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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공간**/스펄전 묵상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 스펄전 묵상

by With Lord 2015. 11. 6.

11월6일

아침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 이사야서 44:3


  신자는 감정이 침체되거나 슬픈 상태에 빠졌을 때, 종종 우울하고 비관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자신을 징계함으로써 거기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것은 바닥에서 일어서는 방법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을 지속시킬 뿐입니다. 은혜를 높이기 위해 의심을 가중시키는 것은 독수리 날개 위에 사슬을 매달아놓고 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영혼을 먼저 구원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고 복음입니다. 그 후에 침체에 빠진 영혼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것도 율법의 속박이 아니라 복음의 자유입니다. 속박적인 두려움으로는 하나님을 떠난 배교자를 돌아오게 하지 못합니다. 오직 열렬한 사랑의 구애만이 그를 예수님의 품으로 이끌 것입니다.

  오늘 아침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해 목이 마릅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의 기쁨이 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불행합니까? 당신은 지금 신앙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또 자신이 메마른 땅처럼 황폐하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에게 기대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교회에서 자신이 아무 쓸모 없고, 또는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필요로 하는 약속이 정확히 여기 있습니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당신은 원하는 대로 은혜를 받되, 그 필요를 최대한 채울 정도로 받을 것입니다. 물은 목마른 자를 해갈시켜 줍니다. 당신은 해갈될 것입니다. 당신의 생명은 신선한 은혜를 통해 소생될 것입니다. 물은 싹은 틔우고, 열매들을 익게 합니다. 당신도 열매를 맺게 하는 은혜를 갖고 있으면, 하나님의 길에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은혜의 능력들이 무엇이든, 당신은 그것들을 충분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부요한 하나님의 은혜들을 풍성히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에 흠뻑 젖을 정도로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때때로 강물이 터져 초원이 물바다가 되고, 밭이 연못으로 화하듯이, 당신의 목마른 마음 밭도 수원지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저녁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 히브리서 9:20


  피라는 말에는 이상한 능력이 있고, 그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항상 감동을 느낍니다. 인정이 많은 사람은 참새가 피를 흘리는 것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그일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짐승을 죽이는 장면을 볼 때 누구든 두려움을 느끼는 법입니다. 사람의 피에 관해 말한다면, 그것은 신성한 것입니다. 분노로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살인이고, 전쟁에서 피를 헛되이 흘리는 것은 두려운 범죄입니다. 피는 곧 생명이고, 피를 흘리는 것은 죽음의 표시라는 사실로써 이 엄숙함은 입증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피에 관해 상고할 때 느끼는 두려움은 휠씬 더 강렬합니다. 우리는 거기서 죄책과 죄인이 감당해야 할 끔찍한 형벌에 관해 생각할 때만큼이나 전율을 느낍니다. 항상 보배로운 그분의 피는 임마누엘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무한한 가치를 지닙니다. 예수님의 피는 은혜의 언약을 보증하고, 그러기에 그것은 영원토록 확실합니다. 옛 언약들은 희생제사를 통해 맺어졌고, 영원한 언약도 똑같은 방식으로 체결되었습니다.

  오, 결코 부도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확실한 기초 위에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요! 율법의 행위들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은 빈약하고 부서진 배와 같아서 난파가 확실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언약의 배는 폭풍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피가 그 전체를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그분의 유언(언약)을 유효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유언은 유언한 사람이 죽지 않으면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이 실제로 사망하셨음을 증명한 로마 병사의 창은 믿음에 큰 도움을 줍니다. 그 점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전혀 있을 수 없고, 우리는 담대하게 주님이 자기 백성들을 위해 남겨놓으신 유산들을 우리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구주의 죽으심을 통해 하늘의 축복들을 보장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피가 우리에게 아무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습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을 위해 우리 자신을 성결케 해야 한다고 명령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부르고, 주님을 위해 성별된 삶을 살도로 자극을 주지 않습니까? 오 오늘 밤 우리가 그 피의 능력을 알고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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