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편
[개 요]
주제-이 시의 머리말은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이다. 다윗이 그 아들의 추적을 피해 충성스러운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리고 밤중에 기드론 시내를 건너 피신한 슬픈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다윗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그분도 역시 피신하셨다. 그분도 자신을 쫓는 무리들을 피해 소수의 연약한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다. 여러 주경가들이 이 시를 “아침의 찬양”이라고 이름붙였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 안에 그분을 신뢰하는 마음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입술로 그분을 향해 노래를 부르자!
구성-이 시는 각각 2절씩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시편의 개요를 잘못 잡으면 시편을 온전히 감상할 수 없다. 이 시의 네 부분은 한 가지 장면에 대한 연속적인 묘사가 아니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한 여러 장면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우리가 설교를 할 때 몇 가지 관련 주제들을 다루게 되는데, 시 3편도 이와 마찬가지다.시편에는 통일성이 있다. 그렇다고 한 가지 주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주제가 서로 연결되어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이 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1-2절원수들로 인해 하나님께 탄식함.
3-4절주님에 대한 신뢰를 선언함.
5-6절잠을 잘 수 있을 만큼 안전함.
7-8절다가오는 전쟁에 대비해서 힘을 모음.
[강 해]
1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2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1절.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가련하고 마음이 찢어지듯 상처받은 아버지는 그의 대적이 많음을 탄식한다. 사무엘하 15:12을 보면 다윗의 군대는 날로 그 수가 감소하는데 “반역하는 일이 커 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고 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황망한 가운데 놀라 도망가는 아버지, 방랑자는 이렇게 외치며 탄식했다. 아! 날이 갈수록 내 고난이 더하니 내 비극의 끝을 볼 수 없노라! 내가 이미 비천한 자처럼 낮아졌거늘······아! 내 원수가 이렇게 많다니! 내 사랑하는 압살롬, 그가 내게 반역을 하다니······. 내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하고 찢어졌거늘, 아! 아히도벨마저! 내 충성스러운 모사까지도 내게 등을 돌리다니. 보라! 나를 따르던 내 장군들과 군인들도 나를 떠났구나.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인생의 고난이란 함께 몰려오는 법, 슬픔은 대가족처럼 우리를 덮치는 것이 아닌가!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여호와여,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습니다. 그들의 군대는 내 군대보다 강합니다! 그 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도 수많은 대적으로 둘러싸였던 것을 기억하자. 우리의 수없이 많은 죄악들, 악마의 군대들, 육체적 고통, 영적 슬픔, 사망과 지옥의 세력들의 연합, 이들이 인자를 대적하며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오! 주님께서 진노 중에 그들을 밟으시고 대적의 무리를 파하셨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주님은 우리를 괴롭히려던 그 무리들을 포로로 잡아 가셨으며, 우리를 대적하려던 자들을 낮추셨다. 용이 예수의 영혼을 향해 침을 쐈을 때 용은 그 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2절.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다윗은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서 원수들이 그를 공격하는 가장 무서운 무기, 그를 가장 절망케 하는 무기에 대해 털어놓았다:“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이전의 친구들, 그러나 이제는 멀어져 간 친구들은 슬픈 듯이 이렇게 말했고, 그를 대적하는 원수들은 기뻐 날뛰며 이 말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그가 온전히 멸망해 버리기를 바랐다. 그의 하나님께서 그를 버렸다는 말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말이었다. 다윗이 이 말을 들었을 때 그의 양심은 그에게 무엇을 생각나게 했을까? 그는 밧세바와 동침하고 하나님께 죄를 지었던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원수들은 그가 밧세바와 범죄한 것을 들추어 내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네 손에 흐르는 피를 보라. 하나님께서 너를 버리고 떠나셨다!” 시므이는 다윗의 면전에서 그를 저주했으니, 이는 뒤에서 자신을 보호해 주는 사람을 믿고 담대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떠나갔다. 다윗은 자신을 비방하는 말들을 듣고서 믿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하늘에서 시작된 모든 시험들, 지옥에서 올라오는 모든 유혹들,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십자가를 한데 묶는다 해도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라는 말만큼 끔찍한 시험은 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얻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없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와 같은 고통을 견디셨음을 기억하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빛이 없는 암흑 가운데 걸어가는 것과 같다. 저주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저주이다. 마치 쓴 쑥과 쓸개즙을 섞어 놓은 것처럼 쓴 고통이다. 아버지께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사람들에게서 멸시를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우리를 위해 이처럼 고통스러운 시험을 겪으신 주님을 사랑하자. 이 시에 나타난 슬픔을 보면서 주님을 생각하며 아름다운 교훈을 얻자. 이 시에서는 다른 시편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윗보다는 다윗의 주님에 더 적합한 내용이 담겨 있다.
