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4장 17절)
주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도
기본적으로 자기 죄가 무엇인지... 양심을 통해, 다 느낄 수는 있습니다.
하여, 나름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왜 그랬을까' 반성합니다.
그리고 잠시동안 근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런 경우를 회개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반드시 자기의 모든 걸 포기(부인)하려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모르는 이방인의 심리 속에는 자기를 부인하는 영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인들이 난 죽을 죄인이라고 입술로는 고백하면서
마음을 찢는 진정한 회개도, 단호한 자기 부인도 없었다면...
그것은... 이방인의 그것과 똑같습니다.
뒤집어 살펴보면...
자신의 죄를 심장으로 바라본 적 없기에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마음을 찢을만한 애통한 회개와 자기를 부인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형식적, 이론적, 머릿속으로만 그런가보다 고백하며
양심의 가책만 조금 느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심령 깊숙이 바라보며 고백하는 사람은
너무나 애통해하며 마음을 찢는 눈물의 회개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더는 죄에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단호한 결단의 마음으로
자기 부인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복음적으로 진정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영성입니다.
그렇다면 내 죄는 어떤 경로를 통해 깨닫게 될까요...
복음을 통해서입니다.
복음을 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지, 성경에 기록된 게 무엇인지 그걸 알고자 함이 아닙니다.
복음 내용을 줄줄 꿰고 있다 해서.. 그게 믿음의 절대 지표는 아닙니다.
또한,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몇 개 소유했다고
그게 믿음의 절대 지표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그 분야에 남들보다 좀 많이 아는 학자일 뿐입니다.
복음은 내 속사람이 주님의 은혜로 바뀌고자 함이지 머릿속에 성경을
채우거나 이해하고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경에 대해 알면 뭐 하겠습니까... 속 사람은 그대로인데요.
즉, 복음의 내가 누구인지 정체를 알게 하는 역할입니다.
또한, 내 정체를 알게 되었다면, 그에 맞도록 합당한 변화로 이끕니다.
이처럼... 복음이 내 머리가 아닌, 내 심장으로 들어온다면,
당연히 내 진짜 정체를 알게 되는데
나는 타락한 죄인이란 사실을 알고, 실상 굉장히 찔립니다.
하여 이 추악한 죄를 씻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반사적으로 올라오는데
이 죄를 주님께 낱낱이 고발하며 씻어달라는 것이 회개입니다.
뿐만아니라, 지금 이 죄를 해결하지 않고
이 땅을 떠나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실상을 눈치채는데
멸망할 이 악한 죄인을... 살려달라고 주님 앞에 매달리려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말씀에 목말라 진리에 갈급한 심령이 됩니다.
바로 이 상태가...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복음을 깨달은 성도의 진짜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심령을 그냥 두지 않고, 반드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가나의 잔칫집에서
항아리 속 물을 터치하여 포도주로 변화시켰듯
나를 터치함으로 심장이 찢기는듯한 애통한 마음이 올라오는 것이고,
자기를 부인하며 눈물로 회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맹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듭남(새 생명)이라고 복음은 증거합니다.
이 초자연적인 현상은 세상적 이론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직 터치 받아 변화된 생명만이 영적 경험으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로만 아는 모든 지식은 폐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회개, 자기 부인, 거듭남)가
멸망하는 자들(머리로만 아는 지식 교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회개하고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머리로만 아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린도전서 1장 18-19절)
제가 겪었던 실화를 끝으로 글을 맺습니다.
제가 노방 전도하다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는데 특히,
노숙자분들께 자꾸 시선이 가기에 저도 모르게 그들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말을 붙이게 되는데.. 그들은 마음이 무너진 상태라
불쾌하지 않도록 굉장히 조심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처음부터 예수님 믿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그들의 경계감을 없애고 그분들의 친구가 되어주려고만 합니다.
그 후 결정적인 상황이 되었을 때 예수님을 전합니다.
어떤 노숙자분이 있었습니다.
빨래는 둘째치고, 몸을 얼마나 씻지 않았는지 냄새가 지독합니다.
그래도 겨울은 참을만하지만, 고온다습한 한여름이 되면 그들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어지간한 각오가 아니면 힘듭니다.
어느 날 노숙자분에게 제 말을 들으면 용돈 준다고 꼬셔서
그의 허락을 받고 근처 목욕탕에 데려갔었는데, 욕탕에 들어가자마자
그 노숙자분은 주변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고약한 냄새와 쩌든때, 떡진 머리...
