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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마당**/천국미술관

숨겨진 생명나 - 십자가

by With Lord 2014. 9. 25.


 



감추어진 생명나무를 찾아 구속사(救贖史)의 원시림을 탐험해 본적이 있으십니까? 아담과 하와가 떠난 후로도 에덴은 폐하여 지지 않았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를 그룹과 화염검을 두어 지키게 하였습니다. 언젠가 때가 이르면 회복이 날이 이를 것입니다. 그 회복의 약속은 두루 도는 화염검처럼 강렬한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죄와 어둠을 가르는 불의 검,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의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3:22)

 

죄를 지은 존재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죄악 가운데서도 죽지 않는 영적 존재가 되고 맙니다. 루시퍼가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화염검은 완전한 에덴의 회복을 약속하는 양날가진 검이며 반역과 죄를 화염검으로 베어내며 순종과 경외감으로 엎드리며 영혼의 중심을 쪼개는 성령의 검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쫒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모세가 광야에서 놋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4-15)

 

놋(구리)은 심판을 뜻합니다. 성막의 번제단과 제단의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성막 울타리 기둥의 받침도 놋이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인류의 모든 죄가 압축 된 놋잔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지나가기를 구하였으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예수님은 그 잔을 마시며 광야의 놋뱀처럼 심판의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창22:6)

아브라함이 이르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아들을 잡으려 하니,(창22:9-10)

 

네 씨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하셨다 하느니라.(창2 2:18)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기까지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이 맺어집니다. 이천년이 지난 다음에 번제에 쓸 나무를 등에 지고 모리아 산으로 걸어간 이삭의 그 길을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어갔습니다.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끌어 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며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창37:28)

 

-그들의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창37:31)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의 그를 잡아 먹었도다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창37:34)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들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나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창45:3)

 

이스라엘의 찢어진 심장은 피 묻은 채색 옷을 움켜잡고 사랑하는 요셉을 잃은 아비의 통곡이었습니다. 은 삼십에 이방인(애굽)에게 팔아버린 요셉처럼 예수는 지금 이방인의 왕으로서 우리 중에 열방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찰 때, 예수는 그 모습을 형제 이스라엘에 드러낼 것입니다. 아버지 이스라엘을 부둥켜 안고 통곡 하는 요셉은 이방인의 메시아가 된 아들입니다. 열방의 추수가 끝나고 대기근(대환난)이 시작 될 때 12지파 가운데 자신들이 팔아버렸던 고난 받은 메시아와 동시에 영광의 왕 되신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메시아의 날이 가까울수록 예루살렘의 찬미는 더 짙어지고 더 뜨거워 질 것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12:10)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슥13:6)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레위 족속이 따로 하며 시므이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슥12:11-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마23:39)

 

이천년 동안 가려졌던 선민의 눈에서 두꺼운 비늘이 떨어질 때, 예루살렘은 통곡으로 뒤덮이게 될 것입니다. 형제에게 받은 옆구리 창상으로 심장이 터져 물과 피로 흐른 상처, 곧 십자가의 흔적으로 다가오는 메시아를 보며 통곡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이 멀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이스라엘의 통렬한 회개와 함께 이스라엘을 끝까지 참아주신 하나님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사랑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로 선민의 위상을 회복하며 대환란(야곱의 환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위대한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어린 양과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라.(계17:14)

 

천국의 생명강가 좌우에 늘어선 생명나무는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으며 그 과일은 먹고 배가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한 번도 맞본 적이 없는 영혼의 향기로 희락과 평강으로 녹아내릴 것입니다. 에덴에 있던 생명나무의 길은 십자가를 통하여 영원한 천국에서 완성되어집니다. 구속사의 사막과 밀림 곳곳에 생명나무, 십자가가 숨겨져 있습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이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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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대에 대한 이해(2)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눅21:26-28)

 

마지막 시대의 환난은 생각보다 빠르고 두렵고 급하게 우리 눈앞으로 다가 오는 듯합니다. 정말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앞으로 지구적인 재앙이 계속 된다면 그 다음 점점 더한 강도로 밀어 닥치는 재앙의 파도 앞에서 사람들이 미치는 일까지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구속의 날까지 미치기 까지 두려운 상황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 입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머리를 들라하십니다. 왜 머리를 들라는 것입니까? 마지막 시대 우리의 눈의 초점을 땅의 소용돌이에 고정시키지 말고 눈을 들어 이 일이 있으리라 하신 주관자 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말씀의 약속을 붙잡으라는 뜻일 것입니다. 

