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쌀, 버려지는 재료, 버려지는 인간
눅 13:23-24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쌀밥을 만들 때는 먼저 쌀을 물에 씻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쌀알이 있습니다.
조심해서 씻고, 물을 따라버릴 때 주의를 해도
물 위에 뜨는 쌀알이나 상태가 좋지 않은 쌀알은 버려지게 됩니다.
식사준비를 할 때 밥공기에 밥을 옮겨 담다가 바닥에 흘려서 버리게 되는 밥알이나,
식사를 할 때에도 먹다가 흘리게 되어 버리는 밥알이 있습니다.
밥공기에 붙은 밥을 싹싹 긁어 먹지 않거나, 밥을 남기게 되면
남은 밥은 버려져 결국 음식물쓰레기가 됩니다.
쌀이 수확되어 쌀 포대에 담겼을 때는 전부 다 사용될 것 같이 느껴지고,
사용될 쌀알과 버려질 쌀알이 따로 구분이 안 되지만
쌀이 소비되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 반드시 버려지는 쌀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한국인의 주식인 쌀로 예를 들어봤지만
모든 음식에서 버려지는 부분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음식뿐 아니라 옷을 만들 때도, 집을 만들 때도
사용되지 않고 의미 없이 버려지거나, 남아서 못쓰게 되는 재료가 꼭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존재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반드시 버려지는 부분이 있는 것을 보면
마치 어떤 규칙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개미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도 있었습니다.
개미 공동체를 가만히 관찰해보면 70%의 개미는 열심히 일을 하고,
30%의 개미는 게으르게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하지 않는 30%의 개미를 무리에서 분리한 후
일을 열심히 하는 70%의 개미만 따로 모아서 관찰해보면
그 70% 중의 30%가 일하지 않고 게으르게 지낸다고 합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개미들만 따로 모아놔도
이렇게 일정 비율로 게으른 개미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봐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우주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물론 우리는 상상까지 밖에 못하기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며 여행하실 때에
어떤 사람에게 질문을 받으시게 됩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오늘날 교회에 다니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은 당연히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생각은 전혀 없고,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지독히도 싫어하고,
수군수군 거리고 험담하면서 서로 미워하며 질투하기에 바쁘고,
고난이 왔을 때는 불평과 원망을 하며 도망치기에 바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 하는 고민은 전혀 하지 않는
영적으로 나태한 모습으로 그저 매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구매할까, 무엇을 즐길까 하는 생각만 가득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안락함을 더 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도 사랑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가장 사랑하는 모습으로
불순종과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어떤 교회의 담임목사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천국에 들어갈 줄 믿습니다!
아멘하세요! 이것을 안 믿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입으로 시인했으면 믿으세요.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라는 거짓말로 성도들을 안심시키면서
헌금봉투를 돌리며 교회 재정을 충당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아멘!”을 외치며 거짓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안심하고 있습니다.
마치 곧 추락할 비행기 안에서 거짓말에 속아 흥청망청 축배를 드는 모습입니다.
우리 각 사람의 미래(천국과 지옥)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누가 천국에 들어가고, 누가 지옥에 들어갈지를
이미 알고 계시는 것뿐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선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았을 자’에 대한 언급을 하셨지만
미래를 이미 다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말씀에 그런 말씀을 하셨을 뿐
그 사람이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운명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는 평소에도 다른 제자들에게 ‘도둑’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물질에 대한 탐욕을 가졌던 자이며, 위선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유다의 범죄가 자신의 욕심을 따라 행한 선택이었을 뿐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운명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게 되는 원리에 따라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의 ‘선데이 크리스찬들’
(주일에만 교인인척 하다가 결국 지옥에 떨어지게 될 자들)을 보시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런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고 전부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들어가고자 하나 못 들어가는 자가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들어가고자 부단히 노력을 해도 못 들어가는 자가 많을 텐데
돈과 세상 쾌락에 취해서,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죄를 범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면서
들어가려는 노력도 안하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오늘날 좁은 문, 협착한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예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습니다.
말로는 “저도 이제 정신차려야죠...”, “지금은 이렇지만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할 것 같습니다.”, “연약한 인간인지라...”라고 하지만
일이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저녁과 주말엔 쉬어줘야 한다는 핑계로,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나중에, 나중에 하며 차일피일 미루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먹고 싶은 건 먹으러 다니고,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 데에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여가나 쾌락을 즐기는 시간은 꼭 챙기는 모습을 보입니다.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알고 있으면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지
꾸물대고 있다간 영원히 후회하는 일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일이 아무리 바빠도 영원한 생명이 걸려있는 문제가 최우선 순위입니다.
