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9장 62절)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장 23절) 위 예수님의 말씀은 표현만 다르지, 그 의미는 동일합니다. 위 두 말씀은... 계속 이방인에 머물 것이냐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갈 것이냐, 계속해서 육(죄)에 속할 것이냐 영(생명)에 속할 것이냐를 단호히 결정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이는 곧, 사단과 주님의 중간에 위치한 인류가 멸망이냐 구원이냐를 가름하는 절대적 분기점이기도 합니다. 즉, 주님을 믿겠노라 한다면 이리저리 눈치만 보지 말고 방향을 확실히 잡고 그 방향으로만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말이 쉽지... 세상에 길들여지고 자신의 의와 자아에 취하여 살던 사람들이 어디 그게 말처럼 간단한 문제입니까?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가고자 원한다면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하여 광야에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펴보십시오. 인본적 잣대로 계산했을 때,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가나안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넉넉히 한달이면 됩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40년을 유랑하며 연단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논리적 판단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 그냥 믿음(?)으로 간단하게 통과하면 될 것을 왜! 미련하게 40년 동안 그러느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합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현실화 되었습니다... 요즘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대로라면... 애굽을 그리워하는 타고난 육적 본능은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것이기에 믿음(?)만 있으면 주님의 은혜로 쉽고 편안하게 통과해야 살아있는 온전한 믿음이고, 꾸역꾸역 40년 고난으로 통과하면 인본적으로 열심히 도 닦는 행위 믿음이라고 가르칩니다. 그건 도무지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중요하지 죄성은 구원과 상관없다는 소리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뜻으로 40년 동안 유랑했습니다. 광야에서 고난(연단)받은 원인이 무엇입니까... 출애굽은 했지만... 그동안 애굽(세상, 육, 죄)의 노예가 되어 깊이 길들여진 싱싱한 채소와, 담백한 고기, 목을 시원하게 하던 포도주 등... 골수까지 인이 박힌 이런 육적 삶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성을 철저히 가로막은 것입니다. 하여, 광야 40년은 세상에 중독되어 몸에 밴 육의 것들을 주님의 방법으로 떼어내는 과정입니다. 마치... 술중독, 마약중독, 게임중독, 도박중독에 빠진 이들이 갱생기관에 맡겨져 힘들게 중독증을 빼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갱생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쩌든 물을 빼는 기간이 40년이었던 것입니다. 너무 힘들었지만, 그게 주님의 진짜 은혜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나머지 1세대들은 결국, 변화 받지 못하고 그들의 2세대만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왜 2세대만이 들어갔습니까... 그냥 2세대란 이유만으로 가나안에 들어갔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2세대들은 애굽의 육적 삶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에 중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환경에서 태어나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광야 2세대는 1세대에 비하여 영적 구조가 분명히 달랐습니다. 1세대처럼 걸핏하면 주님의 뜻에 대적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순종하며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애굽의 삶이 뭔지 모르고 광야가 전부인 줄 알던 그들이 주님을 대적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1세대는 왜 못 들어갔습니까... 이 글의 핵심은 그것입니다. 애굽의 삶에 중독되었던 그들의 시선과 발걸음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가나안을 향했지만... 마음은 계속 애굽(죄)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1세대는 육에 미련이 많았기에 자기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상황에 대하여 주님을 믿으며 의탁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중심이 주인이 되어 걸핏하면 하나님이 세운 리더 모세에게 반기를 들었으며 조금만 힘들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앞장섰습니다. 그 많은 기적을 보고도, 주님을 믿지 못하고 툭하면 사람의 생각을 앞세워 부정적인 마음을 품었습니다. 불꽃 같은 눈으로 사람의 중심을 살피시는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은 계속 세상에 있는데... 몸만 가나안으로 향한다고 들여보내 주시겠습니까? 성경을 통해, 우리는 이미 그 결과를 아시듯... 주님께서는 그런 영성의 소유자는 절대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을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정한 철칙이자 공의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40년 광야의 광경을 바라보며... 그저, 맘 편히... 그냥 이스라엘이 겪었던 역사의 일부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그건 메시지를 받는 게 아니라, 그냥 역사책을 보는 겁니다. 영적 무게감을 느끼며 굉장히 심도 있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요구하는 영성의 방향이 어떤 것인지를 예표 하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마음의 중심은 육의 습성을 내려놓으려 결단하지 않으면서 교회만 열심히 다니며 '주여주여 주님을 믿~습니다'... 지금 이러고 있지는 않습니까? 실제, 삶은 죄에 물들어 이방인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데 교회당에 가서 입술로만 주님을 부르면 믿음입니까? 마음속에는 애굽을 품고 머리만 주님을 향하지 않았습니까? 광야 1세대들이 40년 동안 얼마나 '주여주여' 외쳤는지 아십니까? 광야 1세대들이 그랬듯, 그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아니하면 온전한 믿음도 아니며, 구원은 더더욱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게 주님께서 정하신 아주 냉정한 영적 세계관의 실상입니다. 우리는 믿노라 하면서... 육에 물든 습성으로 인해, 자기를 부인하기 너무 싫어하여, 나를 부인하지 않고 믿는 방법을 찾으려 무던히도 애씁니다. 꾸준히 죄와 동거하며 구원받는 길을 찾아내려 연구합니다. 결국, 그 방법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진정한 자기 부인도, 회개도, 거듭남도 없음으로 인하여 주님의 거룩한 말씀이 내 삶에 묻어나는 역사가 없어도... 주님의 말씀을 지적으로 동의만 하면, 그게 주님 영접이고, 그게 믿음이기에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고 교리화 시키는 데 완전히 성공했습니다. 