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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공간**/스펄전 묵상

하늘에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 스펄전 묵상

by With Lord 2016. 5. 9.

5월9일

아침

하늘에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 에베소서 1:3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에게 과거, 현재, 미래에 속한 모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언제인지 헤아릴 수 없는 태초에 주 예수님은 그의 아버지의 첫 번째 택자가 되셨고, 그 선택에 따라 그분은 우리에게 유익을 끼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창세전부터 그분 안에서 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영원 전부터 아버지의 독생자요 지극히 사랑받는 아들로서 장자권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 풍성하신 은혜 안에서 양자됨과 거듭남을 통해 우리를 또한 아들로 승격시켜 주시고, 나아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담보로 보증되고 서약으로 확증된 영원한 언약이 우리의 것이 되고, 그 결과 우리는 커다란 위로와 강력한 안전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님의 눈은 예정하시는 지혜와 전능하신 작정의 영원한 계획에 따라 우리 위에 항상 고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운명의 전체 두루마리 속에서 그분의 구속받은 자들의 유익에 불리하게 기록된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영광의 왕이 올리실 위대한 혼인잔치는 우리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와 약혼하셨고, 머지않아 온 우주를 향해 그 거룩한 혼례식을 선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그 놀라우신 겸손과 낮아지심으로 행하신 기적적인 성육신도 우리의 것입니다. 피 흘리신 땀, 조롱, 십자가도 영원히 우리의 것입니다. 완전한 순종, 완수된 속죄, 부활, 승천, 또는 중보로부터 나오는 그 복된 결과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그분의 선물로서 우리의 것입니다.

  그분은 또 지금 가슴 위에 우리의 이름을 달고 계십니다. 또 보좌에 앉아 그 권세 있는 간청으로 우리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정사와 권세와 능력에 대한 주님의 통치와 하늘에서 갖고 계신 그분의 절대적인 위엄을 그분은 자기를 믿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그분의 높아지신 상태도 그분이 낮아져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은 천국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계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시는데 후퇴를 모르십니다.


저녁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포도 움이 돋았는지...보자 - 아가서7:11,12


  교회는 열심히 일할 준비를 갖추고, 주님의 무리들이 그 일에 동참해주길 원했습니다. 교회는 "내가 갈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 함께 가자"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편이시라면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하나님의 포도원의 포도원지기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임무입니다. 첫 번째 조상들처럼 우리도 쓰임받기 위해 하나님의 동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온전한 정신으로 그 많은 수고를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나누는데 투자할 때, 그 교회를 주목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그분과 교제를 나누게 되면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섬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물론 외적 활동이 내적 생명을 방해하기는 쉽습니다. 또 그때 사랑하는 자에게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아 1:6)라고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과 게으름만 아니라면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어떤 성도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아주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만큼 영적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마리아는 계속 앉아 있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것 때문에 칭찬을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과 은밀한 교제를 갖는다는 핑계 아래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할 때는 칭찬받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활동이 그 자체로 악하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커다란 축복이고, 우리에게 은혜를 가져다주는 수단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 받은 것을 자기에게 주어진 은혜라고 불렀습니다. 기독교의 모든 활동들은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축복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교제하기 위해서 속세를 떠나거나 은둔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을 아끼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 수고하는 지칠 줄 모르는 일꾼들이 수고할 때 주님과 동행하면서 교제하는 축복을 더 누리고, 그때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그 일을 하면서도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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