이런 내용을 기분 나쁘게 듣는 분들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이 내용에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현재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고 있는 분들은
기분 나쁘실 일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전달만 하는
스피커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기분 나쁘실 일도 없고,
오히려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을 때
제게 찾아와 “그 때 쓴 소리를 듣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시게 될 겁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립니다.”
눅 17:34-35
(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곧 데려감을 얻을 사람들은
아마도 극소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데려감을 얻는 분들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려둠을 당하게 될 것이기에
많은 자들이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옥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가득하겠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사람이 무척 적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무언가를 소비할 때에 버려지는 부분이 반드시 있는 것처럼
사람 중에도 버려지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구원 받는 부분보다 버려지는 부분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버려졌다’는 말의 의미는 아무 이유 없이 부당하게 버림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그 결과에 따라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하게 되어
결국 버림을 당하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각자 자기의 선택에 따라 마땅히, 공의 아래서 버려지는 것이기에
누군가를 원망할 수도, 불평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기회를 주시며, 뿌리치고 등 돌려도 계속해서 품에 안아주시며,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사랑이 많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히 돌아가는 귀한 생명의 일들이
이 설교를 통해서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부디 버려지는 부분이 되지 마십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동안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가지 말고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대신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십시다.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서 먹고 싶은 것 먹고, 갖고 싶은 것 갖고,
집 사고, 차 사면서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똑같이 사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다가
곧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에 크게 후회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고전 10:31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반면 예수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깨달아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늘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해주신 일들을 그대로 이어 받아서 따라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역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살아가기에
그 삶의 목표가 전혀 다릅니다.
목표가 다르면 하는 말과 행동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에
사람이 맺는 열매들을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지,
마귀에게 속한 사람인지 어렵지 않게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자신이 100% 천국에 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때때로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어떤 일에 분노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며,
세상의 염려와 근심으로 마음이 어두워지고,
영적으로 침체되거나, 매너리즘에 빠져 나태해지고,
이미 버렸던 세상적인 가치관을 다시 마음에 들이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저와 여러분들이 회개하십시다. 돌이키십시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다.“며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저 스스로에게 권하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거룩하고, 정결하며, 점과 흠이 전혀 없고 깨끗하며,
365일, 24시간 언제나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회개하십시오.
그런 식으로 살지 마십시오.” 라고 말하거나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묘사하는 자들은
매우 교만한 자이며, 거짓을 말하는 자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뒤에 숨어서 하는 일이 다른 자,
예수님의 사랑과 겸손을 닮지 않은 자, 악한 열매들을 맺는 자,
바로 그가 미혹하고, 속이려는 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두고, 분별해야 합니다.
롬 3:10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전 7:20
(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시 143:2
(2)...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성경말씀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배들처럼
저와 여러분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죄인들이며, 온전하지 못한 존재이고,
늘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들이며,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교만함에 빠지지 않았는지 반드시 점검해봐야 합니다.
(교만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가 없는 무서운 죄이므로
교만에 물들어버린 자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기가 매우 어렵기에
스스로를 점검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해관계가 없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특별한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마 18:3-4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교만함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며, 나의 위치를 알면
그 사람은 지극히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 6:8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정말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매일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면서 늘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머리를 조아리십시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예수님의 겸손을 닮아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줄 아는
진실로 겸손한 사람들만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제 평생의 기도제목은 진리의성령교회에 속한 구성원 모두가
100%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서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나
늘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끝까지 미혹되지 않고
생명의 길을 걸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며,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나누십시다.
그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이 땅에서부터 이미 천국의 구성원의 모습으로
단 한 사람도 버려지지 않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리며,
서로 뜨겁게 포옹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십시다.
물론 그 과정 중에는 남은 시간동안 이 땅에서 우리가 반드시 경험해야만 하는 부분,
통과해야만 하는 부분, 체득하며 성장해야 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매우 힘들어 지치고, 인내가 꼭 필요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곧 다시 와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할 수 있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매일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는 것이
원래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올바른 정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스스로의 현재 모습을 솔직하게 되돌아보고, 나태함과 모든 악독을 버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다.
가장 큰 사랑을 듬뿍 받은 자들답게 모든 것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남은 시간을 귀하게 보내십시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여
버려지고 낙오되는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자’가 되지 말고,
세상 끝날까지 마음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로서 확정되어 전혀 흔들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사랑과 겸손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살전 4:16-18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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