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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마당**/천국미술관

바이블 로열티 - 천국미술관

by With Lord 2015. 7. 1.


바이블 로열티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롬3:1-2) 

 

주님의 보좌와 발등상인 예루살렘에 선명한 예수님의 눈동자가 머물러 있다. 아직 유대인의 눈에서 수건은 벗겨지지 않았고 눈에서 비늘이 다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회복은 완연하다. 에스겔 골짜기에 쌓여있던 하얀 뼈들은 야드바셈(대학살 기념관)에 가서야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눈앞에 거대한 군대가 일어나고 있다. 열방의 군대를 맞아 싸울 강력한 다윗의 군대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무화과나무 가지와 잎이 연하여지고 오밀 조밀하게 조성된 예루살렘의 골목길 마다 메시아 예슈아의 이름과 찬미가 퍼지고 있다. 

 

그 사실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다. 교회가 아직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눈이 먼 상태로 있다는 것이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변했다. 천구백년 동안 지구상에서 사라졌던 나라 이스라엘이 세워지며 열방에서 유대인들이 고토에 돌아오며 말씀 속에 숨겨진 비밀들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거부하므로 민족전체가 번제에 처해진 이천년 비극의 역사가 이스라엘 가운데 일어났다. 그러나 오늘날 회복 된 이스라엘 가운데 수많은 인봉되었던 기록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인간은 교만해지면 은혜를 잊는다. 부요해지면 가난한 때를 잊는다. 잊지 말아야 될 것을 잊게 된다. 교회가 이스라엘을 잊어버렸다. 열매 맺지 못하는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져 유대적 뿌리로부터 진액을 먹고 자랐음에도 교회가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심히 박해했다. 이천년 가까이 이스라엘이 교회로 대치되었다는 신학이 고착되었다. 에스겔의 사망의 골짜기에 이방인이 멸절시킨 이스라엘이 하얀 뼈 무더기가 되어 비바람에 씻기고 있었다. 생기의 바람이 불어 뼈들이 살아나 큰 군대가 될 때 이스라엘은 교회가 가한 저주와 학살의 기억도 되살려냈다.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은 이십에 요셉을 팔아 애굽의 메시아가 된 것처럼 이스라엘은 은 삼십에 메시아를 이방인인 우리에게 팔았다. 예수님은 아직 열방의 메시아다. 그러나 이방인의 때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 시온산 황금 사원이 사라지면 이방인의 때는 끝나게 된다. 유대인의 예수님에 대하여 소경된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이스라엘을 볼 때 소경이 되어있다. 그러나 놀라울 만큼 빠르게 소경 된 자들이 눈을 뜨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이 눈을 뜨며 메시아 예수아를 보고 놀라며 교회가 눈을 뜨고 이스라엘을 보고 놀라고 있다. 때가 차고 있는 것이다.

 

만개한 이스라엘의 봄을 보며 신실하신 약속의 주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봄기운이 퍼지고 있는데도 내 몸이 계절을 느끼지 못한다면 심각하게 몸을 살피고 건강진단을 받아보아야 한다.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둡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시인하고 기도할 때 눈이 열려 치료와 함께 새로운 차원의 부흥이 오게 된다. 교회가 생명력을 잃고 예수님을 잊어가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새로운 축복의 떡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먹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스라엘에 대해 만들어 낸 잘못 된 선입견을 교회가 갖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킨다고 했지 이스라엘을 교회로 대치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지금 현재도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와서 민간인들을 죽게 하고 불법으로 정착촌을 만들고 있다고 분노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 자기 의로 하나님의 의를 부정하는 자이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다 옳다는 말이 아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만 미혹의 세상영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영은 참소와 반역의 천재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축복할 때 내 안에 있던 참소하던 어둠의 영이 물러간다.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신학적 학살이 먼저 벌어지고 후에 대학살로 이어졌다. 기독교 국가라고 자부하던 유럽과 러시아가 이스라엘을 잔해하던 역사가 그것을 증명했다. 루터가 이스라엘을 향해 퍼부은 무시무시한 저주를 기록한 문서들은 히틀러와 나치의 군대를 일으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 사악한 열매들은 하늘의 행위록에 낱낱이 기록되고 심판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교회는 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까지도 파기되었다고 생각한다. 

