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입술로 사랑하는 사람과
뜨거운 심장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그 사람이 실상으로 주님 말씀을 어찌 대하고 있는지, 삶을 통한 열매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요한복음 14장 23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믿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진짜 믿는 게 아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믿노라 거듭났노라)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한1서 2장 3-6절)
주님을 진정으로 믿으면서
주님을 진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군가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라 말하기 전에... 스스로 지킬 것입니다.
허나, 심장이 아닌 머리로만 주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두고 행위 주의자라고 정죄합니다.
그게 실상적 현실입니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정말 뜨겁게 사랑하는데
내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고 있다면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가 기뻐하는 것을 더 열심히 따라주고,
싫어하는 것은 과감히 끊어버릴 것입니다.
그게 사랑의 증거입니다.
만약... 이런 것이 없다면.. 그는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부모님의 올바른 말씀에 순종치 않고, 자기 육적 생각대로 한다면
그 사랑은 거짓이란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부모님께 형식적 의례적으로 사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한 희생이 따르기에
사랑과 희생은 똑같은 의미이고, 희생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하여, 입술만의 사랑은 뭔가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계산이 깔린 것이고,
희생적인 사랑은 아무런 계산이 없는 무조건적 참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머리로만 기억하고, 삶에서 등한시한다면
그는 예수님을 심장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라는 조건 땜에
계산적으로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은 부족한 존재이기에 주님 말씀에 대해 완벽하게 순종할 수 없고,
실수 할 수 있습니다. 허나, 그 마음의 동기가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은 다 이해하십니다.
부족함을 빙자하여 고의로 죄를 범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하여 주님은 베드로의 마음 속 동기를 잘 알기에 그를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고, 주님을 위한 희생도, 순교도 없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보면... 주님을 심장으로 사랑한다는 의미는
주님을 위하여... 희생=순종=믿음=사랑이 됩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뭔가 특별한 게 있습니다.
그분에게, 값없이 받은 은혜를 이해함으로써 감동하며, 감사하게 되고,
심장의 두근거림 같은 기쁨이 넘치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순종같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예수님을 향해 진실로 사랑하지 않고, 반석 위의 진짜 믿음이 아니라면
그는 자기 열심으로 꾸역꾸역하는 자기 의가 될 것입니다.
그저 성경에서 하라고 하니까 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고, 주님께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불의 공적 시험을 당할 때, 남지 않고 모두 타버릴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타버리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해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종을 빙자한 자기 의이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고린도전서 3장 13-15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 물으신 걸 이해해야 합니다.
이 세 번의 물음은.... 예수님을 세 번 배신한 베드로가 깊은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했기에, 그 눌림에서 회복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이미 베드로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기에
네가 진심으로 날 사랑해줄 수 있겠냐는... 예수님의 애절한 호소입니다.
이는 그 시대의 베드로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호소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진실한 사랑을 원합니다.
누가 순종을 강조할 때...
그 마음속 동기를 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도 드릴 수 있는 사랑과 믿음에서 비롯된 순종이라면,
이 땅에 사는 그 누구도.... 그에게 행위 주의자라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는 진정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나오는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진정 사랑해야 순교도 할 수 있습니다.
핍박자들이 서슬 퍼런 칼날을 내 목에 겨눌 때에도, 전혀 두려움 없이...
당당히 주님을 내 구세주라 시인하는 건,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성령으로 거듭나 내 안에 성령께서 계시지 아니하면 결코,
예수님을 주시라 시인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거듭나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핍박자들 앞에서) 주시라 (시인)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 3절)
누구든지 사람(내 목숨을 위협하는 핍박자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것이요
(마태복음 10장 32절)
이것이 그분께서 원하는 참된 사랑입니다.
순종과 행위의 차이는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심장에서 출발하는 사랑의 동기인지...
보이기 위한 혹은, 하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하는 것의 차이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사랑이 스며든 진짜 순종이 필요한 것이지
사랑 없는 형식적인 순종은 아무 의미 없는 것입니다.
가령, 이방인을 전도하더라도...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걸 막고자 하는 긍휼(사랑)의 마음이 내 심장을
못 견디게 만든다면 그것은 영혼 없는 전도가 아니라, 진짜 전도입니다.
허나, 교회에서 목사님이 전도하라고 하니까 꾸역꾸역하는 것은
그냥 단순한 행위일 뿐, 전도가 아닙니다.
봉사, 사명 등등 모든 것들이 동일합니다.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 동기가 되어 나오는 봉사와 사명인지,
참사랑도 없이, 영혼 없는 형식적인 틀의 동기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주님은 코람데오의 눈으로 이 부분을 지켜보며 역사하십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머리에 들어가는 성경 지식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말씀이 심장을 찌르고 들어와... 내 영혼이 완전히 뒤집혀야 가능합니다.
그것이 거듭남이라고 하며, 거듭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물어보고 계십니다.
"000아~ 네가 나를 진실로 사랑하느냐?"
"000아~ 네가 나를 진실로 사랑하느냐?"
"000아~ 네가 나를 진실로 사랑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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