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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공간**/QT

히브리적 명상과 말씀읽기

by With Lord 2012. 7. 31.

여호수아 1:8과 시편 1:2는 성서가 일차적으로 소리내어 읽는 책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실상 오토 카아저(Otto Kaiser)의 말대로 , 율법 그 자체는 밤낮으로 "크게 읽도록" 되어 있었다

 

대 만 기독교 인구 3%가 3여년 안에 9%로 성장한 비결은 기도제단쌓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루 평신도는 적어도 10장 성경을 읽을 것이고 목회자들은 적어도 20-30장 성경을 읽기로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어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읽다가 중간에 멈춰서서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소리내어 읽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어가 가진 신비를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적인 세계관에서는 물리적인 세계는 하나님의 피조물로 하나님의 아름다우시고 영화로우시며 지혜로우신 성품과 능력을 반영하는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후 늘 좋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버리라고 하는 것은 물리적인 육이 아니라 욕망들입니다.

 

하 나님께서 영적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면서도 육이라는 몸안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섭리와 그 지혜를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찬양을 할때 몸과 영이 하나가 되어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하듯이 소리 내어 성경을 읽을때 영적인 계시와 지식이 소리를 통해 영혼안으로 깊이있게 들어가고 선포된 진리는 내안에 성전안에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헛된 사상을 다 허물어버리는 청소를 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성 경을 쉬임없이 소리내어 10-30장을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번잡한 생각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버릴수가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것들은 우리안에 숨겨진 쓴뿌리들이 드러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집중하지 못하게 자꾸 치고 들어 오는 다른 생각들을 걷어 내고 성경말씀을 주욱 읽어나가다 보면 성경이 아주 재미있어지고 쉽게 읽혀지며 그안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이 명료해집니다.

 

성경을 그저 읽는 것이 아니라 그안에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 받아야 합니다. 

 성 령께 요청해서 그안에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와 여호와 하나님을 내적으로 계시 받아야 합니다. 그런 내적 계시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날때 우리는 그분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알아가며 그리스도의 신부로 변화될수 있습니다. 즉 말씀 묵상의 촛점을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동이나 도덕적 선택보다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계시로 맞추고 성령께 요청해 나가면 그런 계시를 반드시 주십니다.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은 3년전부터 그렇게 성경만을 계속 읽어오면서 교회에게 주신 영적 권세와 능력과 이기는 자의 비결에 대해 존 물린디 목사님과 거의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성 벽을 쌓을때 적들은 "너희가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라고 조롱합니다. 성경좀 읽어 나간다고 정말 영적 돌파가 일어날 것인가 조롱하는 음성이 들릴것입니다. 그런 음성이야 말로 사단이 떨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내안에 성경읽기가 하기 싫은 이유가 101가지 떠오른다면 더욱 성경을 읽어야 사단의 계략을 파괴하는 것이 될것입니다. 말씀의 성벽을 쌓고 언약궤를 말씀으로 채워넣어야 합니다.  우리가 쌓는 이성벽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를 돕는 분은 전능하신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마음에 무너진 성벽을 쌓고 성전을 청소하고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이기는 자가 되는 것,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곧 존 물린디  집회 동영상을 올릴것이고 기도 지침서도 계속해서 올릴것입니다. 하루도 빼놓지 마시고 성경을 읽고 내가 읽은 성경속에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을 하면 어느때인가 완전한 하나님의 평강과 사랑가운데로 들어 갈수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은 그안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갈수 있습니다. 이미 마음의 지성소가 청소되었고 성벽이 재건되었고 말씀의 영으로 강건해 졌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내십시요.

 

다음은 히브리인들에 성경묵상에 대한 이해입니다.


명상을 위한 시간

히 브리인들은 오랜 세월, 방해 받지 않는 명상 시간을 가져왔다. 그들이 삶의 리듬은 자명종 시계나 공장의 호루라기 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해에 의해서 정해졌다. 목자로서, 농부로서, 또는 어부로서 히브리인들은 밖에서 살았기 때문에 토지와 바다와 밀접한 생활을 해왔다. 그들은 한주간에 한번씩 안식일에 쉬었을 뿐 아니라 해가 중천에 떳을 때에도 휴식시간에도 말씀을 묵상했다.

 

히브리인들은 성서를 명확하게 세부분으로 나눠진 책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모세 오경인 율법서와 예언서 그리고 성문서로 이루어져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여호수가아 히브리 성서의 두번째인 예언서에서

하나님은 율법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라고 하셨다. 시편은 성문서에 첫번째 책이다. 시편1편에서도 밤낮으로 묵상하라고 한다. 시편 77:12절은 "주의 모든일을 묵상하리라"고 한다

위 에 구절들은 묵상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히브리 성서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는 열쇠임을 말해주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세구절에서 묵상은 (hagah)로서, "소리를 내다""나직하게 말하다," "중얼거리다.""낮은 목소리로 말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인들에게 명상은 퀘이커 교도가 하는것 처럼 소리없이 눈으로 글을 읽고 침묵속에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본문들이. 묵상는 일반적으로 언어, 즉 말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즉 시편 49-3절에서는 "내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나의 마음의 묵상(hagut)은 명철이 될 것이다"(RSV).여기에 사용된 히브리 대구법은 ,입으로 말한것 과 "묵상"이 똑간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NIV성서는 하구트(hagut)를 "묵상"이 아니라"말"(utterance)로 옮기도 있다. 시편 19:14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사용된 "내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 hegyon)이 평행을 이루고 있다. 더 나아가 여호수아 1:8은 "이 율법책을 네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ehagita)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컨텍스트에서 "묵상하여"라는 단어는 율법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는 명령에 의해 규정되어 진다. "이것은 매우 강한 명령이다"

 

묵 상은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또는 그이 가르침이나 역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것을 입술을 통해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호수아 1:8과 시편 1:2는 성서가 일차적으로 소리내어 읽는 책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실상 오토 카아저(Otto Kaiser)의 말대로 , 율법 그자체는 밤낮으로 "크게 읽도록"되어 있던 것이었다(기독교와 히브리 유산- 마빈R 윌슨) 저


출처:the old path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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