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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공간**/스펄전 묵상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 스펄전 묵상

by With Lord 2016. 6. 14.

6월14일                                                                                                                                                                                                                                  

아침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 시편 37:4


  본문의 가르침은 활력적인 경건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놀라운 말씀이 되겠지만, 신실한 신다에게는 단지 이미 확증된 진리를 제차 확인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신자의 삶은 여기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는 행복과 기쁨으로 넘치는 참된 종교라는 위대한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불신자들과 말로만 믿는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즐거운 일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은 단순히 봉사, 의무 또는 필요지, 절대로 즐거움이나 기쁨이 못됩니다. 만일 그들이 기독교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거기서 뭔가 이득을 얻게 때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 기쁨이 있다는 사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하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 습관에 따르면 "거룩"과 "기쁨"이라는 단어만큼 동떨어진 단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신자들은 기쁨과 믿음이, 지옥문도 그 둘을 갈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법은 즐거움을 주고, 그분의 모든 길은 화평의 길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런 기쁨, 이런 풍성한 즐거움, 이런 넘치는 축복을 그들의 주님 안에서 발견한 성도들은 그분을 절대로 습관적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온 세상이 그분의 이름을 악랄하게 비방할 때에도 그분을 따라갑니다. 우리는 어떤 강요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속박도 아니고, 우리의 고백은 굴레가 아닙니다. 우리는 거룩에 강제로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 의무 때문에 억지로 나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경건은 우리의 기쁨이고,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행복이요, 우리의 의무는 우리의 즐거움입니다.

  기쁨과 참 종교는 뿌리와 꽃처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진리와 확실성 만큼 불가분리적입니다. 그것들은 사실상, 금판에 나란히 박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두 개의 보석과 같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맛보면,

    천국에 있는 성도들처럼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우리 안에서 신묘하게 흘러넘치고,

    천국은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저녁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 다니엘서 9:8


  죄와 그것의 가증함,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형벌에 대한 깊은 의식과 분명한 시야는 보좌 앞에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죄를 범해왔습니다. 슬프도다!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우리가 아무리 은혜를 크게 받았어도 여전히 감사를 몰랐습니다. 그 누구보다 능력을 많이 받았지만,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랫동안 영적 전투를 하면서 살아왔지만, 과거를 돌아다볼 때 얼굴을 붉히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거듭나기 전 살아온 날들은 이미 용서받았고, 그래서 잊어버려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그 전처럼 죄를 많이 범하지는 않지만, 그리도 우리는 빛 - 실제로 우리 마음을 관통하는 빛 -  과 사랑 - 우리가 참으로 즐거워했던 사람 - 에 반하여 범죄했습니다. 오, 용서받은 영혼이 끔찍한 죄여! 용서받지 못한 죄인들은,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고 예수님의 품에 그 머리를 기대고 있는 하나님의 택자들과 비교해 보면 말할 것도 없이 더 많은 죄를 함부로 범합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죄를 비판하겠지만, 나는 당신이 그의 회개를 보고, 그의 뼈마디들의 신음소리를 듣기를 기도합니다. 그 소리들은 그 괴로운 자백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뚝뚝 땅에 떨어지는 그의 눈물방울들을 보십시오. 그의 수금의 슬픈 음악 소리에는 그의 깊은 탄식이 동반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을 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의 영을 구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베드로를 보십시오! 우리는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사실에 대해 자주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심히 통곡하니라"(눅 22:62)고 기록되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우리 주님을 부인할 때 눈물로 슬퍼했습니까? 슬프도다! 하나님이 주권적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셔서 구원해 주지 않았더라면, 회심 전후에 걸쳐 저질러진 이 같은 죄들로 인해 우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지고 말 것입니다. 내 영혼아, 그대의 본성의 죄악성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끓고 그분을 경배하라! 그대를 구원하신 은혜를, 그대를 살려주신 자비를, 그대를 용서해 주신 사랑을 찬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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