한 영혼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누리며 수많은 언론매체가 다른 사람의 삶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세상에 다른 사람들의 삶에 무관심하며 산다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겠지만, 적어도 자신과 비교하며 사는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한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셨고, 탐욕과 시기와 질투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이라고 하셨기에 이 같은 나쁜 성품을 버리지 않는다면 천국의 자격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로 하여금 세상풍조를 따르지 말라고 하셨으며 매일 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을 요청하고 이에 만족하라고 하셨다. 또한 오래 참음과 자족과 절제가 성령과 오래 거주하여 맺어지는 영적 열매라고 하셨다. 평안의 원천은 세상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세상이 주는 것은 만족이 없다. 얻으면 얻을수록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진다. 남과 비교하는 악한 습성은 세상과 세상의 것을 사랑하는 악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그 마음 안에 성령이 들어차지 않으면 이를 바꿀 수가 없다. 성령이 내주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세상의 것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구분하라.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는 일이 필요한 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회사와 직장 일에 바빠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급한 일 때문에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게 안타깝다. 필자는 직장과 사업에 바빠 정신없이 사는 사람들의 최후를 잘 알고 있다. 노동력이 사라지기 전에 죽음이 찾아온다면 갑자기 일터에서 중환자실로 옮겨 생사를 헤매다 엉겁결에 이 땅을 떠나게 될 것이며, 노동력이 사라져 더 이상 일할 데가 없어 떠밀려 은퇴했다면 하루 종일 TV앞에서 시간을 때우든가 아님 소주병을 친구삼아 여생을 하릴 없이 보내다가 죽음의 사자를 맞이할 것이다. 노후가 되어 어릴 적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버지가 된 것을 후회하며 자녀를 찾아보지만, 성인이 된 자녀 역시 자신이 젊은 시절처럼 직장일과 사업에 바빠 아버지와 느긋한 휴가를 보낼 여유가 없다는 통보를 듣게 될 것이다.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린 자녀는 이미 세월을 따라 가버린 탓이다. 건강이 소중하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겠지만, 이미 당뇨와 고혈압 등의 성인병이 시작되면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 수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돈을 쫓느라고 소중한 건강을 챙기지 못한 어리석음을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돈벌이에 바빠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다 보면 날마다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많은 봉급을 주는 직장에 다닌다면 그만큼 많은 시간 일을 해주어야 하며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될 것이다. 사업이나 직장에 바빠 명절날에도 자녀를 학수고대하는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한다. 돈을 버는 일은 평생 해야 되는 일이지만 늙으신 부모님은 언제나 자녀를 기다려주지 않는 데 말이다.
성경을 읽는 것과 기도하는 행위는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언제나 삶의 우선순위에 밀려 성경을 읽지 않으며 기도하지 않는 크리스천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이 같은 현상은 영생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천국에 가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없지만 당장 먹고 사는 일에 쫓겨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주일에 한 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여하면 천국의 자격이 보장된다는 말은 성경에 없다. 그러나 삶이 바쁘기에 그런 근거 없는 말도 철썩 같이 믿는 어리석은 이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수입을 줄이고 시간이 많은 직장을 선택하거나 자영업 하는 시간을 줄인다면 중요한 일에 시간을 낼 수 있을 터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을 끔찍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아니, 돈을 더 많이 벌어야 되는데 지금보다 수입을 줄인다는 게 정신 나간 사람 아니고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급한 일 때문에 중요한 일을 언제나 뒤로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은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급한 일은 매일 존재한다. 바쁘게 출근해야 하며, 퇴근을 하고나서도 친구를 만나든가 상사와 동료들과의 술자리에 빠지면 절대 안 된다. 