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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공간**/스펄전 묵상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 것들을 택하사 - 스펄전 묵상

by With Lord 2015. 12. 7.

12월7일

아침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 것들을 택하사 - 고린도전서 1:28


  만일 당신이 용감하다면, 달빛을 따라 거리를 걸어보십시오. 그러면 거기서 죄인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세차고, 도둑이 문을 따고 있을 때, 거기서도 당신은 죄인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저기 감옥으로 가보십시오. 감방을 따라 시커먼 눈썹을 하고 있는 죄수들을 눈여겨보십시오. 당신은 그들을 밤에 만나고 싶지 않을 텐데, 거기에도 죄인들이 있습니다. 소년원에 가보면, 과격한 소년 범죄자들을 만나게 될 텐데, 거기서도 당신은 죄인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다를 건너 사람이 악취를 풍기는 사람의 육체의 뼈를 갉아먹고 있는 식인종들을 보십시오. 거기에도 죄인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한번 가보십시오. 죄인들을 찾기 위해 땅을 샅샅이 살피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모든 도시, 읍과 촌락, 그리고 마을의 뒷골목과 거리 등지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바로 이런 자들 때문입니다.

  만일 여자에게서 태어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아주 특별히 못된 사람을 데리고 온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그에게 소망을 가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선택적 사랑은 가장 악한 사람들을 뽑아 가장 훌륭한 사람들로 만들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시냇가의 조약돌의 왕의 면류관에 박힐 보석들로 만들었습니다. 그분은 아무 쓸모없는 돌을 순금으로 바꾸셨습니다. 구속의 사랑은 인간들 중 가장 악한 자들을 뽑아 구주의 사랑의 보상이 되도록 성별시켰습니다. 효력 있는 은혜는 가장 불결한 자들을 불러 은혜의 식탁에 앉게 하고, 그러기에 우리는 절대로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여, 예수님이 눈물어린 눈으로 바라보시는 그 사랑으로, 피 흘리시는 상처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사랑으로, 신실한 그 사랑, 강력한 그 사랑, 순전하고 사심없고 변함없는 그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시는 구주의 마음과 사랑으로, 그것이 마치 당신에게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거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을 그분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그분은 영원한 영광 중에 계신 그의 아버지 우편으로 당신을 인도할 것입니다.


저녁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 고린도전서 9:22


  바울의 큰 목표는 단지 사람들을 가르치고 진보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것을 이루지 못할 때 그는 실망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거듭나 죄 사함받고, 의롭게 되고, 진실로 구원받기를 바랐습니다. 우리의 신앙적 수고는 혹시 이보다 저급한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심판 날에 우리의 가르침을 받고 교훈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평생 저급한 목표를 추구하고,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면, 우리의 옷자락은 피로 물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인간 본성의 파멸적 상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교육하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구원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좀 더 잘사는 삶이 아니라 장차 임할 진노로부터 구원받는 삶에 관해 말했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경고하고 강권하면서 복음전파에 열정을 다 쏟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절박했고, 그의 수고는 끊임이 없었습니다.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이 그의 절실한 소망이요, 야심이며, 소명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어, 그들의 구원을 위해 경주했고, 복음을 전하지 못했을 때에는 슬픈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하기 싫은 일에도 자신의 뜻을 복종시켰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면, 형식이나 체면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그에게는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을 시킨다면, 그는 만족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수고의 면류관이요, 그의 모든 노력과 자기부인에 대한 유일하고도 충분한 보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당신과 나는 영혼들을 이 고상한 목표로 이끌기 위해 살고 있나요? 우리는 바울과 똑같은 큰 목표를 갖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들을 위해 살 수 없단 말입니까? 우리의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못한다면, 무엇으로 우리가 그분에 대한 사람을 보여 주겠습니까? 오 주님이 사람드릐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열심을 내도록 우리에게 역사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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