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교회는 물론, 세계 10대교회의 대부분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크리스천은 없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고 아끼는 교회인가? 오래전부터 세계적으로 기독교는 침체일로를 겪고 있다.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유럽의 교회는 유명무실화된 지 오래고, 100여 년 전에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던 미국의 교회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7,80년대에 세계교회 역사상 유래를 볼 수 없을 만큼 급성장한 우리네 교회도 시들시들해진지 오래이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하나님이 그 교회들을 외면하고 계시다는 것이 정확한 답일 것이다. 그 와중에도 대형교회는 교세를 넓혀가고 있다. 대형교회가 더욱 커지는 원인 중에는, 담임목사의 지명도나 유명도가 대단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형교회들은 커진 교세를 유지하거나, 더 커지고 싶어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교회와 담임목사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게 교회부흥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담임목사를 우상화하는 게 성경적인지 짚어보고 싶다.
대형교회가 더욱 대형화되는 데는 부끄러운 우리네 교회의 민낯이 숨겨져 있다. 그동안 개척교회, 혹은 중소교회들이 교인들에게 과도한 헌금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당을 새롭게 건축하거나 리모델링에 필요한 막대한 헌금을 충당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교인들의 출혈을 강요하였다. 전에 유행했던 성전건축 부흥회가 그렇고, 시시때때로 설교 때마다 헌금은 축복이라는 등식의 믿음을 강요하고, 헌금을 많이 낸 교인들을 사석에서뿐 아니라 공개적으로도 칭찬해주고 추켜세워 주었다. 그 반면에 가난한 교인들은 담임목사로부터 점점 외면을 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시험이 든 교인들은 집요한 간섭이 덜하며, 담임목사와는 개인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큰 교회로 옮기는 것이다. 헌금뿐 아니라 과도한 사생활의 간섭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속내도 들어있다.
그 다음으로 담임목사의 설교능력이다. 중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와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관계를 맺는 교인들은 최측근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를 만나는 일은, 거대한 예배당에 앉아서 설교 때나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동력을 얻는 공급원도 설교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는 스스로 개척을 하였든지 청빙을 받았든지 간에, 설교의 달인일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설교를 통해서 신앙을 유지하는 교인이라면, 설교를 쫄깃쫄깃하게 잘하는 담임목사가 있는 교회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설교를 잘하는 목사가 있는 대형교회가 더욱 커지고, 반대로 판에 박은 듯한 설교나 허접스러운 설교를 하는 목사가 있는 중소형교회는 점점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어디 그뿐일까? 대형교회는 재정적으로 엄청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방송과 미디어의 단골 광고주가 될 수밖에 없다. 라디오나, TV, 인터넷방송 등은 방송국을 유지하는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그러나 일반 방송국처럼 광고주를 모집할 수 없다. 그래서 자금력을 충당할 수 있는 대형교회에 손을 벌리고, 그 대가로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의 설교를 방송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일반교인들은 각종 라디오나 TV를 통해 들어왔던 대형교회의 목사의 설교가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마치 이런저런 방송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연예인이 인기가 더욱 높아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미국에는 아예 텔레반젤리스트(tele + evangelist, 방송복음전도자, 필자 주)라고, 자신 소유의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설교방송만을 하는 목사가 있어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예 TV를 통해 예배를 드리고 온라인으로 헌금을 입금하여, 인기목사는 재벌회장처럼 백만장자가 되어 대저택에 살면서 전용비행기를 타고 다닌다. 이렇게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우상이 되는 현실이 과연 성경적인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4,35)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은, 나의 증인이 되어 제자를 양육하라는 부탁이셨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은 체험하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소유를 버리며 목숨까지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제자를 양육하는 교회이어야 한다. 그런 교회는 대형교회일수가 없다. 대형교회의 대량교육방식으로는 제자를 양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고작 12명의 제자를 기르기 위해 3년 반의 시간을 소비하시고 공을 들이셨다. 그러나 그 12명의 제자들이 놀라운 영적 능력으로 초대교회를 세워나갔다. 그러나 대형교회는 쾌적한 예배당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귀를 간질이는 덕담을 들려주는 목사의 설교를 즐기고 있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교인들은 담임목사가 얼마나 은혜로운(?) 설교를 하는 지에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런 교회가 과연 예수님이 명령하신 교회의 모습인가? 아니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의 목회성공(?)을 증명해주며, 자기만족과 자기위안을 삼는 교인들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솔직히 담임목사 자신도 고난을 무릅쓰며 험난하고 좁은 길을 가는 제자의 삶을 가지 않는데, 교인들에게 그런 십자가의 길을 요구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필자가 대형교회를 떠나 중소형교회나 개척교회를 섬기라는 게 아니다. 자그마한 교회라도 미래의 대형교회를 지향하고 목회성공을 바라는 목사가 있는 교회라면, 그 나물에 그 밥일 뿐이다. 그러나 수많은 교인들은 대형교회에서 안락하고 자기만족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천국을 지정사실화하고 이 땅에서 얻은 축복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들은 예외 없이 천국에서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좁고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고 쉽고 편한 세속적인 축복의 길만을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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