회사관계 인물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직장에서 승진과 성공을 선점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이며, 언제나 인생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는 친구들과 우정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아니면 외국어나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일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능력이 최고의 재산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잘살고 성공하는 일에 늘 마음이 분주하고 바쁘다. 그러나 가족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며 자상한 남편과 따뜻한 부모가 되어줄 시간이 없다. 바쁜 일에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왜 부자가 되고 성공하려고 하는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려는 게 아닌가? 또 교회에 성실하게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 세상에서 평안하고 형통한 복을 누리다가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려는 게 아닌가? 이 땅에서는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아봐야 7,80년이 고작 아닌가? 그런데 영원히 산다는 것과 비교하면 어떤 것이 중요한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사소한 것을 탐하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잃는다는 말이다. 중요한 일을 위해서는 급한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족들과의 행복한 삶이 중요하다면 회사에서 조금 뒤떨어져도 괜찮고, 중년이후의 건강을 유지하려면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의 부유하고 성공한 삶을 쫓는 삶의 방식을 버려야한다. 사실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산다해도 부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들도 드물지 않은가? 기도와 말씀의 영적 습관을 들인다고 세상에서 뒤떨어진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하늘의 지혜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존경받는 산 이들도 적지 않다. 급한 일에만 매달리는 삶은 언제나 마음이 분주하고 여유가 없다. 그러나 중요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음에 평안이 있고 여유가 있다. 행복을 누리면서 산다는 증거이다. 세상에서 잘되는 것 이전에 영혼이 잘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잘 쉬고 자연을 즐겨라.
길어진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켜 놓은 TV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새벽시장을 취재한 다큐멘터리 방송으로, 필자가 사는 대전역 광장에서 새벽 4시부터 9시까지 열린다는 반짝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밀착 취재한 내용이었다. 상인들은 대부분 늙수그레한 노인들이었는데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장사해오고 있다면서, 앞으로 일할 수 있는 데까지 일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고 있었다. 그들이 내다파는 것들은 야채나 과일 등이었는데, 아침 시장이 파하면 다시 농장에 돌아가 야채와 과실수를 가꾸고 돌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하다 늙은 세월을 보낸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서 자녀들을 잘 키운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정작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영혼을 가꾸지 못한 대가는 참혹할 것이 틀림없다. 필자 역시 아내와 화장품 방문판매를 생업으로 하고 있어 농수산시장에도 단골고객이 많다. 그곳에도 역시 평생 장사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렇게 쉬지도 못하고 장사하다 운동도 못하고 건강검진을 소홀히 하다가 암이 발병되어 갑자기 세상을 뜨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하루 종일 시장에서 하루해를 보내다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가면 통나무처럼 쓰러져 자다가 또 출근할 시간이 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장에 나오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평생 몸을 혹사한 대가로 얻은 게 무엇인가?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불안과 걱정으로 쇠약해진 영혼은 지옥이 멀지 않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평안한 영혼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비결은 정신과 몸에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 일에 바빠 분주하게 사는 현대인들은 몸이 아파도 쉴 줄을 모르고 머리가 지끈거리면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기보다 진통제를 먹으며 일터로 나간다. 하루를 쉬면 수입이 줄어들고, 직장을 떠나 쉬는 것을 좋아하다가 승진에서 밀려나고 자칫 잘못하다가 해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항변하는 게 있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이 불황의 시대에 어떻게 먹고 살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탐욕과 불신앙의 소치이다.