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2일
아침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 다니엘서 5:27
우리 자신을 자주 하나님의 말씀의 저울에 달아보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 몇 편만 읽어봐도 그것이 경건의 연습이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각 구절을 묵상할 때마다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십시오: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다윗이 느낀 것처럼 심정을 죄로 말미암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내 영혼도 아둘람 굴이나 엔게디 요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했던 다윗처럼 고난의 때에 참된 믿음으로 충만했던가? 나는 구원의 잔을 들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가?
이번에는 그리스도의 생애로 시선을 돌려보십시오. 읽을 때마다 당신의 삶이 그분과 얼마나 닮았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당신 자신이 그분이 끊임없이 가르치고 보여 주셨던 온유함, 겸손함, 사랑의 정신을 소유하고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그 다음에는 서신서를 읽어보십시오. 거기서도 사도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는 부분에서 당신도 그와 같이 할 수 있는지 헤아려 보십시오. 당신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외쳤던 것처럼 해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도 그렇게 비참한 상태에 빠져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사도 바울의 헌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습까? 그와 함께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고 말할 수 있었습니까?
만일 우리가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는 시금석으로 삼고 읽는다면, 읽다 말고 자주 다음과 같이 말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주여, 저는 여기까지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음을 느낍니다. 오 지금 저를 이곳으로 인도하소서! 제가 지금 읽고 있는 내용처럼, 참된 회개를 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고 저에게 참된 믿음을 주소서. 더 뜨거운 열심을 주소서. 더 열렬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하소서. 온유의 은혜를 허락하소서.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게 하소서. 성소의 저울에 달아볼 때, 심판의 저울대에 모자라지 않도록, 더 이상 '부족함이 발견되지' 않게 하소서." "판단을 받지 않도록 스스로를 판단하라."
저녁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 디모데후서1:9
사도 바울은 완료시제를 사용하여 "우리를 구원하사"(Who hath saved us)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구원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 있다가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는 사람들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구원은 죽어가는 자리에서 누리거나 장래 하늘나라에서 갖게 되는 축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얻었고, 받았고, 이루어졌고, 누리고 있는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완전하게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구원받을 자로 작정하셨고, 그 작정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또한 자기를 위해 지불된 값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죽으실 때 우리 구주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신자는 그의 언약의 머리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담 안에서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 완전한 구원은 거룩한 부르심을 수반합니다. 구주께서 십자가로 구원한 사람들은 때가 되면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룩의 길을 가도록 유효하게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들은 죄를 떠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들은 어떤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 본성의 소욕 때문에 거룩을 선택합니다. 새 본성은 과게 옛 본성이 자연스럽게 죄를 즐거워하도록 마음을 이끌었던 것처럼 거룩을 즐거워하도록 이끕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거룩하기 때문에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도록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솜씨에 의해 그들 속에 심겨진 미덕입니다. 우리가 신자의 마음속에서 발견하는 미덕들은 속죄 자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이것은 정말 지극하신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의 결과입니다. 구원은 주님이 그 창시자이기 때문에 은혜에 속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인을 구원하도록 하나님을 움직이도록 만든 것이 은혜 말고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 구원은 주님이 우리의 의를 영원히 배제시키는 방법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은혜에 속한 것입니다. 이것 곧 현재적 구원은 신자의 특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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