 

-구름이 땅을 덮음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눈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이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라.(겔38:16) 

 

-내가 또 전염병과 피로 그를 심판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무리와 그와 함께 있는 많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 하리라.(겔38:22)

 

러시아와 이란을 중심으로 한 중동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마곡의 전쟁이 가깝다. 곡의 아가리를 꿰어 전쟁으로 끌어내어 열방의 목전에서 곡의 군대를 멸절시켜 이스라엘 하나님의 분노와 신원하심이 어떠함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마곡의 전쟁(3차세계대전)과 그 후 대환난의 실상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멸절시킨 열방을 이스라엘을 들어 신원하여 진멸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천년 동안 교회와 열방이 저지른 죄악을 기억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오셔서 그 신원의 날을 말씀하셨다. 여호사밧 골짜기는 바로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열방을 심판하는 장소이다.

 

모든 이단은 대체신학에서 나왔다는 성경학자의 강의를 들었다. 지금 와서 깨닫고 보니 그것이 사실인 것이다. 자신이 소경될 뿐만 아니라 회중을 소경이 되게 한 그 죄과를 어떻게 감당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멸시하고 주님의 재림을 기롱하고 준비시키지 못한 책임을 어떻게 감당 할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하는 종을 보기가 힘든 시대이다. 예수님의 재림에 아무관심이 없거나 전하지 않는 종들은 교회시대가 영원하고 이미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고 생각한다. 무의식 속에 독초가 뿌려진 것이다. 그들은 임박한 예수의 재림을 전하는 자를 보면 신학적으로 무지한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무지하게 예수의 재림을 전하는 자들도 있겠지만 그들은 재림에 있어서는 소경이다. 말씀 가운데서 예수님이 곧 오심에 대한 믿음과 긴장감이 없으면 세상과 먹고 마시게 되어있다. 기다림이 없으니 예복을 준비하지 못한다. 예복의 의미는 의와 거룩함이다. 주님 보실 때. 외양은 화려한데 말씀에 비춰보면 벌거벗은 모습이다.

 

신종 장미 한 송이나 작은 특허에도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로얄티를 지불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교회가 이스라엘에 지불해야 할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바이블 로열티(Bible Royalty)가 그것이다. 유대민족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나왔다. 말씀을 기록한 선지자들이 유대인이며 말씀은 곧 유대민족의 역사이며 12제자와 주님이 유대인으로 오셨다. 성경은 유대인의 피로 기록 된 살아있는 말씀이다. 당연히 지불해야 할 로열티를 교회가 착복한 것에 대해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 없다. 

천지는 사라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바이블 로열티를 지불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모든 교회에 주신 신령한 하늘의 기업이 이스라엘로부터 온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감사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며 격려하며 교회가 전심으로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영광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축복한 만큼 축복으로 갚아주신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이방인교회들에게 한 말이다.

신부의 날(RAPTURE)이 가깝다. 이 시대 어떤 사람을 신부라 부르는가? 신부는 예루살렘을 부르며 애통해 하며 눈물이 마르지 않는 예수님의 눈동자를 마음에 새기는 자이다. 예루살렘을 정다이 부르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보며 태생적으로 중보의 삶을 사는 자이다. 나다나엘처럼 무화과나무 아래서 주님의 날을 헤아리며 순결한 예복을 준비하는 자이다. 신부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찰 때, 극상품 감람열매가 되어 그 기름으로 넘치게 예비하여 등불을 밝힌 자이다.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하며 눈에서 수건이 벗어지기를 기도하며 이스라엘에 약속의 성령이 부어지기를 기도하자. 이스라엘이 메시아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로 인하여 죽은 자에서 살아나는 생명의 파도, 축복의 파도가 온 열방으로 퍼지게 하자.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았던 벽이 허물어져 한 새사람을 이루고 천상의 축제로까지 이어지는 그 날까지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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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이블 로열티|작성자 브살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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