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화장품장사를 하러 다녔던 시장근처에 교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가 팔려서 십자가가 내려지고 간판이 사라졌다. 시장근처라 그런지 장사꾼들이 그 건물을 차지했다. 땡 처리 옷장수들이 단기임대를 하더니 결국은 피시방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예전에 교회였을지라도, 피시방으로 바뀌니 게임하는 건물이 되어버렸다. 유럽에 가면 중세의 가톨릭교회가 관광명소가 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곳에 가서 수백년전의 웅장한 건축양식을 보면서 감탄의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교회가 교회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관광 상품화 되어 버렸다.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곳은 십자가가 걸려있든 떼어졌든 이미 교회가 아니다. 한 때는 교회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교회란 기독교를 알려주는 종교건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첨탑위에 십자가가 높이 걸려있고, 건물의 중앙에 교단과 교회문패가 붙어있는 건물을 교회라고 부른다. 그러나 교회는 성경에서 정의하는 장소이여야 한다. 그래서 당신이 다니는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막11:17)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집의 정의는 기도하는 집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그 곳에 가서 기도를 하면서 희생 제사를 하는 곳이다.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면서 노끈으로 채찍으로 만들어 장사꾼들의 상을 뒤엎으면서 분노를 폭발하셨다. 하나님의 집을 교인들의 돈을 착취하는 강도들의 집으로 만들었다고 일갈하시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가장 많이 하는 종교의식이 무엇인가? 기도인가 아닌가? 예, 새벽기도회도 있고요, 금요철야기도회도 열고 있어요. 그런가? 기도회라는 이름의 종교행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서 가장 많이 하는 행사는 기도가 아니라 예배의식을 거행하는 곳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은 가물에 콩 나듯이 드물다. 새벽기도회를 비롯한 기도회에서도 기도하는 사람들은 드물고, 기도하는 내용이나 태도도 하나님하고 상관이 없는 기도행사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행사를 하는 것일 뿐이다. 기도란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영적 행위이다. 그런데 기도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욕망을 털어놓은 기도는 하나님을 경멸하는 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기도의 기쁨도 없고 응답도 경험하지 못한다. 어쩌다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도 몇 번 하다가 자취를 감추기 일쑤이고, 오랫동안 기도회의 참석을 자신의 의로 여기는 사람들은 습관적인 종교행사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자랑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당신네 교회의 교인들이 수만명의 대형교회이든, 소수의 사람들이 참석하는 개척교회이든 간에, 교인들이 기도하려고 교회에 수시로 찾아오는 곳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집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우리네 교회는 교회의 기능을 상실하고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종교 건물로 변질되었다. 아니라고? 하나님은 예배를 무척이나 기뻐하신다고? 그래서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고? 그런 말이 성경에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를 찾아보았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56:7)
하나님은 기도하는 집인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제사를 받을 거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무리 제물을 많이 가져와서 제사를 드릴 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에 관심이 없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네 교인들은 기도하지 않고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종교행위를 반복하는 일에 열심일 뿐이다. 이런 예배는 시간낭비이며 에너지 낭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위의 로마서에서 말하는 예배는 헬라어로 ‘라트레이아’로, ‘제사’라는 의미이다. 구약의 제사법에는 소나 양을 제물로 드리게 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구약의 제사법이 폐지되어 소나 양을 드리는 제물이 아니라 대신 우리의 몸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법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당신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되어야 한다. 당신의 생각과 성품, 말과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하며,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과 직장을 가리지 않고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당신이 바로 제사에 올리는 제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다가 경건한 얼굴로 주일예배에 참석한다고 해서 제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런 당신을 가증하게 여길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십수년 아니 수십년 동안 수천 번의 예배에 참석하여 소중한 헌금을 아낌없이 드렸을 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 고단하고 팍팍하게 사는 이유이다. 그런데 어떻게 천국을 자신하고 계신가? 아니라고 나름 예배의 삶을 살려고 애쓰고 있다고? 그런가?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자의 조건을 찬찬히 살펴보기로 하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1~24)
그렇다면 예수님이 예배하는 자의 조건을 살펴보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예배는 특정장소에서의 예배행위를 말하고 있지 않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서의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고 각각 주장했지만, 예수님은 이를 일축하시며 예배자의 조건을 말씀하셨다. 이 조건이 바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영과 진리하는 헬라어 본문의 말은 ‘퓨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이다. 영혼과 진리로 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와 복음 안에서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하나님을 말씀으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면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 영혼을 다해서 드려야 한다. 예배의식에 참석해서 예배행사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예배하는 자가 될 수 없고, 찬송을 열심히 따라 부르고 설교를 경청하고 있다고 해서 예배하는 자가 될 수 없다. 영혼이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고 경배하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당신의 영혼은 오직 하나님 안에 있어야 가능하다.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지 않는 영혼은 주리고 목마른 상태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오직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셔야 비로소 평안하고 기쁘며 자유함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 말씀하시는 생수가 바로 성령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성령이 1분짜리 영접기도를 하면 자동적으로 들어오신다고 착각하고 있는 이들이 허다하다.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오셨다면 기쁘고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허전하고 공하하며, 걱정과 염려, 두려움과 공포, 낙심과 절망, 불안과 의심에 사로잡혀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다.
당신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자가 되어 예배의 삶을 살고 있다면, 하는 일마다 잘되고 건강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영혼이 잘되는 천국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 기도하는 집이며 하나님의 집이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의 가정이 바로 하나님이 집이 되고, 교회에 가면 그 곳이 하나님이 집이 되는 것이다. 그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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