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창조함을 받은 후 죄를 짓고자 하는 육의 마음이 없었기에
에덴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참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뱀(마귀)의 미혹에 의하여 선악과를 취한 후 거룩한 영의 속성이 잠들고, 악한 육의 속성이 깨어났습니다. 그래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은 창조원리의 유전자 속에 기본적으로 죄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반응이 분명히 새겨져 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도 죄가 나쁘고 죄를 범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넣어준 육적인 죄의 이끌림이 죄에 대한 양심적 마음을 뛰어넘은 게 문제입니다. 하여, 사람은 죄 가운데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이로 인하여 지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내가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낳아놓고 내 자식이 죄 가운데 산다면 그 마음은 찢어질 것이며, 죄에서 건지려는 마음이 강할 것입니다. 주님 역시 마찬가지십니다. 스스로 인간을 지어놓고,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을 바라볼 때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이는 육신의 부모가 느끼는 그 마음보다 훨씬 더 강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늘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 죄를 떨치지 못하면, 우리의 영적 미래는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진심으로 영접(거듭남)하면 우리의 영적 미래는 분명히 달라집니다. 회개하고 거듭나 진정으로 주님을 영접한 심령은 모든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접(거듭남)하기 전에는 육의 속성이 강했기에, 죄인 줄 알면서도 별 대수롭지 않게 죄를 저지릅니다. 그러나 거듭나면 육의 속성이 사그라지므로 죄에 대한 혐오증이 매우 민감하게 발동되어 죄의 근처에도 가길 꺼려합니다. 즉, 잠자던 내 영이 성령님으로 인하여 깨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아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거듭나야 한다고 성경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죄를 시인하고 육의 속성으로부터 돌이켜 주님 앞에 나아와 완전히 굴복해야 합니다. 가출했다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자기를 부인하고) 돌이켜 아버지 앞에 완전히 굴복한 탕자가 바로 그런 경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지옥에 들어갈 것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죄를 시인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거짓 시인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혼날까 두려워... 마음이 아닌, 입술로만 잘못했다고 영혼 없이 고백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심장이 아닌 입술만의 형식적 고백일 뿐입니다. 정말 죄로 인하여 견딜 수 없는 양심의 찔림으로 인한 고백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주님은 이런 심장의 회개만 인정하고 받으십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보혈 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조건 때문에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건 가짜 사랑입니다. 사실은 그 조건(천국/육적 형통)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식이 어떤 조건(부모의 재산) 때문에 사랑하노라 한다면... 부모의 입장에서 참 심란하고 괴로울 것입니다. 부모 역시, 조건 없이 낳아준 부모를 진정 사랑하길 원하듯... 주님께서도 아무 조건 없는 깊은 사랑을 원하고 계십니다. 육신의 부모는 아이가 잘못할 때 몇 번은 타이르듯 넘어가다가, 그래도 계속되면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다그칩니다. 너 자꾸 ~~하면 혼날 줄 알아!!! 아마 부모 된 입장에서 이런 말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사람의 기본 마음이 그런가 봅니다. 풀어주면 잘못에 대한 느슨함으로 인해 또 같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또 부모가 강하게 나가면 아이가 잠잠해짐을 봅니다. 이럴 때마다 부모의 마음은 참 괴롭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특히, 사사기에서 이런 장면을 참 많이도 접했습니다. 매를 치면 살려달라고 눈물을 흘립니다. 평안함이 지속되면 또 풀려서 죄짓기를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부모의 처지에서 보면... 그저 부드럽게 말만 해도 잘 따라오는 자식을 원할 것입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십니다. 굳이, 징계를 안 해도 주님을 잘 따르길 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추방당한 후 그 후손들인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났기에 이게 잘 안 됩니다. 그래서 계속 죄를 반복하는 것을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공중권세 잡은 사탄 마귀가 다스리는 이 땅에 있기에 마귀가 계속해서 죄 된 마음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우리는 영영 죄 가운데 살 수밖에 없고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친히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루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또한, 언제까지나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할 수 없었기에 주님을 갈급하게 찾고 구하는 자들을 회개시키고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그들과 함께하시며 아무리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법과 악이 창궐해도 끝까지 견디며 순종하는 자는 구원 시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지금 이 시대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거룩한 은혜입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24장 12-13절) 마귀의 간계로 인하여 우리의 최초 조상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 영의 선한 속성이 잠들고 악한 육의 속성이 깨어났기에 공중권세 잡은 마귀가 존재하는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는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이는 주님께서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여, 죄를 씻을만한 회개의 은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회개라고 하는 것은... 