하여, 이 가르침을 받은 교인들은 자신을 통해 육적 자아의 습성이 계속 쏟아져나와도 구원에는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세뇌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교리란...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입장에 바탕을 둔 세계관이 아니라, 사람의 육적 바탕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세계관입니다. 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온전히... 자기를 부인하지도 회개하지도 거듭나지도 않은 교인들을 주님을 영접했다 하며, 거듭난 교인으로 둔갑시킵니다. 거짓 영접을 근거로 하여 인위적으로 구원을 확신시키고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고 가르칩니다. 사람이 만든 교리에 의존하여 구원을 확신시킵니다. 오직,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너무 부담스러운 예수님의 불꽃 같은 말씀이 아니라, 죄를 사한다는 그리스도 보혈 피의 가치만을 취합니다. 그러므로, 혀로는 열심히 '주여주여'를 외치지만... 근본적으로 회개하고 거듭난 적이 없기에 마음은 계속하여 육과 타협하도록 길들여집니다. 교리에 중독되면 너무나 달콤하여 좀처럼 빠져나오기 정말 힘듭니다. 이 영향 때문에... 예수님의 불꽃 같은 말씀을 교리로 다 무력화시킵니다. 복음이 아닌, 교리를 만들어 주님을 섬기는 것은 사람이 임의로 만든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교리는 사람이 만든 이론일 뿐, 절대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교리)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장 8절) "사람의 계명(교리)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7장 7절) 교리에 중독된 이들이 가장 흔히 주장하는 예가 있습니다. 사람은 본시 선천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어떻게... 죄를 안 짓고, 어떻게... 말씀에 다 순종하며 사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은혜가 절대 필요하다고 합니다. 너무나 논리적이고, 상당히 그럴듯한 주장입니다. 맞습니다. 그 누구도 이 땅에 있는 한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설령, 성령으로 거듭났다 할지라도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교리에 중독되면... 은혜만 앞세워,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며 타협하게 됩니다. 하여, 죄에 대하여 회개할만한 애통함이 자취를 감춥니다. 온전한 회개가 안 됩니다. 회개도 주님께서 은혜를 내려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노라 하면서 세상과 타협하는 이에게 은혜를 내리시겠습니까? 오히려 징계를 걱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죄에 애통하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베드로전서 5장 5절)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애통히 회개하여 거듭난 사람은... 설령, 본의 아니게 육의 본능에 이끌려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애통히 마음을 찢어 회개의 자리고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양심을 매우 찌르시며 밝은 곳으로 나오도록 애통한 회개의 은혜를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시장에 가서 새옷을 사입어도 몇 번 입으면 세상의 먼지와 때에 금방 더러워져 세탁하듯, 이처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도... 사단이 장악한 공중권세의 이 땅에 머무는 한... 흰옷을 입어도 사단이 뿌린 때에 의하여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옷을 매일 빨아야(회개해야) 합니다. 흰옷을 빨지 않는 곳은... 마귀가 없음으로 죄가 상존할 수 없는 천국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함을 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장 31절) 주님께서는... 그 누구도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 선언하셨습니다. 자꾸 육과 세상에 의지하고픈 미련이 강한 사람들은 정말 자기를 부인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을 두려워한다면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육을 즐겁게 했던 애굽의 로망에서 벗어나길 결단하십시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길 결단하십시오. 솟아오르는 육의 정욕에 반기를 들길 결단하십시오. 안목의 정욕에 대하여 차단하길 결단하십시오. 내 정욕으로 쌓아 올린 바벨탑을 무너뜨리길 결단하십시오. 내 자아가 죽어지길 결단하십시오. 이런 것을 붙잡고 있는 이상... 절대 주님을 향하여 더이상 나아갈 수 없습니다. 부디 광야 1세대들처럼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이것을 끊으려는 단호한 자기 부인의 결단이 없다면... 애통한 회개도, 성령으로의 거듭남도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결단한 사람에게만 결단대로 변화되는 은혜가 허락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거절하기 싫어 계속 미련 갖고 동참하면서... 아무리 주님을 외친들, 주님은 가증히 여기실 뿐입니다. 죄의 삶 속에 누워... 감나무에 오를 생각(자기 부인)도 없이 입만 벌리고 있으면서(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면) 주님께서 감(은혜)을 입속에 넣어줄 거란 기대는 접으십시오. 아무리 내 개인적 감정에 충만하여 화려한 흰옷과 면류관을 걸쳤노라 스스로 확신해도 주님께서 입힌 흰옷과 면류관이 아니면 의미 없습니다. 이제 정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4~5년 간격으로 에볼라,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까지... 엄청난 메뚜기떼의 습격, 빈번한 지진... 지구 곳곳에 요즘 이런 현상이 눈에 띄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처럼 연달아 발생하는 이런 예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믿노라 하지만... 주님께서, 뭔가 방향을 잘못 정하여 가고 있음을 경고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심판은 주님을 모르는 이방인이 아니라, 주님을 안다 하는 교인들부터 시작된다고 하신 이유입니다.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는 자의 죄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코앞에 닥쳤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더이상 육에 젖어 시집가고 장가가고 먹고 마시고 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홍수를 코앞에 두고... 노아가 방주 문을 닫으려는 바로 그 타임입니다. 부디, 몸은 가나안을 향하면서 마음은 애굽으로 향하지 마십시오. 나를 단호히 부인하여 제 십자가를 들고 주님만 따라가십시오. 제발... 영, 혼, 육 모두가 오직 주님께로만 향하십시오. 정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태복음 24장 38-39절) 랑별파파 (daum cafe: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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