저는 그분이 상처받아 그냥 나갈까 봐 얼른 탈의 하라 하고
부랴부랴 탕으로 데려가서, 때를 불린 다음... 깨끗히 때를 밀었습니다.
그동안 쌓인 때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배수 캡을 막을 정도입니다.
다 씻기고 몸을 말려드린 다음 목욕탕 이발소에 들러서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을 깎으니
사람이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 놀라워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목욕 전에 벗어놨던 옷을.. 다시 입으라 했습니다.
그 순간 그분은 머뭇거리며 입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왜 옷을 안 입습니까?" 그는 우물쭈물하며, 작은 소리로 대답합니다.
"다시 냄새나는 옷을 입으려니 좀 그러네..." 라며
말끝을 흐립니다.
이때다 싶어 미리 사둔 새 옷을 그분께 내밀며 입으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뛸 듯 기뻐하며... 뜻밖의 횡재인 마냥 재빠르게 옷을 입습니다.
그리고 먼저 입던 더러운 옷을 주섬주섬 뭉쳐서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버리는 겁니다.
하여, 제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왜 버리냐고 했더니
저 냄새 나는 옷을 어찌 다시 입느냐며, 인상까지 확 쓰며 대답합니다.
이분이 몸을 깨끗이 한 후 먼저 입던 더러운 옷을
왜 입길 거부하려 했겠습니까...
오래도록 씻지 않고 지낼 때는 역한 냄새의 옷에 적응되었기에
평소에는.. 그 더러운 옷에 대해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깨끗하게 씻은 후... 비로소 옷에 찌든 역한 냄새가
실감 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바로 이때, 이분께 예수님이 어떤 분이고, 그분이 왜 이 땅에 왔는지,
왜 회개를 해야 하는지 전해드렸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물들어 살 때는...
자신이 얼마나 악한 죄인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하여, 육이 거침없이 막 쏟아져나와도... 죄가 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미 죄로 물든 세상에 당연하듯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노라 하는 분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진정한 돌이킴도, 회개도, 거듭남도 없이 교회만 다니다 보면
그 패턴이 몸과 마음에 화석처럼 굳어져서 그러다 구원받는 줄 압니다.
이것이 이 시대 신앙의 슬픈 현실입니다.
그러나 진짜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은 아주 작은 죄라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죄의 근처에는 가지 않으려, 몸부림친다는 겁니다.
마치, 이미 몸을 깨끗하게 씻은 노숙인이 벗어놓은 더러운 옷에
몸서리를 치며 입기를 거부하듯 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자신이 느끼기에 작은 죄라도, 몸서리치는 양심의 울림이 없다면
우리는, 진실로 회개한 적(더러운 옷을 벗었던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더러운 죄의 옷이 자신에게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회개한 사람은... 그 노숙인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는 더러운 옷(죄)을 입으려(범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여나.. 자신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죄를 지어도, 매우 애통해하며
눈물로 회개하지 않고는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영성이 됩니다.
왜 이런 양심의 울림이 있습니까...
내 안의 성령님이 심장을 찌르는 은혜로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회개한 자의 진짜 영성입니다.
이 땅에 숨 쉴 때만이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이 땅을 떠나면 그 누구도 회개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내일 내 운명이 어찌 변할지... 우리 중 그 누구도 아는 자가 없습니다.
요즘처럼 코로나에 걸려 순식간에 갑자기 떠날 수도 있고,
교통사고로, 어떤 질병으로...
나를 씻는 회개는 내가 원하는 시간적 계획에 맞춰주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땅에 살며 숨 쉬고 있음을 느끼고 있을 때만이
회개할 기회이니... 부디, 이 천금의 순간을 놓치지 마십시오...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지금 살아 숨 쉬는 시간)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죄)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요한계시록 2장 21절)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요한계시록 3장 19절)
'**은혜의 마당** > 랑별파파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개인의 종말을 대비하고 계십니까? (0) | 2022.12.29 |
---|---|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개인의 종말을 대비하고 계십니까? (0) | 2022.12.12 |
인생 끝날 때, 반드시 지옥과 천국으로 갈립니다. (0) | 2022.11.08 |
주님을 입술로 사랑하십니까, 심장으로 사랑하십니까... (0) | 2022.08.01 |
회개하며, 오늘이 마지막이란 각오로 신앙생활 하십시오. (0) | 2022.05.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