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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공간**/스펄전 묵상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 스펄전 묵상

by With Lord 2016. 3. 24.

3월24일

아침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 히브리서 5:7


  이 경건하심은 마귀가 주님께 하나님께 완전히 버리셨다고 속삭일 때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이것보다 더 혹독한 시험이 있을 수 있지만, 확실히 완전히 버림받는 것은 가장 큰 시험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탄은 다음과 같이 속삭였습니다: "보라, 어디에도 네 친구는 없다. 네 아버지도 너에 대한 사랑의 문을 닫아버렸다. 네 아버지 궁에 있는 천사조차 너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을 것이다. 하늘나라는 너에게 너무 멀리 있다 너는 홀로 버려져 있다. 네가 달콤한 대화를 나누던 친구들을 보라. 그들이 무슨 소용이 있니? 마리아의 아들아, 네 동생 야고보를 보아라. 네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보아라. 대담한 너의 사도 베드로를 보아라. 네가 고난당할 때 그 겁쟁이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봐라! 너는 하늘과 땅 어디에도 친구가 없구나. 지옥도 너를 반대한다. 나는 내 소유인 지옥이 너를 괴롭히도록 격동시켰다. 나는 사방에 내 사자들을 보내 오늘 밤 너를 혼내주도록 모든 어둠의 세력들을 호출했다. 우리는 한 촉의 화살도 남겨놓지 않을 것이며, 너를 이기기 위해 우리의 모든 힘을 다 동원할 것이다. 그런데도 넌 혼자다. 어떻게 하겠니?" 아마 이것이 그때 주님이 받은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최소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때 천사가 나타나 그분을 도와주심으로써 두려움을 없애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습니다. 그분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늘이 그분과 함께했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그의 제자들에게 세 번에 걸쳐 오신 이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트(Hart)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마치 사라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처럼,

      그분은 세 번이나 왔다 가셨다."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버린 것이 정말 사실인지 스스로 확인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이 모두 잠이 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이 배반이 아니라 슬픔 때문에, 참으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잠이 들었다고 생각함으로써 약간이나마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쨌든 그분은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깊은 고뇌 속에 있을 때 들으심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여, 당신도 똑같이 들으심을 얻을 것입니다.


저녁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 누가복음 10:21


  우리 구주는 "고뇌의 사람"이었지만, 그분의 가장 깊은 영혼 속에는 순전한 천국의 기쁨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물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사려 깊은 사람은 누구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보다 더 깊고, 더 순전하고, 항상 지속적인 평화를 누렸던 사람은 결코 없었습니다.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시 45:7).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자비는 그 본질상 가장 깊은 즐거움을 그분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자비는 곧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이 특별하게 표현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 감사하나이다"(눅 10:21).

  그리스도는 비록 그분에게는 밤이었지만, 자신의 노래를 갖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얼굴은 상했고, 그분의 안색은 세속적 행복의 광채를 잃어버렸지만, 때때로 그분은 자신의 사역에 대한 상급을 생각하면서 말할 수 없는 만족에서 오는 찬란한 광휘로 그 얼굴이 빛났고, 그의 백성들 가운데 계실 때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이 점에서 주 예수님은 지상에 존재하는 그의 교회의 복된 표상이 되십니다.

  지금 교회는 주님과 같은 심정을 갖고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무수한 환난이 따르겠지만 면류관을 향해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교회의 의무요,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소외받는 것이 교회의 운명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자녀들 외에는 누구도 결코 마실 수 없는 깊은 기쁨의 샘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보존받고 양육받는 우리의 예루살렘에는 포도주와 기름과 곡식이 가득 채워진 창고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 구주처럼 우리에게도 때로는 깊은 즐거움의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시 46:4)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비록 나그네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 왕을 기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말할 수 없이 즐거워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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