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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공간**/스펄전 묵상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 스펄전 묵상

by With Lord 2016. 3. 8.

3월8일

아침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 사도행전 14:22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 나름대로 시련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시련당하지 않는 백성들이 되는 것은 그의 백성들을 택하실 때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고난의 풀무에서 택함 받았지 결코 세속적 평안과 육체의 기쁨을 누리도록 택함 받지 않았습니다. 질병과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자유가 그들에게 약속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님이 누릴 축복의 목록을 작성하셨을 때, 그분은 그들이 불가피하게 받아야 할 것들 가운데 징계도 포함시켰습니다. 시련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의 한 부분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산 속에 우리를 위해 미리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별들이 그분의 손에 의해 조성되고, 그 궤도가 그분에 의해 정해진 것만큼 확실하게 시련 역시 우리에게 할당되었습니다. 그분은 시련의 시기와 장소, 또 그 강도와 우리에게 주어질 결과 등을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사람들은 환난을 피해 가리라는 기대를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것을 기대한다면,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선진들중에 아무도 그것을 피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욥의 인내를 주목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을 회고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시련을 당했을 때 믿음으로 그것을 이겨냄으로써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족장들, 선지자들, 사도들 그리고 순교자들의 일생을 유의해서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이 은혜의 그릇으로 삼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고난의 불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왕의 영예를 위한 그릇들이 왕의 각인(刻印)에 의해 구별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그릇들은 고난의 십자가로 각인되는 것 역시 태초부터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이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의 당연한 길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주님이 그들보다 앞서 그 길을 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고무시키는 그분의 인도와 사랑, 그들을 도우시는 그분의 은혜, 그리고 그들에게 인내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그분의 모범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천국"에 당도하면 그들이 그곳에 들어오기까지 거쳐야 했던 "무수한 환난"을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을 것입니다.


저녁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슬픔의 아들)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이라 불렀더라 - 창세기 35:18


  모든 일에는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공존합니다. 라헬은 자신의 산고(産苦)와 죽음에 대한 슬픔에 압도되어 마음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내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탄생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시련을 당해 슬퍼하는 순간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신실하심 속에서 승리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삼손의 사자는 꿀을 제공했는데, 우리의 대적들고, 올바르게 다루어지기만 한다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폭풍우가 이는 바다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그 물고기를 먹도록 합니다. 거친 야생나무가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사나운 바람은 유행병을 일소합니다. 차가운 서리는 흙을 부드럽게 해줍니다. 먹구름은 밝은 물방울을 뿌려줍니다. 검은 땅에서 화려한 꽃들이 자랍니다. 선의 금맥은 악의 광산에서 발견되는 법입니다. 슬픈 마음을 가진 사람은 시련을 가장 비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세상에 딱 하나의 늪이 있다면, 그들은 곧 그들의 목을 그 늪에 들이밀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황야에 딱 한 마리의 사자가 있다면, 그들을 그것이 포효하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처럼 어리석은 바보의 면모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야곱처럼 "다 나를 해롭게 한다"(창 42:36)고 부르짖기 십상입니다. 믿음의 길은 주님께 우리의 모든 염려를 다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악한 불행 속에서 선한 결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용사들처럼 믿음은 깨진 항아리에도 초조하지 않고, 횃불이 더 밝게 드러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믿음은 고난이라는 거친 조개껍질로부터 영광의 희귀한 진주를 추출해내고, 고통의 깊은 바다 동굴로부터 경험의 진귀한 산호를 채취합니다. 번영의 물결이 빠져나갈 때 믿음은 모래 속에 감추어져 있던 보물을 발견하고, 즐거움의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갈 때 믿음은 소망의 망원경으로 별처럼 빛나는 천국의 약속들을 바라봅니다. 죽음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 믿음은 무덤으로부터 일어나는 부활의 빛을 주목하고, 그래서 우리의 죽어가는 빼노니(슬픔의 아들)는 살아있는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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