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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마당**/천국미술관

그 빛의 광채 - 천국미술관

by With Lord 2015. 7. 17.


그 빛의 광채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행22:11)

 

위기의 때에 은밀한 곳에 몸을 숨기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그 은신처는 반드시 공간적으로 외진 곳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명을 받은 자가 낮은 곳에 몸을 숨기고 엎드려 대기하는 곳이기도 하다. 치열한 전쟁에 앞서 생존하기 위하여 낮은 포복을 훈련하는 장소이며 적에 대한 정보와 전략을 꿰뚫어 보는 곳이기도 하다. 많은 훈련을 거친 병사일수록 생존율이 높다. 기도의 전선에서 오래 싸운 자만이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은신처는 바로 기도의 훈련장이다. 

 

그리스도인은 숨김의 미학을 알고 있는 자이다. 그것이 주님의 가르침이다. 구제도 선행도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고 하나님만 보시게 하라는 교훈이다. 보물은 깊은 곳에 숨겨진다. 땅위에 노출되어 쌓아놓은 것은 사람의 눈에는 거창해 보일 수 있으나 검불과 가라지와 바람에 나는 겨가 태반일 때가 있다. 견고하고 웅장하던 바벨론도 공력시험이 올 때 불태워진다. 

 

 

예수가 가야바 앞에 섰을 때 그의 눈에는 갈릴리에서 걸어 온 나약한 목수의 아들에 불과했다. 질그릇 속에 눈부신 영광과 생명의 빛을 숨기고 오신 성육신(成肉身)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질그릇 안에 있는 영광의 광채, 그 전모를 인간이 보게 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없게 된다. 다마스커스의 언덕에서 사울이 본 것이 그것이다. 질그릇은 부서지고 태양보다 더 빛나는 그 안의 광채가 눈을 찌른 것이다. 단 몇 초간 발산 된 그 빛에 눈이 멀었고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방불하게 된 사울의 몸에 강력한 하늘의 목소리가 새겨졌다. 

 

 

-주여, 누구시나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많이 탕감을 받은 자는 많이 사랑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부르신 사람들에게 생애에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쏟아 부어 종이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 영광의 광채를 아는 종들은 예수님처럼 생명이 다하기 까지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그 길을 달려가는 것이다. 

 

성육신은 낮추심이다. 태어난 곳은 베들레헴 마굿간 구유였다. 육신으로 종의 몸으로 오셨고 창조주가 피조물 앞에서 극도의 저자세를 취하셨다. 더 이상 낮출 수가 없을 만큼 자신을 낮추셨다. 은 삼십은 그 당시 한사람의 종(노예)을 사는데 지불하는 값이었다. 예수를 판 속전은 다시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반환 되었고 대제사장들이 의논하여 토기장이의 밭을 사는 것으로 예레미아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의논한 후에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마27:7-8)

결국 메시아를 판 그 속전(贖錢)은 성전에서부터 나왔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가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갈 때 제자들은 아겔다마에 숨어있었다고 한다. 예루살렘 지도를 보면 달리 숨을 곳이 없어 보인다. 살기 위해 이방인들의 무덤에 숨어있었고 후에 속죄양의 피값을 가지고 죽기 위하여 열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간 열방이 피밭이며 아겔다마이다. 

 

아겔다마는 이 지구 땅에서 본향을 바라보며 정처 없이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 그들을 구속하리라는 하늘의 의지가 피밭에 숨겨져 있다. 이천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예루살렘 황금 문 일대는 무덤으로 가득하다. 피밭이 주는 의미는 십자가가 있는 지구의 모든 처소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예수가 지불한 속전으로 그날에 의인들은 부활의 몸을 입을 것이다. 피밭에 하늘의 영광이 임할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다. 그것은 또한 예수를 팔았거나 반역한 악인들에 대한 심판이기도 하다.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개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이 환상은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한 사람들은 이 환상을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서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이 들었느니라. (단10:5-9)

 

다니엘이 본 환상과 시도 바울과 요한이 본 환상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다니엘도 사울도 요한도 그 영광의 빛 앞에서 혼절하였다. 전능자의 빛 앞에서 눈이 멀어버린 사도바울은 무덤에 누운 자처럼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죽은 자처럼 되었다. 요한 역시 마지막에 이 땅에 일어날 일과 보좌에서 심판하시는 영광의 주를 보았고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죽은 자같이 되었다.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이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으며 그의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 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1:2-19) 

 

이제 대 전환의 시기에 이르렀다. 십자가의 주님, 육신의 몸을 입고 속죄제물이 되신 그분은 이제 구속받은 자의 숨겨진 배경이 되시고자 하며 우리를 영광의 왕, 그 빛의 광채 앞으로 나아가도록 독려하신다. 이제 우리 앞으로 다가오시는 분은 선지자들이 보았던 그 광채의 빛으로 오시는 영광의 왕이시다. 그 분은 다니엘과 바울과 요한이 만난 하나님이다. 전능자이시며 본질의 하나님이며 영원 전부터 계셨던 분이다. 구속의 자녀들이 그 분을 만날 때 다메섹의 사울처럼 주여, 누구시오니까? 라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보는 파도와 같은 사랑과 그 영광의 몸에 십자가의 흔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과 바울과 요한이 그 영광의 빛 앞에서 죽은 자처럼 혼절하였다면 죄악이 관영한 세상가운데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 영광의 광채 앞에 어떻게 설 수 있는가? 나는 비느하스와 홉니보다 의롭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피밭에 숨어 든 것처럼 살고자하는 자는 보혈이 있는 은신처로 들어가야 한다. 피밭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며 의와 거룩함을 입게 해 달라고 부르짖어 구해야 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출처] 그 빛의 광채|작성자 브살렐


http://blog.naver.com/yspark5301/22037883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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