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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예복, 흰 옷을 팝니다

by With Lord 2018. 11. 24.


혼인식에 벌거벗고 가는 사람은 없다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거나 그마저 없으면 새로 사서라도 입고 간다

일상에서도 옷을 입지 않고 나체로 다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영의 눈으로 보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벌거벗은 상태로 다니는 사람이 부지기수고

오물과 악취로 더럽혀진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더 많을 것이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신자들이 벌거벗고 드리는 모습에 경악할 것이다


영안으로 보면 신자들의 모습은 세 유형중의 하나다

① 희고 빛나는 옷을 입을 신자 (사데교회의 신자 몇 명)

② 더러운 옷을 입은 신자 (사데교회의 신자 대부분)

③ 벌거벗은 신자 (라오디게아 교회 신자 전부)


특별히 성령께서 라오디게아 신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특이한 것은 생명수는 값없이 받으라 하셨다는 것이다(계21:6, 22:17)

그런데 흰 옷은 사서 입으라 하시는가?

믿음이 있는 신자에게 값없이 주시면 좋지 않을까?

예복은 땅에서 준비해야 하고 생명수는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어디가면 흰 옷(Fine Linen)을 살 수 있을까?


인류의 종말을 다루는 계시록에는 특별히 옷을 강조한다

11번이나 흰 옷에 대해 강조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최초의 옷을 입혀 주셨다

그것은 동물의 가죽옷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린양이다

특별히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신부에게 주신 핵심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계16:15)


짐승이 통치하는 대환란의 한복판에서 간막으로 주신 이 말씀은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지시하는 말씀이다

대접재앙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중에 이 말씀을 간막으로 끼어 넣은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말씀에서 두 가지 핵심은 깨어 있는 것과 자기 옷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흰 옷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믿음이 아니라 옷을 준비하라고 한 것이 의미가 있다

믿음으로 예복을 준비할 수 있을까?

어디가서 흰 옷을 살 수 있을까?

어디가면 흰 옷을 파는 상점을 찾을 수 있을까?


먼저 사데교회는 왜 옷이 더럽혀졌을까?

그들은 행위가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

나쁜 행실이 옷을 더러워지게 만들었다


반대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신부들은 옳은 행실 때문이었다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계19:7~8)

흰 옷은 옳은 행실을 파는 가게에서 살 수 있다

옳은 행실(the righteous acts of the saints)이란 무엇인가?

첫째 죄와 도덕적인 부패에서 떠나 있는 상태다

마태복음 5장에서는 착한 행실을 언급하면서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좁은 길, 계명을 지키는 것, 너의 의가 바리새인보다 더 좋아야 한다, 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이혼하지 말라 말씀하셨다

둘째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다

유대인에게 의와 구제는 거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구제하는 일은 구원의 공로가 되는 행위로 간주되곤 한다


종말에 대한 세가지 비유(10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가 있는데 이 비유들의 특징은 너희들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으로 우리가 할일은 없다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에서 우리에게 일관성있게 주는 교훈은 그들의 범죄나 행위 때문에 심판을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애매하게 말하면 사람은 본성적으로 나쁜쪽을 선택한다

내가 범죄하고 거룩한 행실 가운데 살아 오지 못한 이유를 핑게거리로 삼아서는 안된다


종말의 비유에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은 구제였다

양들은 헐벗은 사람들을 보았을 때 옷을 입혀 주었다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과 옳은 행실은 옷을 사는 행위가 된다

그런데 옷이 있다 하더라도 살다보면 옷이 더러워지는데 이때 깨끗하게 세탁하는 세제가 십자가의 보혈이다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7:14)


문제는 옷이 없이 벌거벗은 신자들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자들이 이런 벌거벗은 상태다

그들이 옷이 없는 이유는 영적으로 황폐하여 미지근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미지근하다는 것은 착한 행위도 없고 범죄에도 민감하지 않으며 신앙의 기초가 되는 기도,말씀,성령충만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치명적인 죄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행위가 합당하지도 않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면 적극적으로 자기의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야만 한다

극히 값진 진주를 발견하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하면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자들이 다 거절한 것과 같은 상황을 맞이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눅14:2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22:14)

종말의 특징은 깨닫는 자와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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