내 악한 육의 속성을 이겨내지 못하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지배하는 악한 육의 속성을 누를만한 능력... 그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회개에 이르는 은혜의 능력입니다. 이것은 사람 스스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능력 외의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이를 하실 수 있기에 우리는 이 은혜(회개에 이르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장 32절)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이 나에게 임해야 회개는 터집니다. 이는 성령께서 내 악한 육의 속성을 누르고, 죽었던 선한 내 영을 깨우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내 영이 깨어나니 죄에 대하여 얼마나 혐오증이 생기겠습니까... 이제 나의 악한 육의 속성과 선한 영의 속성은 내 안에서 결코 같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육이 살면 영이 죽고, 영이 살면 반드시 육이 죽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장 17절) 그러나, 이제 성령으로 인하여 내 영이 다시 살아나고... 육이 죽었기에 우리는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 죄에 대한 애통한 절규와 마음을 찢는 심령으로 주님을 간절히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 회개의 근본적인 목적은 결국, 죄 된 내 육의 속성을 죽이고 잠자던 내 선한 영을 깨우기 위함입니다. 이 과정이 꼭 있어야만 우리 죄인들은 온전한 회개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냥, 여전히 이방인의 육적인 모습으로 살길 좋아하면서 입술로만 '주여 회개합니다' 한다고 성령이 임하시지 않습니다. 그건 종교의 영(마귀)에 잡힌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내 잠자는 영을 깨우기 위해 성령님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맛있는 채소와 살찐 고기와 잘 숙성된 포도주를 포기하고 단호하게 돌아섯듯 죄로 이끄는 세상의 환락을 거부하고자 하는 동기가 강하게 일어나 내 육의 속성을 이기려는 절박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마음이 바로 주님(성령)을 구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주님은 이미... 구하는 자의 중심을 다 꿰고 계시기에 결코 입술만의 고백으로는 설득시킬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은 왜 그런 절박한 마음이 없는지 답답하다고 합니다. 왜 애통한 마음이 올라오지 않는지 원망스럽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물어보십시오. 나는 세상에 미련이 많아 포기하길 거부하면서 단호히 돌아설 마음도 없고, 이것도 저것도 다 취하길 간절히 바라며 입술로만 주님을 구하지 않았나 냉정히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이는 마치, 한쪽 다리는 세상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나머지 한쪽 다리는 주님을 향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고정한 다리를 단호히 빼려는 마음의 울림이 회개하려는 진정한 자세이고, 이에 화답하여 주님의 도우심(회개의 은혜)으로... 그 다리가 완전히 빠져 주님께로 향하는 게 회개이자 거듭남입니다. 세상에 고정된 다리가 빠져야 주님께로 갈 터인데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고정되어 있으니 빠질 리가 없습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결코, 애통한 마음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결코, 회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중심을 훤히 다 아시는 주님께서 그런 양다리를 걸치려는 마음 밭에 성령을 주시겠습니까... 그러니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녀도 여전히 교회 안의 이방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안다 하는 우리는 분명한 포지션을 취해야 합니다. 세상을 택하든지, 하나님을 택하든지... 애굽의 채소와 고기와 포도주를 택하든지, 하늘의 만나를 택하든지... 육의 속성을 택하든지, 선한 영의 속성을 택하든지... 지옥을 택하든지, 천국을 택하든지... 결코, 뜨뜻미지근한 어중간한 중간지대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만족하기 위한 양다리는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주님께서는 허락하지도 않으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요한계시록 3장 15-16절) 우리가 사는 3차원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한된 삶을 마치고 죽음을 향하여 계속 걸어가는 여정일 뿐입니다. 그 증거로 우리의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병이 생기고, 얼굴의 주름은 날로 늘어가며, 몸의 근육은 쇠하여 점점 활동이 부자연스러워집니다.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이는 계속 삶의 종말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그 끝을 향한 여정의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보고자 하여 지옥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시간, 죄로부터 돌아서려는 단호한 결단만이 필요합니다. 그 결단이... 계산적 머리가 아닌, 뜨거운 심장의 결단이라면... 주님은 그 마음을 보시고 바로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주님은 준비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준비하지 않고 그저 주님의 은혜로 어떻게 되겠지 하며 세월아 네월아 하며 세상 가운데 젖어있는 자에게는 결코, 거듭남의 은혜가 없습니다. 이제 어떡하시겠습니까... 살아 호흡할 때의 단호한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지금 살아있을 때, 죄로부터 단호히 돌이키십시오. 호흡이 끊기면 더 이상의 기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장 27절) 랑별파파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https://cafe.daum.net/arro75/VNCk/63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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