 

은혜시대, 성령시대, 교회시대, 이방인의 때, 시대를 구분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 이름들은 그냥 붙여진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끝에 낫을 대어 열매를 거두고 환란의 때로 들어간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 환난은 열매를 더욱 열매답게 하는 것입니다. 열매는 그냥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습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막4:28-29)

 

두려워 할 것은 이 땅의 무서운 재앙이 아니라 내가 지금 과연 충실한 열매가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산 믿음과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거룩함이 자리 잡고 있다면 방주 밖에서 파도가 아무리 무섭게 소용돌이 쳐도 노아의 식구처럼 안연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준비 할 수 있는 약간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내가 열매가 되었는지 점검하고 환란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으로 서기 위하여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의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방에 두려워하는 자를 미혹하기 위하여 영이 다르고 길이 다른 미혹하는 자들이 수많은 덫을 숨기고 있습니다. 짝퉁이 진품보다 더 그럴싸하게 보이는 세상입니다. 나는 절대로 미혹되지 않는 다 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는 교만으로 위험해진 사람입니다. 공개 된 이단 보다 수십 배 많은 미혹 자들이 정통으로 위장하고 허점을 노리는 시대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5-27)

 

지금은 어디를 쫒아 다니거나 무엇을 구하려 다닐 때가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에 기름을 사려간 처녀가 그렇습니다. 내 안에 것으로 내 안에서 무르익음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아직 내 안에 두려움이 있다 해도 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과 목마름이 있다면 말씀에 의지해서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될 때까지 갈급함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내 안의 두려움의 원인은 세상을 사랑하고 회개하지 않는 죄가 있으며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를 토설하고 사랑한다고 말씀대로 살겠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중심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꿰뚫어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결코 속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아주 중요한 관건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해야 모든 것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던 것이 여호와의 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됩니다. 십자가의 환란이 임할 때, 삼년 반을 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처럼, 그러나 오순절 날이 임하자 성령의 권능을 입은 사도로 돌변하여 이적과 기사가 일상이 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초대교회를 열어갑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은 더욱 악화되었다 할지라도 내 안에 성령의 권능은 모든 것을 이기게 합니다. 성령세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서적을 읽고 내가 엎드려 기도할 수 있는 곳에서 내 중심을 다하여 갈급하고 목마르게 부르짖을 때, 성령의 세례가 베풀어질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의 절대 비극은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세례를 모르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며 성령세례 이전의 제자들처럼 영적인 패배주의가 만성화 된 상태로 지식위주의 인본주의로 나아가기에 한계에 갇혀 좌초되고 길이 막히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세례가 베풀어지는 장소이며 그렇지 못하다면 초대교회처럼 마지막 시대는 우리의 가정에서 성령의 역사가 임하기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담대하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온갖 풍상을 다 겪어서 병약한데다 몹시 수줍음을 타고 열등감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이 세상을 살 수 없었던 비천한 자였습니다. 36살이 될 때까지 그렇게 살면서 인간이 이토록 비참함과 고뇌에 싸여 짐승처럼 신음하다가 병들고 죽고 마는 인생이라 생각하면 허무와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그 때 어느 분이 제게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간증집을 주어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서 처음으로 성령세례라는 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후에 기독교 서점에서 성령세례에 관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과 함께 살려면 반드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성경말씀과 함께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계,라는 잡지에서 전국교사금식수련회가 열린다는 광고를 보고 부부가 오산리 금식기도원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82년 1월이었습니다. 사천여명이 참석한 그 집회 첫날 첫 시간부터 흐느끼며 두루마리 화장지로 흘러내리는 콧물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목사님들을 통하여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36년 동안 그렇게도 목말랐던 영혼이 타는 갈증이 끝없는 눈물이 되어 흐르고 또 흘러 내렸습니다. 그 이후에도 오래 동안 성경을 읽을 때면 혀와 목이 바삭 바삭 타는 감각이 계속되었습니다. 영의 식도가 따로 있어 무제한의 영의 양식을 요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나를 괴롭히던 위장병과 천식이 모르는 사이에 치료가 된 것입니다.

 

