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습
악마는 헬라어로 다아볼루스(diabolus)입니다. 디아볼루스는 '이간질 시키는 자'라는 뜻입니다. 악마는 하나님과 인간, 선과 악, 성과 속을 갈라놓는 세력을 말합니다. 이렇게 이간질 하는 자는 하나님과 인간의 일치를 파괴시킵니다. 물론 인간과 인간을 갈라놓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악마는 인간의 마음 안에 미움과 교만심을 일으켜서 하나님께 대항하게 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악 가운데 헤매게 합니다. 권력의 속성이 악마의 속성과 같다는 것을 신앙의 사람들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얼키고설켜서 사람들을 흉악한 음모술수에 뛰어들게 하는 권력의 무서움을 그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헤롯이 그런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남편을 죽인 사람과 더구나 죽은 남편의 형인 그 사람과 결혼한 헤로디아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진무구해야 할 어린 소녀가 그렇게 무서운 음모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왕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춤으로 매료시킬 수 있었던 가냘픈 몸매를 한 어린 소녀의 입에서 어떻게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막6:25)라는 끔찍한 말이 나올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이 가장 추악한 악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그 모습을 보고 인간이란 얼마나 가변적인 존재인가를 실감합니다. 또 그렇게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권력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헤롯과 다르고 헤로디아와 다르다고 주장할지라도 최소한 우리는 헤로디아의 딸과 같은 존재들임을 이 이야기를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헤롯의 포악성과 헤로디아의 비도덕성을 비판하면서 춤을 추어 남을 즐겁게 할 줄도 알고 힘 있는 자의 명령에 아부하며 진리의 목을 쳐 쟁반에 담아 그 어미에게 갖다 바치는 일을 서슴치 않는 헤로디아의 '딸의 모습이야말로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평온한 우리의 얼굴 이면에는 세례 요한의 목을 담은 쟁반을 손에 받아들 수 있는 잔인성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과 헤로디아만이 아니라 바로 그 어린 소녀의 희생자라는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소름끼치는 내 존재의 실상을 우리는 보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소녀의 양면성이 그대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춤을 추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동시에 춤을 춤으로써 남을 죽음으로 내몰수 있고, 그렇게 스스로 춤의 희생자가 되기도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우리를 은밀하게 쥐고 흔드는 권력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정치 없는 사회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정치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어렵지만 그 일은 팽팽한 줄다리기입니다. 우선 권력의 속성과 자기 자신의 모습을 아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늘 깨어 자신을 돌아보며 경성하면서 동시에 사회를 향한 시선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그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사단은 하나님과 인간을 이간질 하여 인간을 죄에 물들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런 이간질과 미움과 교만을 이겨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이 다시 만나는 곳이며, 하늘과 땅, 성과 속의 이분법적 사고의 벽이 최종적으로 무너지는 곳입니다. 거기에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자기의 욕망을 좇아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이 아니라 마음의 가난을 택함으로써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와 기쁨을 세상에 선사하고 보여주는 참된 하나님 백성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 김기석 목사 -자료출처/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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