“셀라.”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한 뜻은 밝혀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음악의 휴지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음을 더 크고 높게 하라. 더 높은 소리를 내라.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더 고상한 내용이니, 현악기의 소리를 다시 조정하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현악기는 줄이 쉽게 느슨해진다. 그래서 줄이 느슨하게 되면 다시 팽팽하게 해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악기의 줄은 어떠한가? 우리는 마음의 줄을 다시 조이고 높은 소리로 노래해야 하지 않겠는가? “셀라”라는 구절을 대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하겠다.
다윗이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돌렸듯이
오, 주여! 우리도 마음의 줄을 조이고
하나님께 노래하게 하소서!
우리는 “셀라”를 대할 때마다 ‘더 잘 살펴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셀라” 앞에 나오는 말과 뒤에 나오는 말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성경에서 우리에게 잠깐 멈추어 묵상하라고 하거나,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즐겁게 노래하라고 할 때는 거기에 아름다운 교훈이 숨겨 있기 때문이다. “셀라.”
3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4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3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새롭게 고백한다. 히브리어로 “방패”는 단순한 방패가 아니다. 이것은 “원형의 방호물”을 말한다. 그래서 이 원형의 방호물은 사람을 온전히 둘러싸서 위와 아래, 전후, 좌우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해 준다. 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온전한 방패가 아니신가! 그분은 사탄의 불화살도 막아 주시고, 외부에서 오는 시련의 폭풍에서도 감싸 주시고, 내면의 마음에 회오리 바람이 일 때에도 “평강!”을 말씀하시지 않는가?
“나의 영광이시요.” 다윗은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그 자신의 왕궁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제 승리하고 돌아와야 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시고 영광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았다. 아! 현재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신 것은 그분의 은총이 아닌가! 또한 우리가 현재 당하는 고난에도 영광이 있다. 이는 분별하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보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도 고난 가운데서 즐거워하자!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여호와여, 당신은 나를 높이 들어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내 비록 슬픔 가운데 고개 숙이지만, 곧 기쁨과 감사로 내 머리를 들리이다.
3절에는 하나님의 삼중의 자비가 나타나 있다. 그분은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사람을 방어해 주시고, 멸시받는 자에게 영광을, 위로받지 못한 자에게 기쁨을 주신다!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여수룬의 하나님과 같은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4절.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왜 다윗은 “나의 목소리로”라고 했을까? 하나님은 물론 조용히 드리는 기도도 들으신다. 그러나 기도의 사람들은 은밀히 기도하는 중에도 소리 내지 않고 기도하는 것보다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어쩌면 다윗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내 잔혹한 원수들이 나를 둘러싸고 떠들어 대며 소리를 높여 외치지. 나도 내 목소리를 높여야지. 내 외침은 그들보다 높이 오를거야. 그들은 나를 비방하며 시끄럽게 떠들어 대지만, 나의 외침은 하늘 위까지 솟을거야. 그래서 이 모든 난리 소리보다 더 크고 강하게 하늘 보좌에 닿도록 해야지. 하늘 보좌에 앉으신 그분은 나의 외치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 분이지 않는가.” 기도의 응답은 영혼의 음식과도 같다. 이는 감미로운 것이다. 우리가 험난한 세상에 산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우리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분 안에서 즐거워하자.
“셀라.” 다시 한번 “셀라”가 나타난다. 아! 피곤한 성도들이 있는가? 잠깐 쉬고서, 마음의 줄을 가다듬어 노래를 부르자.