3박4일의 집회가 끝났지만 그 은혜에 취한 체 기도원에서 하루를 더 머물렀습니다. 토요일 아침 한 남자가 우리를 향하여 걸어왔습니다. 처음 보는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습니다. 이 분이 우리 부부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이후 일정이 어떠냐는 거였습니다. 그 남자가 새벽 기도를 다녀와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꿈에 어떤 분이 나타나서 지금 기도원으로 가라고 해서 서울에서 달려온 길이라고 했다. 그 남자는 짐을 꾸려 챙기게 하고 우리를 차에 태우고 서울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시내 어느 곳에 숙소를 정해주고 내일 예배에 맞춰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 갔습니다. 그리고 정말 어두운 새벽에 할렐루야! 인사와 함께 그들 부부가 우리 숙소에 온 것입니다. 그 어두운 새벽을 달려 여의도에 있는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그 분들이 어떤 문을 통하여 아직 비어 있는 성전 안으로 우리 부부를 안내해서 강대상 가까이로 이끌었습니다. ‘여기가 가장 은혜를 받는 곳입니다.’ 강대상에서 일곱 번째 자리! 그 부부는 우리 부부를 둘러싸듯 좌우 양쪽에 앉았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기도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금식성회를 통하여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병을 고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 성경이 말하는 성령세례는 받지 못했습니다. 제주도에 내려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라도 성령의 세례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냥 마음속으로 한 기도였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설교가 시작되려고 할 때, 천정에 강대상을 비추는 일곱 개의 조명등, 양쪽 가장자리에 있는 두 개의 라이트에서 두 개의 불이 나를 향하여 날아왔습니다. 그 순간 나의 양손이 어떤 엄청난 힘, 압도하는 권능에 의하여 들려 올라가 단단하게 고정되었습니다. 동시에 나의 두 손에서 몇 백만 볼트의 전압이 가해져서 온 몸이 감전이 되어 윙윙거리는 불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었습니다. 나의 두 손은 달아오른 단 쇠처럼 높이 들려졌습니다. 세포 하나하나가 불에 풀어지고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는 죽은 자처럼 되었습니다. 설교시간이 끝나갈 때까지 그 하늘의 불길은 계속되었습니다. 설교가 끝나갈 때 그 기운이 손에서 배로 내려왔고 혀가 펴지며 방언이 터졌습니다. 강대상 아래에서는 가수가 나와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처음 듣는 노래였습니다. ‘....얼마나 아프셨나. 못 박힌 그 손과 발.......,’ 그 노래가 불러지는 가운데 내영이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의 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내 몸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체험은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죄인 된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신 그 사랑! 피 흘리신 그 사랑! 최근에 그린 그림, ‘낙원에 간 우편강도’는 그 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려졌습니다.

 

성령의 세례가 베풀어지던 시간 말미에 하나님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천국의 상태를 보게(느끼게) 하셨다. 그것은 완벽하고 충만한 사랑이며 완전한 안식과 평화였습니다. 그 부부가 축하한다고 큰 은혜를 받으셨다고 데리고 간 곳은 선교센타 위층에 있는 목사님들의 전용식당이었습니다. 이 부부가 식사를 사주는 것이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우리부부를 세워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자신들의 임무가 끝난 것처럼 축하한다고 악수하고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제 서야 이 고마운 분들에게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하여 후에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남자분이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습니다. 1982년 1월 10일 주일 여의도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내려와서 몇 주가 지나서 그분들에게 감사를 전하려고 수첩에 적어 준대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몇 번을 확인해도 그런 분은 여기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신비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때 일어난 일을 그대로 전하는 것뿐입니다. 

 

 눈물 아닌 다른 것으로는 그 감격과 감사를 표현 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그 후로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내리 3년을 울고 다녔습니다.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런 은혜를 내려 줄 수 있단 말인가! 그 당시 나는 모슬포지역에 소재한 여고 미술교사였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미친 듯이 예수를 전했습니다. 새로 개척한 교회는 학생들로 가득 찼습니다.

 지나온 길이 꿈같기만 합니다. 오랜 하나님을 향한 질문이 있습니다. 세상 보통사람의 평균치에도 못 미치는 나 같은 자에게 어찌하여 이토록 큰 은혜를 주십니까? 하나님도 실수를 하시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짧고 명료했습니다.

-그 집회에 모인 모든 사람보다 네가 가장 목말라 했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미친 듯이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팀 사역으로 제주와 일본과 러시아에 교회들을 세웠고 방학이면 단기선교라 하여 밀림을 누비며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삶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 발길의 닿는 나라마다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언젠가는 순종의 기간이 끝나는 날 브살렐 처럼 하늘의 예술가로 거듭나고야 말리라 다짐하면서....., 

 

지금은 성령세례 이후에 받은 비젼이 몇 가지를 빼고는 대부분 다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로 갈 날이 가까운 듯합니다.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게는 너무나 과분한 축복의 처소에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고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성령님의 수고에 눈물로 감사하며 이 글을 씁니다.

