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는... 나를 부인하고 주님께로 완전히 돌아서는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연약한데
이 정도쯤이야...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은 아예 포기하십시오.
이것은 마귀가 심어주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어가면 결코, 회개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회개는... 묻지도, 따지지도, 계산하지도 말고...
심장을 도려내는 애통한 마음으로
나는 무조건 죄인이라는 사실을 실토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죄에 대하여 애통한 마음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입술로는 죄인이라고 선언하지만, 내 심장은
아직도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죄를 자각하게 해달라고 먼저 구하십시오.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모든 말씀이
100% 있는 그대로 진리임을 받아드리고
그 말씀에 비추어 내가 어떤 죄인인지 확실히 인지하면서
주님께 완전히 굴복해야 회개의 영인 성령님이 오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회개시키러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오셨지
복음을 받고도, 여전히 회개 없이 세상의 죄와 친한 자를
무조건 은혜로 구원하러 오지 않으셨습니다.
자 이제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나의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려는 단호한 마음을 품으십시오.
억지로 내가 무슨 어떤 죄를 지었나 기억해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인간의 제한된 기억력으로
지금까지 살면서 지은 죄를 어찌 다 기억하겠습니까...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현실적 한계입니다.
내 능력과 의로는 그 누구도 죄로부터 돌이킬 수 없습니다.
회개는 오직 주님의 터치하심의 은혜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터치하여 은혜를 베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은혜로 회개가 되겠습니까...
죄인인 우리가 할 것은...
내 육의 죄로부터 돌아서겠다는 변하지 않을 굳은 마음가짐...
주님은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죄에서 돌아서려고 굳게 다짐한 사람은
여전히 죄를 즐기면서 회개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로 죄를 이겨보겠다는 결단이 있습니다.
회개는 내 죄를 반성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반성은 인간의 감성에 의지하는 것이기에 지속력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그와 같은 죄를 계속 반복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하여
이 땅에 죄가 들어오고, 죄 가운데 살며 주님과 원수로 살다가
이를 깨닫고 우리를 지으신 주님께로 다시 돌아가
원래 좋았던 사이로 다시 회복하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인간적 육의 속성에 이끌려 아버지의 품을 떠난 탕자가
자신이 엄청난 죄인임을 크게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하려는 자는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나를 완전히 내려놓고
주님께 무조건 굴복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가출했던 탕자가 무엇이라 고백했습니까...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회개함)
(누가복음 15장 18-20절)
회개하는 탕자의 마음가짐이 너무나 겸손하지 않습니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기도 감히 감당치 못하겠고,
아들이 아닌,
일반 품꾼으로 봐달라고 할 정도로 완전히 굴복하였습니다.
이런 낮아지는 마음가짐이 진정 회개하려는 자의 굳은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갑자기 탕자의 비유를 드셨습니까...
회개하려는 자는 이런 탕자와 같은 심정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 죄인들에게 예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단호한 마음가짐으로
어찌 또 죄와 함께하며 입술로만 용서해달라고 하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아버지(하나님)는 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중략.........
"내 아들은 죽었다가(죄로 살다가) 다시 살아났으며(거듭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장 20-24절)
이렇듯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주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기쁨으로 환영해주십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잔치까지 베풀어주셨습니다.
실제로... 죄인 하나가 온전히 돌이켜 회개하면
천국에서는 기쁨의 잔치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이것이 회개한 자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마음이고 은혜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그 어떠한 죄를 지었어도(성령 훼방 죄는 제외)
죄에서 돌이키려는 단호한 마음가짐만 있다면...
얼마든지 회개할 수 있도록 회개의 영(성령)을 허락하셔서
회개하게 하십니다.
이런 분들은 이제 성령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거듭나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성령께서
나의 마음에 양심의 찌르심으로 인해 죄와 멀어지게 하십니다.
예전에는 작은 죄는 죄로 여기지도 않았고,
어지간한 죄는
은혜를 앞세워 대충 뭉개고 넘어가려 했던 악한 마음가짐에서
이제는 작은 죄만 봐도 몸서리쳐집니다.
