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회에 와서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가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이다. 필자의 영성학교는 목요일부터 주일까지 훈련 받으러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번 주에는 김천에서 오신 장로님부부도 계셨다. 아침에 연탄불을 갈러나갔다가, 화창한 날씨에 이끌려 정원으로 나오신 그분들과 자연스레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은 자신이 그동안 교회에 수도 없이 많이 심었는데, 되는 일이 왜 없냐는 투의 하소연을 내뱉으셨다. 그래서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을 다시 곱씹게 되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위의 말씀은 설교에서 회자되는 근거가 되는 구절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이 구절을 본문으로 삼아 설교하기를 즐긴다. 굳이 들어보지 않았더라도 설교의 내용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재물과 시간, 정성을 심으면, 하나님으로부터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투의 말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대한 목회자의 탐욕과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십일조를 비롯한 신축헌금, 교회봉사, 전도행사, 예배의식과 새벽기도회 등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들에 동참할 것을 목소리를 높여서 말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처방이 과연 성경적인 해석인가? 그러한 투의 설교는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자의적으로 짜 맞춘 해석일 뿐이다.
성경말씀으로 되돌아가보자. 성경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요구하는 예배의식의 참여를 비롯한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인가?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요구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라고 성경에 명령한 적이 있는가? 그러한 신앙행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되려면, 겉으로 드러나는 희생행위가 아니라 속내와 목적, 동기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여 기쁜 마음으로 찬양과 기도, 헌금 등을 드리려면, 평소에 일상의 삶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실천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평일에는 하나님을 까마득히 잊고 살다가 주일이 되면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예배의식에 참석한다고, 그게 하나님께 심는 신앙행위가 되겠는가? 각종 교회봉사나 기도회의 참석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이 없이, 의무적이거나 억지로 드리는 행위라면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거나 목회자가 좋아하는 신앙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그중에서 목회자들이 심는 대상으로 가장 많이 강조하는 것이 헌금이다. 헌금의 액수를 보면 많이 심는지 아니면 적게 심는 지 금세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성경적이 아니다. 예수님은 헌금을 많이 낸 부자보다 과부의 두렙돈을 보고 더 많이 드렸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헌금의 액수를 가지고 많고 적게 드린 것을 평가한다고? 기왕 말이 나왔으니 조금 더 말해보자. 하나님은 헌금을 드린 액수보다, 그 헌금을 어떻게 벌어들였는지에 더욱 관심이 많으시다. 만약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과 불의하게 벌어드린 것이라면 하나님 앞에 가증할 뿐이다. 세상의 모든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다.(학2:8) 당신이 벌어드린 재물도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얻게 된 것 뿐이다.(신8:18) 그러므로 당신의 수중에 있는 돈을 조금 떼어 교회에 드렸다고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 돈들은 원래 하나님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억지로 마지못해서 드리거나 세속적인 축복을 바라는 동기나 목적으로 드렸다면, 이 역시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마치 고수익을 올려주는 투자상담사 쯤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껏 교회에 드린 헌금을 하늘나라에 심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이는 당신의 착각일 뿐이다. 당신에게 수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고 자발적으로 은밀하게 드렸으면 모를까, 어깨를 으쓱거리며 목회자와 교인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렸다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드린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헌금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벌어드린 것을 전제로 했을 때 말이다. 그래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채, 그동안 교회에 드린 헌금의 액수를 가지고 하나님께 드렸다고 착각하고 있다. 필자가 착각했다고 주장하는 증거는,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당신의 삶에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만약 그 헌금들이 하늘나라에 쌓였다면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로 되돌아와서, 지금쯤 당신은 최소한 백만장자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나님께 심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헌금뿐이 아니다. 기도와 교회봉사에 수많은 시간을 정성껏 심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이런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아니라, 기도와 말씀으로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찾아오는 것이다. 교회봉사는 당신네 담임목사가 원하는 것이고, 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은 당신의 욕망을 채우고 지난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이다. 이는 죄다 하나님의 뜻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앙행위를 하나님께 심었다고 착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당신의 탐욕을 채우고 세속적인 축복을 바라는 속내나 동기를 버리지 않는 한, 당신이 교회에서 행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헌금이나 교회봉사 혹은 새벽기도회의 참석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직 당신의 마음을 원하신다. 그래서 날마다 쉬지 않는 기도와 말씀의 습관을 들여 하나님을 찾아와서 깊고 친밀하게 교제는 나누고 싶어 하신다. 그게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이것이 당신을 하나님께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는 행위이다. 그래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는 종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런 삶을 실천한다면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은 당연하고, 이 땅에서도 30배, 60배, 100배의 평안과 형통함을 거두게 될 것이다.
출처: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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