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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공간**/스펄전 묵상

사람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 스펄전 묵상

by With Lord 2016. 5. 4.

5월4일

아침

사람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 예레미야서16:20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큰 죄 가운데 하나는 우상숭배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이 어리석은 죄를 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레관의 별(행 7:43)은 더 이상 빛나지 않고, 여인들은 담무스를 위해 더 이상 에곡하지 않지만(겔 8:14), 맘몬신은 여전히 금송아지로서 건재하고, 교만의 산당은 포기되지 않았습니다. 자아는 다양한 형식으로 택한 자들을 지배하려고 획책하고 있고, 육신은 자리만 있으면 그 제단을 세우려고 광분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에게는 종종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 큰 죄를 저지르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자녀들을 정도를 넘어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을 보면 슬퍼하십니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녀들은 그 부모에게 큰 저줏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데려가심으로써 가정에 커다란 슬픔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베개에 기사들이 자라 잠 못 이루는 밤을 갖기 원한다면, 자년들을 맹목적으로 사랑하십시오.

  "그들은 신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어리석은 사랑의 대상들은 크게 의심스러운 축복들로서, 그것들이 현제 우리에게 주는 위한은 위험스럽고, 고난 속에 있을 때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도움은 아주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헛된 것들에 미혹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돌을 신으로 섬기는 불쌍한 이교도들을 동정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돈을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육체를 신으로 섬기는 것과 나무를 신으로 섬기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그 원리, 그 죄, 그 어리석음 면에서 그것들은 똑같습니다. 다만 우리는 더 큰 빛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죄를 범하기 때문에 우리 속에 있는 죄가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교도는 거짓 신에게 절 하지만, 참 하나님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들을 섬긴다는 점에서 두 가지 죄를 동시에 범합니다. 주님이 이 가증한 죄로부터 우리를 깨끗이 정화시켜 주시기를!


    "주여, 내가 지금까지 가장 사랑했던

    우상이 무엇이든,

    주님의 보좌로부터 그것을 끌어내고

    오직 당신만을 경배하도록 도와주소서."

                                                                                                                                                                                                                저녁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 베드로전서1:23


  베드로는 흩어진 성들이 "순전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도록 아주 진지하게 권면했습니다. 그는 지혜롭게 자신의 주장을 율법이나 본성 또는 철학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 속에 심으신 고상하고 거룩한 본성으로부터 끌어내 설명하였습니다. 왕족들을 가르치는 지혜로운 교사들이 그들 속에 왕족의 정신이나 위엄 있는 행동을 심어주고 길러주기 위해 그들의 지위와 혈통에 대한 변론들을 끌어내는 것처럼, 베드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광의 후사요, 만왕의 왕의 후손들로서 왕의 피가 흐르는 왕자들이요, 땅에서 가장 진실하고 오래된 가문에 속한 자들임을 생각하도록 설명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2-25).

  우리는 인간의 영 속에서 우리의 거듭난 본성의 참된 존엄성을 인식하고 그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입니까? 만일 당신이 그를 왕과 비교한다면, 그는 왕의 존엄성에 제사장의 성결함을 더한 사람입니다. 왕의 고귀함은 종종 그가 쓰고 있는 왕관 속에 있을 뿐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그것이 그의 가장 깊은 내면의 본성 속에 심겨져 있습니다. 사람이 소멸할 짐승들보다 훨씬 고귀한 존재이듯이, 그는 새 본성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보다 휠씬 고결한 존재입니다. 확실히 그는 자신을 대할 때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통해 세상으로부터 땅에 머리를 대고 살아갈 수도 없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인생을 살 수도 없습니다. 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여, 당신의 본성의 존엄성과 밝은 미래가 거룩을 더욱 강하게 붙들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도록 작용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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