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보공간**/스펄전 묵상

내가 …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 스펄전 묵상

by With Lord 2016. 2. 24.

2월24일

아침

내가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 에스겔서 34:26


  본문 ― "내가 그들에게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리라" ― 은 주권적 은혜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권자 곧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 외에 "내가 소낙비를 주리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없기 때문입니다. 구름에 대고 비를 내리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누가 땅 위에 비를 내리십니까? 누가 푸른 초장에 소낙비를 뿌리십니까? 곧 여호와가 아닙니까? 따라서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필연적인 은혜입니다. 소낙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땅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흙을 파 그곳에 씨를 뿌릴 수 있지만, 비가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하나님이 풍족한 소낙비를 내리고 구원을 베푸시지 않는 한, 당신은 헛되이 수고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은 풍족한 은혜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소낙비를 내리리라." 그것은 "내가 빗방울을 내리리라"가 아니라 "소낙비를 내리리라"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축복을 베푸신다면 그분은 보통 그것을 받기에 충분한 방이 없을 정도로 크게 주십니다. 풍족한 은혜! 아! 우리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풍족한 은혜를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열심 있게 하고, 한평생 보존 받고 결국엔 천국에 들어가는 풍족한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우리는 흠뻑 적시는 은혜의 소낙비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것은 때에 합당한 은혜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때를 따라소낙비를 내리리라." 오늘 아침 당신의 때는 어떻습니까? 가뭄의 때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소낙비가 내릴 때입니다. 그것이 극히 무거운 먹구름의 때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소낙비가 내릴 때입니다.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신 33:25). 그리고 여기에는 다양한 축복이 들어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된 소낙비(showers of blessing)를 내리리라." 여기서 소낙비란 말은 복수형입니다. 하나님은 온갖 종류의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금목걸이의 고리들처럼 함께 주어집니다. 만일 그분이 회심하는 은혜를 주신다면, 동시에 위로의 은혜도 베푸실 것입니다. 그분은 "복된 소낙비"를 내리실 것입니다. 오 시들은 나무여, 지금 위를 바라보십시오. 그대의 잎사귀와 꽃망울을 펴고 하늘에서 쏟아질 소낙비를 기다리십시오.


저녁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우리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 스가랴서 1:12,13


  고민스런 질문에 비해 얼마나 기분 좋은 답변일까요! 오늘 저녁 우리는 그것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오 시온이여, 당신을 위해 창고에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산고(産苦)의 때는 곧 끝나고, 당신의 자녀들은 번성하고, 당신의 포로상태도 마감될 것입니다. 잠시 동안 주어지는 채찍을 참으십시오. 어둠 아래서도 하나님을 계속 신뢰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이 당신에게 불타오를 테니까요. 하나님은 인간의 상상력으로 다 헤아리지 못할 깊은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무한하신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백성들은 큰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선한 말씀과 위로하는 말씀"을 주시기 때문에 결코 망할 수 없습니다.

  선지자가 계속 이어서 전하는 말씀은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가 될까요: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슥 1:14). 주님은 교회가 다른 사람들에게 유린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실 정도로 크게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교회가 그렇게 되어 크게 또는 무겁게 고난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분은 그의 원수들이 교회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그분은 그들이 교회의 고통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그들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교회를 버리신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분의 마음은 교회를 향해 다정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징계하기 위해 채찍을 사용하실 때마다 항상 그 후에는, 마치 그의 백성들을 괴롭게 한 그것이 보기 싫은 것처럼 그것을 부러뜨리시는 것을 역사는 증거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시 103:13). 하나님은 우리를 치신다는 이유로 우리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채찍은 사랑이 없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만일 이것이 그분의 교회에 전체적으로 적용된다면, 그것은 당연히 교회의 개별적 지체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당신은 주님이 당신을 간과하실까봐 걱정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의 별을 세시고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부르시는 분이 자신의 자녀들을 잊어버릴 위험성은 전혀 없습니다. 그분은 마치 당신이 지금까지 지으신 유일한 피조물인 것처럼, 또는 지금까지 사랑한 유일한 성도인 것처럼, 완벽하게 당신의 형편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나아가 평화를 누리십시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