 

교회는 성령세례라는 하늘의 생명수 근원을 고향으로 삼아 탄생한 축복의 터전입니다.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아직도 성령의 세례가 베풀어지고 성령의 역사가 편만하다면 당신은 이 시대 최고의 교회 성도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슴이 타도록 신부들이 성령의 세례와 충만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신부의 반열 가운데로 가는 길에서 성령의 세례가 임하는 위치는 절대적이며 등불과 기름의 든든한 베이스를 구축한 것입니다. 오늘부터라도 있는 그곳에서 갈급한 심령으로 성령의 세례를 구하십시오. 때가 급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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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대에 대한 이해(3) 

그동안 막연히 생각하던 환난의 징후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누구나 마음이 조급해지며 속으로 두려워하게 됩니다. 마지막 시대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관점만으로는 본질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기가 닥치면 인간은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칩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일을 어떻게(how) 하지?

 많은 것을 보고 알고 이루었다고 해서 인간의 한계와 피조성을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위기의 근원을 모르기에 더욱 두려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배도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모 신학대학 교수가 인카네이션(成肉身)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글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그 역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영적인 파산선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how) 처녀가 아기를 낳을 수 있는가?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how) 날 수 있사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니까?(요3:4)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다.(요10:33)

관점 정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진리의 빛으로 조명 된 말씀이고 인간 역사 속에서 언약과 성취로 확증이 될 뿐 아니라 그분을 믿고 따르는 자녀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why)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야 했지? 왜(why)?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일학교 어린이라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우리의 관점이 왜(why)로 바뀌면 어리석은 자들의 질문에 얼마든지 진리를 변증하며 가슴까지 뜨거워질 것입니다. 임박한 주의 재림 앞에서 홍수와 같은 정보들로 넘쳐납니다. 긴장하고 자기를 준비하는 것에서 조금은 필요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백해무익하거나 해로운 것들입니다. 내 존재가 혼의 영역에 위치한다는 뜻이며 이 혼의 특성은 호기심입니다. 마지막 시대가 되어 재림과 연관 된 봇물 같은 정보들이 우리의 시각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입니다. 영적인 것이라면 더욱 호기심이 이끌리게 되어 독초라도 마구 주어먹습니다. 잡다한 가십거리로 눈과 마음을 채우고 결국은 무엇에 취한 자처럼 드러누워 영적인 노숙자처럼 되는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재림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았다고 지혜로운 신부가 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불안만 가중할 뿐입니다. 밖에서 찾으려 말고 시점을 돌이켜 내 안에 주님과의 관계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쉽게 자신의 진정한 신분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언제까지 신부의 가슴에 그런 잡다한 정보들이 뒤엉키도록 방치하시겠습니까? 롯이 날마다 불법을 봄으로 영이 상하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죄악 된 소돔에 주거하며 날마다 불법을 봄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롯의 가족들처럼 영이 상하여 좌초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성전이며 영은 지성소와 같습니다. 정사각형 입방체로 된 지성소의 사면은 창이 하나도 없으며 세상의 어떤 것, 빛이나 소음까지도 정금으로 된 벽으로 완전하게 차단되어 있습니다. 법궤 위 시은좌를 중심으로 꿇어앉아 양쪽 날개깃을 앞으로 내린 두 그룹이 고요가운데 엎드려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던 휘장을 열고 희생재물의 피가 들어있는 혈반(血斑)을 들고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피가 법궤 위 시은좌에 드려질 때 지성소 천정 중심으로부터 죄를 소멸하는 성령의 불이 나타나게 됩니다. 

주님과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이 지성소의 구조를 가슴에 새겨두는 일이 신부들에게는 지혜롭고 큰 유익이 됩니다. 예수의 피가 담긴 혈반을 시은좌에 드려 죄악을 소멸하고 정결케 된 신부는 비로소 사랑의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 거룩은 신의 성품이며 이 성품에 합류한 자는 열린 휘장 너머에 사랑의 발화점에 이르게 됩니다. 이 사랑만이 영원한 실제입니다. 나의 몸이 성전인 것과 중심에 지성소가 좌정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나는 친구가 없습니다. 내가 패쇄적이라서가 아니라 지금껏 살아오면서 폐부까지 오염 된 인간의 독성에 수없이 아픔을 겪고 그것의 적폐를 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셨듯이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고 진리를 전해야 하는 대상일 뿐입니다. 내 마음을 열고 끝없이 감사하고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만이 진실하십니다. 예수님만이 완전하십니다. 온 우주에 가장 장엄하고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예수님과의 사랑입니다.

-어떻게(How) 순식간에 사람들이 지상에서 공중으로 사라질 수가 있는가? 어떻게 하여야 들려올라 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하여 사람의 예언과 초자연적인 기적, 검증되지 않는 재림에 관한 잡다한 정보들과 거짓간증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주님만이 산성이요 완벽한 피난처입니다. 주님을 우리의 거처로 삼고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살 때, 그의 날개깃이 신부들을 덮으시며 그 분의 주권과 성령의 권능이 그날에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른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5:23-24)

http://blog.naver.com/yspark5301/220123871695 천국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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