설령, 어쩌다 육의 속성에 이끌려 죄의 근처에 갔다가도
내 안의 성령께서 바로 양심을 찌르시는 은혜를 주시기에
바로 회개하고 돌아섭니다.
회개했다는 것은 내가 주님께 큰 은혜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주님께 용서의 은혜를 받았듯,
내 원수에 대하여도 그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증거됩니다.
내가 주님께 용서받았노라 주장하면서
나를 힘들게 하던 원수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나는 진심으로 회개한 자가 아님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은
내가 주님으로부터 용서와 사랑의 은혜를 받았듯...
내 원수에 대하여도
용서를 넘어 긍휼과 사랑하는 마음까지 품게 됩니다.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납니까...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분의 성품(성령의 열매)을 나에게 주셔서
그런 마음이 들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그러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과 용서하는 마음이 없이
계속해서 육의 본성에 지배받고 있다면
내가 진짜 회개하고 거듭난 자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회개한 자는 반드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열리게 됩니다.
나는 회개했노라 하면서 이에 합당한 열매가 없다면,
나는 입술로만 형식적으로 회개했을 뿐,
진정으로 회개한 적이 없는 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처럼 회개한 자는 회개한 자다운 모습이 회개의 열매로 나타나며,
거듭난 자는 거듭난 자답게 거듭난 자의 모습이 삶으로 나타나고,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답게 그 모습이 그대로 증거됩니다.
위 세 가지 경우는 모두 같은 말씀이지만,
이것은 주님께서 정한 것이기에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나타나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회개는...
아담과 하와가 주님과 동행하며 신의 성품으로 살던 시절...
죄로 인하여 신의 성품이 죽었던 우리의 영이 다시 살아나
이 시절의 신의 성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베드로후서 1장 4절)
성령님이 내게 오셨으니 당연히 신의 성품이 됩니다.
마치 탕자가 죄 가운데 살다가,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았듯 말입니다.
신의 성품으로 다시 참예(성령으로 거듭남)하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회개는 곧, 거듭남이고, 거듭남이 곧 믿음이며, 믿음은 곧
자연스럽게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주님이 정하신 성령의 법으로서 당연히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또한, 이런 사람은 계속 여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침노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입술로만 '주여주여' 소리 지르며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 생활 열심히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회개하고 거듭나 주님의 성품에 참예했으면...
점점 더 주님의 거룩한 성품에 가까워지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성화와도 맥을 같이하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영성에 가까워지라는 것입니다.
이는 모두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지만,
게으르고 나태한 이에게 무조건 은혜가 부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을 물가로 인도하는 것은 말 주인의 인도로 되는 것이지만,
그 물을 먹고 안 먹고는 순전히 말의 의지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를 이끌고 은혜받을만한 자리로 인도하시지만,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은혜는 부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자유의지(혼)를 만드셨고,
자유의지를 존중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주님의 뜻에 순종도 안 하면서... 무조건 주님의 은혜로 다 된다는
마귀의 악한 속삭임에 절대 속지 마십시오.
이는 선악과만 먹으면
주님처럼 된다는 마귀의 궤휼과 아주 똑같습니다.
실제 거듭났으면서도 나태하여
내 안에서 이끄시는 성령님의 인도에 이끌리려 하지 않고
퇴보하거나 한 자리에 머문다면 주님으로부터 큰 책망을 받습니다.
신앙은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살아 숨을 쉴 때만이...
회개하고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의 시간입니다.
이 기회의 시간을 나태하게 허비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늙어 죽기 전에... 언제라도 어떤 사고와 병으로 인하여
갑자기 육의 장막을 벗을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시간은 항상 내 편이라고 주장하지 마십시오.
시간은 언제까지 무한정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시간이 내게 속한 게 아니라, 내가 시간의 일부임을 기억하십시오.
회개는 내일 하는 게 아니라, 오늘 하는 것입니다.
'내일 내일' 하는 사람은 내일이 되면 또 '내일'이라 외칠 것입니다.
어서 돌이킴의 자리로 빨리 나아오십시오.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제발... 간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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