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보공간**/스펄전 묵상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 스펄전 묵상

by With Lord 2015. 12. 14.

12월14일

아침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 시편 84: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갔습니다. 이 말씀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데, 어떻게 해석하든 그것들 속에는 진보의 개념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오늘 아침 본문에 대한 흠정역 성경의 번역은 만족스럽습니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They go from strength to strength). 즉 그들은 힘이 더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걸을 때, 점차 힘이 약화됩니다. 여행을 시작할 때 새로운 마음으로 힘차게 출발합니다. 그러나 점차 길이 거칠어지고, 날이 뜨거워지면, 길가에 앉아 쉬다가 힘들게 피곤한 길을 걸어갑니다. 하지만 새로운 은혜를 공급받은 그리스도인의 순례길은 여러 해 동안 힘든 여행과 투쟁을 한 뒤에도 처음 떠날 때처럼 활력이 넘칩니다. 그는 이전처럼 의기양양하거나 힘이 넘치지 않을 수 있고, 또는 열심이 식어 미지근하거나 느슨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능력을 이루는 모든 일들에 있어서는 힘이 더 강해지고, 비록 그 발걸음이 이전보다 더 느려졌을지는 몰라도, 휠씬 더 안전한 여행을 할 것입니다. 백발이 성성한 읿 노장들은 진리를 붙잡거나 열심히 그것을 전파하는데 젊은 날 못지않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종종 그와 반대되는 경우를 고백하는 사람들이 휠씬 많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고, 불법이 더 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이지, 하나님의 약속의 잘못은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핮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0-31).

  안달하는 심령들은 앉아서 장래에 관해 괜한 걱정을 합니다. 그들은 "슬프다! 우리는 고통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는구나"라고 말합니다. 오 작은 믿음을 가진 자여, 그것이 아무리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당신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야 합니다. 한가운데 충만한 은혜가 들어있지 않은 고통의 다발은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숙한 성도의 어깨 위에 짐을 엊으실 때, 그 짐을 질 수 있는 충분한 힘도 함께 주실 것입니다.


저녁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 갈라디아서 2:20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하신 대리인으로서 활동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분의 죽음은 그의 모든 백성들의 죽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의 모든 성도들의 공의가 충족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 역시 제거되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이 바울은 그리스도의 택함받은 백성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교리적으로 믿는 정도가 아니라 확신을 갖고 받아들였으며, 그것에 그의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갖고 받아들였으며, 그것에 그의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어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다고 확신 했습니다.

  사랑받는 자여, 영혼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고, "나는 죽었다. 율법도 나에 대해 죽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권세로부터 자유하다. 율법이 나에게 정죄를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나의 담보물인 주님 안에서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이상 나아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믿고 신뢰했을뿐만 아니라 자신 속에 그의 타락한 옛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능력이 실재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죄의 즐거움들을 보았을 때, "나는 이것들을 즐거워할 수 없다. 나는 그것들에 대해 죽었다"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참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를 이 세상에 대해 완전히 죽은 자가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대해 죽었음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는 사도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았다"고 외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완전히 산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세속적인 사람은 그것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죽었으나 살았도다! 피 흘리신 구주의 고난에 동참하고, 세상과 죄에 대해 죽는 것은 영혼을 즐겁게 하는 일입니다. 오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