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이라면 매일 매일 생계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주심을 믿고 자신의 의지와 노력, 지혜를 버리고 살아야 한다. 성실한 노동은 해야겠지만 몸을 혹사하고 영혼을 강퍅하게 만드는 중노동은 탐욕을 채우며 생계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까닭이다. 필자는 십여년 전 사역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생업을 가지고 있다.오랫동안 아내와 화장품 방문판매를 같이 하다가 아내가 힘들어하자 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줄어진 수입을 채우려 필자는 구내식당에서 밥차를 배달하는 일을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그래도 하루 6시간의 노동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물론 적은 시간 일하니 큰 수입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남은 시간이 넉넉해서 휴식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사역하는 시간을 낼 수 있다. 물론 통장에 잔고도 없으며 외식도 못하고 유명브랜드 옷을 사 입을 돈은 없지만 지금까지 잘 먹고 살고 있다.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어 충당하며 부족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늘 체험하면서 산다. 우리네 국민은 오래 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루 10시간이 넘어 12시간까지 일한다고 외국인들이 혀를 내두른다. 그렇게 일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형편이어서가 아니다. 탐욕을 채우고 조급함을 다스리지 못해서 무리하게 일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일해서 돈은 더 벌었는지 몰라도 그동안 혹사한 몸은 중년이 지나면 병원비로 탕진할 것이며 치료하는 과정에서 받는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할 것이다. 그렇게 막대한 돈을 쓰고 노력해도 완치를 기대할 수 없고 회복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우리네 국민들은 일하는 것 뿐 아니라 노는 일에도 열정적이다. 여름휴가철이 되면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약 사나흘의 휴가는 산이나 해수욕장에서 벌이는 질펀한 술 파티와 격렬한 춤 그리고 휴가지를 오가는 길 위에서 소진한다. 그래서 휴가를 갔다 오면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 휴가비는 물론 몸도 마음도 탕진이 되어 회복하는데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 쉬는 것은 노는 것과 다르다. 낚시터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낚시를 했다면 쉰 게 아니라 놀은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 하루 종일 시체놀이를 할 것이 분명하다. 휴일에 7,8시간의 등산도 그렇다 산을 오가며 운전하는 시간까지 합한다면 새벽에 일어나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올 것이다. 이 역시 쉬는 게 아니라 노는 것이다. 그래서 월요일이 되면 격렬하게 논 사람들은 표시가 난다. 게슴츠레한 눈에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기 일쑤이다. 이런 사람들이 일터에서 무슨 생산성 있는 일을 할 것인가? 영혼과 몸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에너지가 샘솟듯 하려면 격렬하게 노는 게 아니라 잘 쉬어야 한다. 등산을 한다면 서너 시간을 넘기지 말고 일찍 집에 와서 목욕을 하고 푹 자두었다면 휴식을 잘 한 것이고, 각종 운동이나 낚시를 한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자연을 즐기고 마음과 몸을 느슨하게 해 주는 정도가 되어야 쉼이 될 것이다. 필자는 틈만 나면 선잠을 자는 것을 즐긴다. 기도하느라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며 아침에도 7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기도하는 습관이 배어서 늘 잠이 부족하다. 그래서 필자의 기도처이자 교회인 원룸에 가면 기회만 나면 잠깐 눈을 붙이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주말이나 주일 오후에 한가한 시간이 나면 아내와 자연의 풍광을 찾는다. 필자가 사는 대전은 30분만 차를 타고 나가면 풍광이 수려한 대청호와 금강수계가 어우러져 있어 운동과 산책 그리고 차를 그늘진 곳에 세우고 휴식할 곳이 정말 많다. 보온통에 뜨거운 물을 가지고 가면 커피를 마시며 차안에서 기도하곤 하며 곳곳에 산책로를 따라 운동을 한다. 필자의 차엔 언제나 등산화가 실려 있는 이유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넣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면 자연의 에너지가 몸 안으로 빨려 들어오고 정신과 마음이 깨끗하게 씻기는 느낌이 참 좋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는 풍광이 수려한 대자연을 쉽게 접할 수 없겠지만 곳곳에 공원을 찾거나 주말을 즐긴다면 못할 것도 없다. 이렇게 살려면 먼저 돈 욕심을 버리고 쾌락을 즐기는 삶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누리려면 수입은 줄어들겠지만 영혼과 몸이 늘 가볍고 기운찬 삶을 즐길 수 있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라.
