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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마당**/은혜되는좋은글

2019 년! 이 세상 무대의 막이 내려지고 있다

by With Lord 2019. 1. 13.

2019 년!   세상 무대의 막이 내려지고 있다.

 

먼저 이것은  개인의 이야기일뿐  날과  시는 아버지만 아심을 전제한다.

 

샬롬,

 

2019 년이 되었다.

 

테트라드의 2014 년 2015 년많은 이유로  어느때보다도  기대를 모았던 2017 년과 2018 년도 

지나갔다그리고 우리는 2019 년을 맞게되었다.

 

이제 2019 년 5 월 8 일 저녁이 되면 유대력으로 이스라엘 독립 70 주년은 끝이 난다.

바꾸어 말하면 아직까지 이스라엘 독립 70 주년의 선상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일들이 숨가쁘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있다.

세상사도 이러한데 우리가 볼수없는 영적인 세계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특히 돌아가는 많은 세상사의 중심엔 트럼프 대통령이 단연 돋보이는데 그에 대한 흥미로운 점에 

대해서는 전에  글에서 이미 언급하였다.

 

미국의 45 트럼프 대통령은 구약의 고레스왕과 비교 되고있고 작년엔  둘의 얼굴을 새긴 

 3성전의 건립을 기원하는 Temple coin 이스라엘에서 발행되었다.

 

흥미롭게도 고레스에 대한 언급 역시 이사야 45장에 나온다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세상을 혼란 가운데로 빠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45:1-6절에 고레스에 대한 언급후  뒤이어 이어지는 7 말씀이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 하시느니라 

(잠언 21:1)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8 말씀이다.

 

 하늘이여 위에서부터 의로움을  같이 듣게 할찌어다 궁창이여 의를 부어 내릴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내고 의도 함께 움돋게 할찌어다  여호와가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바로 주님의 공중재림때 일어날 일들을 연상시키는 구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연 마지막 나팔이 될것인가?

 

참으로 흥미롭다

 

앞으로 세상은 더욱 혼란이 가중될것이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백성들은 두려움이 아닌 우리의 구원이 가까와옴을 인해 기뻐하며 마지막 

 사람 영혼이라도  예수님께 인도하자.

 

주님의 다시오심을 사모하는 이들은 희년이 언제일까 궁금해한다.

 

모든것이 회복되어지는 희년에 주님이 다시 오셔서  땅을 회복시키시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정확한 해를 모른다.  유대인들이 지킨 마지막 희년의 기록이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는 답을 찾을수 있지 않을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자에게 자유를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 4:18-19)

 

주님이 사역을 처음 시작하시며 선포하신 말씀인데 이사야 61:1-2절을 인용하신 것이다.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자에게 자유를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전파

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그런데  61:2절의

여호와의 은혜의  언급하시고  4:20 에서 주님은 책을 덮으심으로  뒤따라 나오는 

하나님의 신원의  전파하시러 다시 오시는 재림과 초림의 사역의 2000년간의 간극을 분명히 구분 지으셨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  “여호와의 은혜의  희년을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면 그것은 단지 영적인 의미의 희년만이 아니라 주님이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며 사역을 

시작하신 바로  해가 실제적으로도 희년이지 않았을까?

 

영적인것은  육적인것과 맥을 같이 하며 같이 가는것을 우리는 알고있다.

 

그렇다면 주님이 사역을 시작하신 년도는 몇년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을수없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 주님이 돌아가신해는30-33 A.D. 유력한데 그 중에서도 특히 30 A.D. 관심이 가는 많은 이유들중 여기서는 사람들이  언급하지 않는 몇가지만 간단히 살펴보자.

 

하나님은 성경에서 숫자에 어떤 특별한 패턴을 보이신다.

 

종말론을 연구하는 분들은 Prophecy 성경의 패턴과 깊은 연결이 있다는것을 알고있을 것이다.

 

37, 38, 혹은 39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어떤 특별한 패턴이 없는데 반해40이라는 수는 성경 전반에 

걸쳐 여러번 등장하는데 심판시험집행 유예의 의미이다.

