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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공간**/스펄전 묵상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 - 스펄전 묵상

by With Lord 2015. 12. 13.

12월13일

아침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 - 에스라서 7:22


  소금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번제에 사용되었습니다. 그 보존성과 정화성 때문에 그것은 영혼 속에 주어지는 신적 은혜를 상징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제사장 에스라에게 소금을 줄 때, 그 양을 제한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만왕의 왕께서 그의 왕 같은 제사장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그분에 의해서는 그 공급이 절대로 중단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본문은 암시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궁하게 되지만, 주님은 결코 그렇지 않으십니다. 만나를 많이 거두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거두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는 그 거민들이 떡을 달아 먹거나 물을 되어 마시는 기근은 없습니다.

  은혜의 경륜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은 정량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초와 담즙은 우리에게 정확하게 주어져야지 한 방울이라도 더 많이 주어지면 해롭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소금은 정량이 없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 7:7). 부모들은 과일이나 사탕 같은 것을 찬장 안에 넣고 열쇠로 잠가둘 필요가 있지만, 소금 그릇은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금을 너무 많이 먹을 정도로 욕심을 부리는 아이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돈이나 명예를 너무 많이 가질 수 있으나 은혜는 너무 많이 가질 수 없습니다.

  여수룬(이스라엘의 다른 이름)은 배가 부르자 하나님을 발로 찼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너무 충만하다고 해서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은혜의 과잉은 불가능 합니다. 재산이 많아지면 염려가 늘어나지만, 은혜가 많아지면 기쁨이 늘어납니다. 지혜가 많을수록 근심이 늘어나지만, 성령이 충만하면 그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성도여, 천국 소금을 무한히 공급해주는 보좌 앞으로 어서 나아가십시오. 은혜의 소금이 당신의 고통을 덜어줄 것입니다. 은혜의 소금이 없다면, 당신의 마음의 타락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소금이 벌레들을 죽이는 것차럼 당신의 죄를 죽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은혜의 소금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더 많이 구하고, 더 많이 받으십시오.


저녁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 이사야서 54:12


  여기서 교회는 천국의 능력으로 세워지고, 하나님의 기술로 계획된 건물로 아주 적절하게 비유되고 있습니다. 이 영적 건물은 어두워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성 안에 빛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안에 빛이 있고 그 거주자들이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성문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성문들은 석류석만큼 보배롭습니다. 교회가 그의 주님과 천국을 바라보고, 일반적으로 신령한 진리를 주목하는 방법은 지극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석류석은 아주 투명한 보석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기껏해야 반투명한 보석입니다.


      "그 생명의 관한 우리의 지식은 작고,

      믿음에 대한 우리의 눈은 희미하다."


  믿음은 이처럼 보배로운 석류석 성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슬프도다! 그것은 얼마나 자주 희미해지고, 어둡게 되어 우리로 하여금 어두운 것만 보게 하고, 우리가 보는 것에 대해 착각하도록 만들까요! 그러나 우리가 다이아몬드로 만든 성문으로 보고 안 것만큼 알 수 없다고 해도, 그 문이 석류석만큼 흐릿해서 사랑하는 주님을 보는 것이 흐릿하다고 해도, 그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경험도 비록 희미하기는 해도 우리 자신의 고통을 통해 슬픔의 사람인 주님의 고난을 보게 하는 종교적 빛을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보배로운 성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눈은 주님의 영광의 빛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성문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물로 그 눈이 희미해질 때, 의의 태양의 광선이 적절하게 조절되어 시험 속에 있는 영혼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의 빛을 석류석 성문을 통해 비추어 줍니다.

  성화도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또 다른 석류석 성문이 됩니다. 우리는 거룩해져야만 거룩에 관한 일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청결한 마음이 청결하신 하나님을 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액면 그대로 그분을 봅니다. 우리는 그분을 거의 닮지 못했기 때문에 성문이 석류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 많은 것을 갈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 천국과 진리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때가 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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