세간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다. 열약한 환경이나 척박한 출신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출세를 했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우리네 국민성은 열정적인 에너지와 불꽃 튀는 투쟁심으로 유명하다. 데모를 해도 조용히 하는 법이 없다.삭발을 하며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호전적인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하다가 공권력에 막히면 돌을 던지며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노사분규가 격렬한 나라도 없다. 이런 상황은 열정적인 국민성도 한몫했겠지만, 실상은 사람의 생각의 틈을 타고 들어와 미움과 시기, 싸움과 분열, 분노와 탐욕을 넣어주는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부 진보적인 교회의 목사들과 정치에 민감한 가톨릭의 신부들도 시국선언을 하며 운동권 인사 못지않게 데모에 앞장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정의를 실현한다고 자위하겠지만 분명 이것은 성경적인 삶의 방식은 아니다. 성경은 세상의 권위에 순응하라고 가르친다. 세상의 권세들도 하나님이 주셨으므로 이들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권력자들이 정의롭고 올바르게 시행해서 그런 게 아니다. 맘에 안 들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수단으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고 적법한 절차를 밟아 이의를 제기하라고 하신다. 아무리 자신의 뜻이 올바르더라도 불법과 불의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반항하고 그 뜻을 관철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방식을 사용하면 언제나 미움과 분노가 일상화되고 싸움과 분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고 싸움은 더 큰 싸움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님의 방식은 싸워 이기는 방식이 아니라 기도하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중세시대의 십자군전쟁을 병폐를 보라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엄청난 전쟁을 일으켰지만 별과는 참혹한 패퇴뿐이었으며 실리도 명예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은 악한 왕들과 유대인의 계략에 칼을 들고 맞서지 않고 박해가 일어나면 그 지방을 피해 도망하거나 잡히면 순교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로마황제가 예수를 믿게 되고 기독교가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막강한 권세를 지닌 종교로 순식간에 올라서지 않았는가?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있으며 부모를 잘 만나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덕에 성공의 반열에 쉽게 올라선 사람도 있다. 반면 열약한 환경과 암울한 시대 탓에 제 꿈을 활짝 펼치지 못하고 일찍 스러져간 사람들도 적지 않다. 대학을 졸업해도 번듯한 직장을 얻지 못한 청년들은 울분을 삭이지 못할 것이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을 일찍 떠나게 된 중년들도 마음속에 불만과 불평이 쌓일 것이다. 가난한 부모 탓에 학교공부를 제대로 못해 평생 노동판을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고 배우자를 잘못 만나 고단하고 팍팍하게 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힘들고 굴곡진 삶의 원인을 대라면 책을 한권 써도 부족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필자 역시 그러했다. 대학 4년 동안 자전거로 유유배달을 하며 졸업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세상은 녹록치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며 준비한 사업은 한 번의 실패로 어려운 중년을 보내야만 했다. 그렇다고 세상을 원망하며 정치가들에게 불평을 해댄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물론 억울한 인생을 바꾸어야한다는 세상의 방법은 필자가 말하는 성경적인 방식과는 다르겠지만 크리스천이라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과 세상의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부를 쫓지 말며 명예와 권력도 넘보지 말라는 것이다. 즉 성공과는 담쌓고 살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는 세상의 방식과 정반대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런 연약하고 굴욕스러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라고 한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의 목적과 목표가 세상 사람과는 확연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사는 게 인생의 목표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에서 잘 사는 것보다 깊고 친밀한 기도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복음을 전하며 전도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살다보면 세상의 권세자들과 마찰을 빚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전도의 기회를 잃게 되고 평안한 삶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필자도 열심히 노력해서 세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어 편만한 복음의 기회를 얻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방식이 선하고 합리적인 방식이어야 한다. 세상 사람과 불의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경쟁하고 시기와 분노함으로 싸워 이기는 방식이 아니다. 그런 악한 방식은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악한 영의 영향을 받아 영혼과 생명이 위태로운 결과를 초래한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사는 것은 힘들고 불편할 것이다. 그래서 인내와 자족, 절제와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필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증거와 잔잔한 평안이 있으며 성령의 탁월한 능력과 도우심이 내려오게 마련이다. 비록 세상에서는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살게 될지라도,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엄청난 상급과 아름다운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 예전에 쓴 칼럼이지만, 다시 올려 드립니다.ㅎㅎ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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