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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공간**/스펄전 묵상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 스펄전 묵상

by With Lord 2015. 9. 2.

9월2일

아침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 마가복음 1:30


  사도 베드로의 가정에 대한 이 짤막한 기사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가정의 즐거움과 걱정거리가 하나님의 일을 충분히 감당하는데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즉시 깨닫게 됩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이 가족들에게 주님의 은혜의 사역을 개인적으로 증거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분야의 일들보다 더 고귀한 것을 가르쳐 줄 수도 있습니다. 가톨릭교도들과 일부 다른 교파의 사람들은 결혼을 무시하지만, 참 기독교와 가정생활은 얼마든지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집안은 아주 가난한 어부 집안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영광의 주님은 그 집을 방문해 묵으며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만일 오늘 아침 이 글을읽고 있는 사람이 극히 초라한 오두막집에 산다면, 이 사실을 기억하고 왕이신 예수님과의 동행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으리으리한 궁전보다는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을 더 자주 방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여러분의 방을 둘러보며, 당신에게 당신에게 은혜를 나눠주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몬의 집에 질병이 들어왔고, 그의 장모에게 치명적인 열병이 침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들어오자 그들은 그분께 문제 상황을 말씀드렸고, 그분은 환자의 머리맡으로 가셨습니다.

  오늘 아침 당신의 집안에도 질병이 들어와 있습니까? 그렇다면 최고의 의사인 주님께 즉시 달려가 그 상황을 자세히 아뢰십시오. 그분 앞에 직접 문제를 내 놓으십시오. 그것은 그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를 근심시키는 일이고, 그래서 그분에게는 그것이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구주께서 병든 여인을 즉시 고치셨음을 주목하십시오. 누구도 그분처럼 고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가 사랑하는 자들의 모든 질병을 다 고쳐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병든 자를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치료법보다 휠씬 그 회복이 빠르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생사를 주관하는 주님의 뜻에 겸손히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온유한 심령은 우리의 슬픔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게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들으시는 그분의 귀에 그 슬픔들을 다 쏟아놓읍시다.


저녁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 요한복음 4:48


  예수님은 당신에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이적을 구하는 병적인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참된 양식은 거부하고 단순한 이적만 추구했습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복음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항상 베푸시지 않은 이적을 요구했습니다. 요즘에도 많은 사람들이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믿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심 "나는 영혼에 깊은 기갈을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믿을 수 없단 말입니까? 당신은 그분이 다른 사람들처럼 대해주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지옥에 가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만일 어떤 꿈을 꾸거나 또는 영문을 모르는 어떤 충격적인 사건을 겪는다면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당신은 당신이 주님을 조롱하는 치명적인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분의 집 문 앞에서 자비를 구하고 서 있는 거지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당신은 그분이 그 자비를 주시는 방법과 규정을 자기가 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이 그것에 복종하시리라고 생각합니까? 우리 주님은 인자한 분이지만, 왕의 권세를 갖고 모든 명령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의 뜻에 따라 주권적으로 행동하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상황이 이러한 데도 당신은 계속 표적과 기사를 구하겠습니까? 복음이야말로 그 표적과 기사가 아닙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셨다"(요 3:16)는 것이야말로 이적 중의 이적이 아닙니까? 확실히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는 보배 같은 말씀과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쫒지 아니하리라"(요 6:37)는 엄숙한 약속만큼 더 큰 표적과 기사는 없을 것입니다! 진실하신 구주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되십니다. 그분은 진리 자체이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당신은 거짓말을 하시지 않는 주님께 증거를 요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마귀들도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분을 불신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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