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감정이다. 두려움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모든 오감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공포의 포로가 된다. 그래서 악한 영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전략이 바로 두려움과 공포를 주는 공격이다. 걱정과 염려, 불안과 의심, 분노와 짜증, 낙심과 절망도 이와 같은 부류의 감정이며, 서로 섞이고 증폭되어 걷잡을 수 없게 불행의 수렁에 떨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은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두려움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서 생각을 타고 들어온다. 그러나 그 생각들은 뜬금없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위장하여 잠입한다. 직장인이라면 해고의 공포가 그것이고, 사업가라면 사업실패일 것이다. 사십대를 넘어서는 중년이라면 암을 비롯한 성인병에 대한 두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경제력이 없는 아내의 입장이라면 남편이 바람을 피워 자신을 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을 것이고, 모든 크리스천에게 공통적인 생각인 구원을 받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어쨌든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이라면 생명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클 것이고, 지금의 안락한 삶을 위협받는 모든 것에 대한 공포가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어떤가? 당신 안에도 두려움이 은밀하게 숨겨져 있지 아니한가?
그래서 당신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온 이유이다.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의 한계를 느껴서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는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으신가? 물론 그런 때도 적지 않겠지만, 예수를 열심히 믿어도 수시로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성경의 위인들도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왕상19:4)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욘4:3)
위의 말씀은 주인공은 엘리야와 요나이다. 엘리야가 누구인가?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예언자로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850명과 목숨을 건 대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불에 태워죽이고, 3년 6개월 동안 가물었던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리게 하여 혁혁한 승리를 거둔 선지자이다. 그러나 그도 이세벨이 죽이겠다는 위협에 두려움이 엄습하자 멀리 광야로 도망가서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놀라운 승리의 여운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하룻밤사이에 돌변하여 초라한 늙은이로 돌아간 이유는 극도의 두려움 때문이다. 고래뱃속에서 3일 만에 나온 요나 선지자도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요청이 거절을 당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가 드러나자, 급기야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이처럼 탁월한 능력의 하나님의 종들도 두려움이 엄습하자 이렇게 형편없는 믿음을 보이며 실망스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게 놀랍지 아니한가? 과거에는 용맹을 떨치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하나님의 종들도, 두려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떨어져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막8:31~33)
예수님의 수제자로 일컬어지는 천하의 베드로도, 한 때는 그 역시 두려움의 포로가 된 사건이 있었음을 위에서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자, 예수님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자마자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해오게 된 것이다. 성경은 그 두려움의 공급원이 바로 사탄임을 밝히고 있다. 사탄은 베드로에게 극도의 두려움을 주어 예수님을 붙들고 거칠게 항의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들어오는 두려움을 어떻게 처리하고 계신가? 모든 두려움과 공포, 걱정과 염려, 불안과 의심, 낙심과 절망 등의 부정적인 생각은 악한 영이 머리를 타고 앉아서 넣어주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들어오는 것을 방치하면 절대로 안 된다. 두려운 생각의 공급원이 악한 영임을 깨닫고, 즉시 예수피를 외치며 전심으로 쫒아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의 공급원이 악한 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방법을 찾아다니거나 전전긍긍하며 걱정과 염려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엄습해오면, 절대로 머리를 점령하지 못하도록 전심으로 예수피를 속사포로 외쳐야 한다. 약한 공격은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뿌리 깊은 공격은 기도의 효력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악한 영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는 축출기도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부분 혹독하게 축출기도를 하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곧장 사라진다. 그러나 안심하지 말라. 악한 영들은 포기를 모르는 놈들이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또다시 공격을 시도할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넣어주는 악한 영들의 공격은 엄청난 효과가 있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서로 싸우거나 분열하고, 술에 취하거나 게임에 빠져 현실에서 도망치려고 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신경쇠약에 걸리고 만성두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우울증과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더라도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혀 살다가 이 땅을 떠나는 것이다. 이렇게 악한 영들은 두려움을 주어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혀서 믿음을 잃어버리게 하여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여 지옥의 불에 던지는 것이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당신의 두려움의 근거나 직장에서의 해고이든지, 사업의 실패이든지 아니면 암에 걸리는 것인지 간에, 두려움을 방치 했다가는 악한 영의 올무에 걸려 믿음을 잃고 사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악한 영이 넣어주는 두려움을 알아채고 즉각 맹렬하게 싸워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교회에 나오면서도 우울증에 걸리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신경쇠약으로 앓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허다하다. 두려움과 싸우지 않는다면 천국은 꿈도 꾸지 말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데 천국은 언감생심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
'**하늘생명수** > Manna'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식장에서 눈총받는 사람 - 신상래목사님 (0) | 2015.05.02 |
---|---|
예수사랑의 믿음과 영생 - 변효철목사님 (0) | 2015.05.01 |
[스크랩] 장차 회복될 하나님 나라 - 김학진목사님 (0) | 2015.04.29 |
당신은 좋은 밭인가, 나쁜 밭인가? (0) | 2015.04.29 |
[스크랩] 허운석선교사님 설교 녹취 (0) | 2015.04.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