 

70 A.D. 헤롯 성전이 무너졌음은 역사적 사실로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당신을 거절한 유대인들을 기다려 주셨다고 믿어지는40년을  30 A.D.  주님이 돌아가신것은 아닐까?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의하면 헤롯성전이 무너지기 40 전부터 그러니까 30 A.D. 부터 알수없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Yoma 39b).  그들 자신의 기록이기에 크리스천이 유대인에게 

예수님이 메시야되심을 입증하며 논쟁하는데 종종 인용된다

 

 내용중 일부는  16장의 속죄일에 드려지는 속죄양의 뿔에  진홍색 실이 속죄가 이루어지면 

흰색으로 변하고 성전에 매단 진홍색 끈도 같이 흰색으로 변해서( 1:8) 그들은 비로서 자신들의 

죄가 용서받았음을 알고 안도했었는데 헤롯성전이 무너지기 40 전부터는 진홍색이 여전히 진홍색으로 남아있었을뿐 아니라또한 그해부터 모두가 들어올수 있게 성전문이 저절로 혼자 열려졌다고 한다… 

 

우리는 주님이 삼십세쯤 사역을 시작하셔서( 3:23) 삼년  사역하시고 봄철인 유월절에 돌아가심을 성경에서 읽는다.

 

그때가 만약30 A.D. 유월절이었다면 주님은 5 B.C. 가을에 태어나셨을 것이다

(1 B.C. 에서 0 없이 1 A.D.  넘어 가기때문에 1 빼야한다)

 

그런데 베들레헴 별로 추정되는 별이 5 B.C. 봄에 70 이상 관측된 기록이  중국 문헌에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5 B.C. 가을 초막절 즈음에 태어나신것이 아닐까?

 

초막절 히브리어로 숙곳인데  33:17 야곱이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고로   이름을 숙곳이라고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음으로 이것을 암시한다.

 

민수기에서 30  이상으로 50 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라는 말씀대로,

그리고 예수님을 예표하는 다윗이 30 세에 다스렸던것처럼(삼하 5:4),

30 세가 되시는 초막절을 5 일 앞둔 26 A.D 가을 속죄일에30 세쯤 되신 예수님은 희년을 속죄일에 선포하라는  25:9-10 말씀에 따라 실제적인 희년이었던 해의 속죄일에 영적인 희년 또한 선포하시며 사역을 시작하시지 않으셨을까?

 

   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찌며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가족에게로 돌아갈찌며

( 25:9-10)

 

그렇다면 주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2000 년 간극에서 50  마다 맞는 40 번째의 희년이 되는  

해는 2026 년이 되고 2026 년에서 7 환난의 기간을 빼면 2019 년이 된다

 

30 여년전에 출간된 Hidden Prophecies in the Psalms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졌던 책인데 저자인 J.R. Church 목사님에 따르면 시편의  장은1900 년을 시작으로  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고 하시는바 그러면 2019 년을 예표하는 시편은119 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주님께서는  23:39에서 시편 118:26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글자 그대로 인용하셨는데 (한국어 번역은 약간 다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23:39)

 

그러니까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먼저 있어야 하고 그리고 주님의 재림이 있다는 말씀이다.

 

시편 118 편을 뒤이은 시편 119 편은 가장  시편으로 히브리어의  글자로 시작해 마지막 글자로 끝나는바 처음과 나중 되시며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말씀 되시는 예수님을 나타내는데 이것이 하필

2019 년을 상징한다는 시편 119 편에 있음은 우연일까?

 

성경은 지식모략잠언비유와 지혜와 오묘한 말로 가득찬 하나님의 말씀이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 25:2)

 

어느날 성경을 읽는데 문득  질문이  마음에 물어오기를

 

성경 66 권 중에서 예수님(예슈아) 이름을 가진 책이 2 권이 있는걸 아느냐?

 

..    여호수아와 호세아서가 있구나...

( 이름들은 구원이라는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호세아서의 내용이 무엇인가?

 

여호와의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과 결혼해 음란한 자식들을 낳고 산다.

 

그런데  음란한 아내가 다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가 되었다.

 

호세아가 그녀에게 말한다.

 

너는 많은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 3:3)

 

그리고는 자신을 위하여 값을 치루고  아내를 산다.

 

여호와께서 음란한 이스라엘과 혼인해 주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가운데 빠져서 음란히 우상들을 섬기며 죄에 팔려 급기야 주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목숨으로  값을 치루심으로 그들을 다시 사시고 그들의 사랑을 당부하시는 그분의 피끓는 사랑 이야기가 호세아서이다

 

그들의 죄로 진노하시며 심판을 선포하시고 그러나 그들에게 예수님을 상징하는 말씀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명하시며그리하면 “저희의 패역을 고치시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 말씀하시며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물으시며 호세아서는 끝난다.

 

그런데 민수기 13:16 뜬금없이 이런 말씀이 나온다.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칭하였더라

 

그러니까 호세아가 먼저이고 여호수아가 나중이라는 힌트이다.

