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보공간**/스펄전 묵상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 스펄전 묵상

by With Lord 2015. 11. 10.

11월10일

아침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 신명기 33:27


  처소(rufuge)라는 말은 "집," 또는 "거처"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의 거처요, 우리의 집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 비유 속에는 충분한 의미와 감동이 들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집은 아무리 누추한 오두막이나 허름한 다락방이라고 해도 우리 마음속에 항상 소중한 곳이고, 우리가 복되신 하나님을 집으로 삼아 그분 안에 살고, 기동하고, 존재하는 것은 휠씬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집에 있을 때 안전함을 느낍니다. 거기서 우리는 세상을 떠나 고요한 안전 속에 들어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악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방패요 운둔처가 되시며, 우리의 거할 처소가 되십니다. 집에 있을 때, 우리는 휴식을 취합니다. 거기서 우리는 하루의 피로와 수고를 내려놓고 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발견하고, 인생의 고뇌로 피곤할 때 우리는 그분께 돌아가고, 우리 영혼은 쉼을 얻습니다. 또한 집에 있을 때, 우리는 마음을 놓습니다. 우리는 집에서 오해를 받거나 우리의 말이 왜곡될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할 때, 그분과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고, 우리의 은밀한 소원들도 다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여호와의 비밀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과 함께 있다면" 그들의 비밀도 그분과 당연히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집은 우리의 신뢰와 진정한 행복이 있는 장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가장 깊은 기쁨을 발견할 때는 하나님 안에 있을 때입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 있을 때 모든 즐거움을 능가하는 즐거움을 맛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집을 위해서 일하고 수고한다는 것입니다. 집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하루 일과를 더 힘있게 감당하고, 그 일을 수행하는데 손이 빨라집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을 사랑하면 우리는 강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의 인격 속에서 그분을 생각합니다. 고난당하신 구속주의 얼굴을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분을 위해 살겠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아직도 구원받아야 할 형제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더 열심히 수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황하는 자녀들을 집으로 데려와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또 우리는 우리가 사는 거룩한 가정을 거룩한 몰약으로 채우리라고 다짐합니다. 이처럼 야곱의 하나님을 그 처소로 삼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저녁

제자가 그 선생 … 같으면 족하도다 - 마태복음 10:25


  이 말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종이 그 주인보다 더 높이 되는 것은 격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에 계셨을 때, 어떤 대접을 받으셨습니까? 그분의 축복을 받도록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주장이 인정받고, 그분의 교훈이 받아들여지고, 그분의 완전하심이 존중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사 53:3). 영문 밖이 그분의 거처였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그분의 직업이었습니다. 세상이 그분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었습니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 이 냉혹한 나라는 그분에게 안식처가 되지 못했고, 그분을 내쫓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일관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삶과 말을 유지한다면, 당신의 영적 생명의 많은 부분이 외적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구주를 대했던 것처럼 당신을 대할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행동을 무시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칭송하리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또는 당신이 더 거룩하고, 더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보일수록, 그들이 당신에게 호의를 배풀 것이라고 꿈꾸지 마십시오. 그들은 잘 가동된 최고급 보석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아직 가공되지 않은 보석을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겠습니까?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려 그 집 사람들이랴."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욱 닮는다면, 우리는 그분의 원수들에게 그만큼 더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호의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오히려 슬픈 불명예입니다. 악한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향해 박수를 치며 "잘 하였도다"고 칭찬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절대로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불의한 자들이 그리스도인을 칭찬할 때 그는 자신의 인격을 돌아보고, 혹시 잘못한 일은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에 대해 진실해야 하고, 그분을 조롱하고 거부하는 눈먼 세상 사람들과 멍에를 함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님이 가시관을 쓰신 곳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구하지 맙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