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장 24절)
위 말씀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가 실상 주님을 믿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따라 천국에 계신 사랑의 주님을 만나려 함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가장 우선시되는 조건이 자기 부인일 것입니다.
자기 부인 없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왜 불가능합니까...
이는 마치, 홍해와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 주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에
도착하겠다는 것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자기 부인 없이 구원받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사람의 육적 기준에 편리하도록 이런저런 교리를 만들어서
십자가(자기 부인, 회개)를 건너뛰고.. 천국에 들어가려 발버둥 쳐봐도
그건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영적 기준이 아닌, 사람 육적 기준의 이론(교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교리가 백해무익 위험한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곧, 날마다 죽는 것을 말합니다.
공중권세의 마귀와 함께 하는 이 땅에서는... 바울 같은 믿음의 사람도
내 안에서 육의 법과 성령의 법이 매일 싸운다고 한탄합니다.
하여... 그는 매일 죽는다 고백합니다. 그것도 그냥 하는 고백이 아니라,
'단언한다' 하며 매일 죽는다고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장 31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도대체 그가 무엇이 부족하고 두렵기에 매일 죽는다고 고백했을까요...
실질적으로 이 땅은 천국이 아닙니다.
공중권세의 마귀와 동거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시간과 공간입니다.
하여, 마귀는 어떡하든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려 거듭난 성도조차
끝없이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려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거듭나 새생명을 얻은 자)들도 미혹하리라"
(마태복음 24장 24절)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주님 곁에 가는 그날까지 바울처럼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가난하고 애통한 심령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가난하고 애통한 심령은 주님께서 주신, 은혜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우리는 매일 매일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 없이 마귀가 공중권세 잡은 이 땅에서 산다는 건
갑주와 무기 없이 전쟁터에 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이 땅에 사는 무수한 사람들은...
사탄의 공중권세가 뭔지도 모르고... 나아갈 바도 모르면서... 마귀에게
잠식되어 그게 상식적 삶인줄 알고 멸망의 종착역을 향해 걸어갑니다.
그뿐만 아니라...
믿는다는 이들도, 그런 영적 지식을 알고는 있으면서
자길 부인하기 싫어하여, 죽으려 하지 않기에 결국, 그 끝이 같습니다.
천국은 매일 죽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죄 사함 보혈 피는...
죽으려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지 안 죽으려는 자에게는 의미 없습니다.
굳이 죽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무슨 새로운 생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몸이 아파야 의사나 약이 필요하고, 배가 고파야 음식이 필요하듯,
죽은 사람에게만 새 생명이 필요한 겁니다.
내가 죽는다는 것은... 내 개인의 영적인 목적 때문만이 아니라,
주어진 공간에서, 내 형제 자매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기에 내 모든 게
죽지 않으면...
서로 아웅다웅, 니탓 내탓등... 육의 속성을 발산하는 부대낌으로 인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영의 공동체는... 죽은 자들의 공동체이지,
죽기를 거부하는 자들의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아(육의 속성)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나는 물론, 내 형제마저
멸망의 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매미란 곤충도...
유충의 껍데기가 쫙 깨지며 쪼개지야
껍데기 속의 매미가 나와서.. 새 생명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매미가 그 껍데기 쪼개길 거부하여 그대로 있다면, 새 생명으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다른 곤충들과 세균의 먹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죽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내가 죽으려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마귀의 도구로 이용만 당하다가 허무한 인생으로 막을 내릴 것입니다.
그것은 곧 지옥을 의미합니다.
내가 죽길 단호히 결단해야 내 안에 주님이 오십니다... 그것이 껍질을
깨는 것이고, 주님께 문을 열어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20절)
그래야 주님이 들어오셔서...
죄를 쫓아내고(회개 시켜)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 생명의 탄생을 두고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죽었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죽었다는 건.. 옛사람의 습성으로 주님과 형제를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침내 새로 얻은 새 생명의 형상으로 주님과 형제를 대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죽고 새 생명을 입은 성도를,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 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로새서 3장 8절-10절)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로새서 3장 12절~14절)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반드시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이것은 일회성이 아니라, 마귀가 공중권세 잡은 이 땅에서... 평생동안
자기를 부인하며 죽어야 합니다.
왜!! 바울 사도가 매일 자기를 쳐서 나는 죽노라 했는지 기억하십시오.
예전의 지식, 세상적 바램, 교리, 나만의 경험, 우월감, 육적인 감정들...
이런 것들 모두가 점점 죽고 없어져 가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더욱 죽어가야 주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도록 역사 됩니다.
내 안의 악취 나는 옛사람의 썩은 피가 점점 더 배출되고, 그 빈곳에
생명의 신선한 보혈 피로 수혈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죽으며..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십시오.
입술과 이론으로만... 나는 주님을 믿었으니까 '죽었다' 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그 마음의 속을 훤히 다 감찰하시기에.. 절대 속지 않으십니다.
진정으로 죽고자 하는 것이
주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과정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이와 같다면...
우리가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주님께서 이끄시며 역사하실 것입니다.
천국은 그렇게 침노하는 것이며, 그런 분들의 것입니다.
그리고, 위의 글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이모저모로 해당되겠지만,
사실... 너무 부족한, 저를 위한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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