 

호세아서는 예수님의 초림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서는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이 있는것은 아닐지

 

 정탐 이야기며 요단강을 건넌후 7 제사장이 7 양각 나팔을 불면서 여리고성 주위를 매일 1 번씩 

6 일 동안을 돌다가  7 일에는 성을 7 돌고 7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울려 불때 백성이   소리로 외치니 여리고성벽이 무너져 내린 이야기인 여호수아서와,

 

 증인 이야기와 7 천사가 7 나팔을 불고 7 째 천사가 7 째 나팔을 불때  다른 7 천사가 7 재앙을 담은 7 대접을 쏟고 7 째가마지막 대접을 쏟을때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 라고 기록된 요한 계시록은 같은 패턴을 보여준다

 

요르단은 ‘밑으로 흐른다 히브리어 야라드 에서 왔다.

 

윗지경 (재판)에서 시작해 아래의 죽음의 바다 사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아담의 범죄로 유죄 판결받은 인생이 가야하는 죽음의 관문을 의미한다그러기에  요단강을 건너 천국에 들어가길 소망하며 장례식에서 즐겨 부르는 찬송가로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있다

 

예수님이 요단강 물에 잠기심으로 세례 받으신것이나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7 들어갔다 나온 

사실은 이러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마른땅으로 건넜다는 것은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 약속의  가나안 천국을 갔다는의미가 아닐까?

 

엘리야가 길갈에서 벧엘로 여리고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단 가에 이르러 겉옷으로 물을 치니 물이 갈라져 엘리야 또한 마른 육지 위로 건넌후 그는 승천하였다. (왕하 2:1-11)

 

한편 여호와의 언약궤가 앞서가고 그것을 2000 규빗을 두고 좇으라는 말씀은( 3:3-4) 예수님 뒤를

2000 년후에 좇아오라는 말씀이 아닐까?

 

그것도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던 죽음을 이긴 부활의 몸으로-

 

너희가 이전에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 3:4)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묘하게도 요한복음 3:16 같은 절수인  3: 16 인데-

 

“… 궤를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쌔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 3: 15-17)

 

여기서 아담이란 이름이  갑자기 등장할까

 

넘쳐 흐르던 물이 그쳐서 아담이란 곳에 일어나 쌓였다

 

아담은 누구인가?

 

 사람 아담으로 인해 사망이 들어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구절에서 아담을 설명하는데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이라 하였다.

 

사르단은 뜻이 불분명한 단어로 츠레다로 짐작되는바 찌르다 뚫다의 의미이다.

 

죄의 결과로 인해 요단에 넘쳐흐르던 저주와 사망권세의 물결이 찔림당하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모두 일어나 쌓이고 전가되었다.

 

그래서 그안에 들어가면 모든것이 죽어버리는 죽음의 바다 염해(사해) 향하여 미친듯이 흘러가던 죽음의 권세는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이신 예수님앞에서 온전히 끊어져 힘을 잃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죽음을 보지않고 마른땅으로 행하여 약속의 땅으로 가는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하에 홍해를 건너 죄악된 세상인 애굽을 출애굽했다.  

그들은  세대이다.  홍해는 주님의 보혈을  올린다.

 

 세대인 구약의 성도들은 정월 십일에 유월절 어린양을 취하여 흠이 없는지를 4 동안 살피다가 십사일 해질 때에 잡았다. ( 12:1-14)

 

그러나 예수님을 상징하는 여호수아 지도하의 신약시대 성도들인  세대는 이미 주님이 2000 년전 유월절 어린양 되셨음으로 이상  모든 과정이 필요없게 되었기에 정월 십일에 요단강을 건넜다. ( 4:19)   

 

그들이 요단강을 건넌후 할례를 행하고 길갈에서 낫기를 기다릴때에 여호와께서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5:8-9)

 

그러면 할례는 무엇인가?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 2:11)

 

여호수아서에서 할례받은 저들에게서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셨듯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육적 몸을 벗은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것이라 말씀하신다. ( 7:17)

 

2018 크리스마스날 아침이었다.

 

일어나 침대에 앉은채로 감기 기운에 눈을 감고 있는데 감은 눈앞에 까만 화면이 보였다.

그리고  화면에 이름들이  보이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데 리스트가  길었다

 

영화볼때 영화가  끝나면 마지막에 까만 화면에 영화 제작에 관계된 사람들 이름들이  

나열되어 나오듯이…..

 

그런데   리스트의 끝이 보였다

 

 속으로 이제 사람들이 집으로 가겠구나 생각하다가 눈을 떴다.

 

세상 나라가 끝이 날때가  되었나 보다.

 

세상 나라의 무대를 장식했던  많은 제작자들의 기나긴 이름들은 이제 끝이나고 그러면 마치 

사람들이 극장을 떠나 집으로 향하듯  세상을 떠나 집으로 가는 일이 얼마  남았나보다…  

그런가 보다

   

마라나타 아멘!  

사랑하는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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