5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5절.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다윗은 믿음이 있었기에 누워 잘 수 있었다. 그가 불안했다면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원수들이 오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지켰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 오만한 자의 주제넘는 잠도 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이런 잠에서 구원하소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잠을 잔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을 감겨 주신다. 그러나 다윗은 또한 잠에서 깨어났다. 어떤 사람은 자고 깨어나지 못하는 사망의 잠을 자기도 한다. 그러나 다윗은 수많은 원수들에게 노출되어 있었지만, 하나님의 품안에 머리를 묻고 섭리자의 날개 아래서 기쁘게 잠을 잤고, 다시 안전하게 깨어났다.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단잠을 자고 깨어난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셨음을 알았다. 누군가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글을 들어 보라:“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평강은 남자다운 사람들의 용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 평강은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로 외적인 상황과 무관하게 우리를 지키는 것이며, 주님께서는 이로 인해 영광을 얻으신다.”
6절.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또 하루의 전투를 치르기 위해 말에 안장을 조이면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다:“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그는 원수들의 수나 그들의 지혜를 과소 평가하지 않았다. 원수들은 “천만인”이나 되었다. 그들은 또한 지혜가 있었다. 사냥꾼들이 사냥감을 “둘러치며” 추적하듯이, 원수들이 그를 잔혹하고 교묘하게 추적했다. 그러나 그는 떨지 않았다. 원수들을 바라보며 그는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다. 피할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냥꾼들이 사슴을 둘러싸고 포위하듯 그를 포위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포위망을 뚫으리라. 그가 원수들 중에 갇혀 있을지라도, 그들이 해치지 못할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다윗은 기도 없이 전투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무릎을 꿇고, 여호와 하나님께 큰 소리로 외치며 기도하는 것이다(7절).
7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7절. 그는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실 것에 대한 믿음이 확실했다. 그저 하나님께서 일어나시기만 한다면, 그는 원수들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는 원수들을 맹수에 비교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턱을 부수셨다고 선언했다. 이제 원수들은 다윗을 해할 힘이 없다. “주께서······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뺨을 치셨다. 이제 그들이 입을 놀려 무슨 비방을 한다 할지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빨 빠진 턱주가리로 누구를 해할 수 있겠는가? 오, 성도들이여, 기뻐하라! 우리가 싸우는 대적은 머리가 부서진 용이요, 턱에서 이빨이 빠져 버린 원수들이 아닌가!
8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
8절.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이 구절에는 칼빈의 교리가 농축되어 나타난다. 성경을 살펴보고 정직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 원수들과 늘 다툰다. 원수들은 “구원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 속한 것이야. 사람의 선행에 의한 것은 아니라 해도, 최소한 의지는 있어야 구원을 받는 거야”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구원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다. 여기에는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다. 하나님,바로 그분이 당신의 백성을 부르신다. 그분은 은혜로 부르시고,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고, 당신의 능력으로 그들을 보호하신다. 이것은 사람에게서 생긴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다:“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성도들이여, 이것을 체험으로 알기를 원한다. 우리의 교만한 혈과 육으로는 결코 배우지 못한다.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이 마지막 구절에는 구원의 특수성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구원은 애굽이나 두로나 니느웨에 내리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복은 당신의 택하신 백성, 피를 주고 사신 백성, 영원히 사랑하시는 백성에게 내리는 것이다.
“셀라.” 이제 마음의 머리를 들고 찬양하라. 잠시 멈추어서, 이 가르침을 묵상해 보라:“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하나님의 분별하시는 사랑, 영원하고 무한하고 변치 않는 사랑, 이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항상 경배하자. 내 영혼아, 바쁜 걸음을 멈추고 쉬어라.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해 보라. 주 예수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지 않았는가? 믿음의 눈으로 이것을 바라보았는가? 여러 가지 받은 축복이 많겠으나, 이것이 진정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이 축복을 받았으면 일어나 노래하라.
내 영혼아! 찬양과 경배를 돌리라!
“왜 날 사랑하시나요?”라고 물으라
주님의 은혜가 지극한 것은
내가 구세주의 가족이 되었음이네
할렐루야! 주님께 영원한 감사를 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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